새벽을 열며 산 지 햇수로 십 년째다. 수도원은 오전 다섯 시에 일과를 시작한다. 강산이 한 번 바뀔 세월이 지났건만 아직도 일찍 일어나는 일이 쉽지 않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내일은 과연 가뿐히 일어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수도생활이 뭐가 복잡하다고, 일찌감치 잠이나 청하지 하고 말들 하겠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일이 쌓이면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야한다. 형제들끼리 무슨 모임이라도 갖는 날이면 밤은 짧아진다. 가끔 넋이 빠질 만큼 흥미로운 책이 나타나 잠잘 시간을 빼앗아 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다음날이 문제다. 천근만근이 되어버린 몸을 일으키기가 너무나 버겁다. 그래도 무슨 수를 쓰더라도 아침기도에 빠지지 않으려 애를 쓴다. 새벽을 놓치면 하루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황동환
새벽은 하늘이 열리고 땅이 숨을 쉬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온 누리에 깃들여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이 이 시각에 잠에서 깨어난다. 새로운 하루를 창조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영으로 숨쉬기 시작한다. 참으로 장엄한 순간이다. 이런 순간을 예전에도 본 적이 있다.

지독히 힘들고 우울한 시기였다. 나는 고향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군부대로 통근하고 있었다. 열 발짝만 가면 면사무소인데, 예비군 면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입대할 때부터 꼬이더니 계속 꼬여간다고 푸념만 하고 다녔다. 대학졸업을 앞두고 영장을 받았다. 기가 막히게도 입소 장소가 포항 해병대 신병훈련소였다. 그해부터 시행된 상근예비역에 지원하는 장정들이 적어서 현역대상자들을 징집했다고 했다.

우리 고향 출신 상근예비역들은 포항이나 김포에서 일 년 동안 현역생활을 하고, 나머지 기간을 방위병처럼 지내야했다. 해병대에서 일 년을 지내야 한다는 게 솔직히 무서웠다. 해병대를 나온 동네 형들을 보면, 나에게는 해병대원이 될 자질이 전혀 없었다. 형들은 겨울 바닷물이 생각보다 따뜻했으며, 아침마다 웃통을 벗고 팔 킬로미터씩 구보를 하고 나면 상쾌했다고 떠벌렸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적마다 차가운 겨울바다에 빠진 것 같이 몸서리쳤고, 달음박질이나 한바탕 한 것 마냥 숨이 차면서 오금이 저렸다.

하는 수 없었다. 저질체력으로 일 년을 버틸 수밖에. 서러운 일 년이었다.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많이 지쳤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모든 게 구박거리였다. 일찍 집에 간다고, 대학을 나왔다고, 안경을 썼다고, 축구를 못한다고, 애인이 없다고. 고달프기 그지없었다. 훈련은 왜 그리 많던지, 달마다 근처 산과 바다를 누비고 다녔는데, 아직도 군장을 메고 뛰어다니던 오솔길이 생생하다.

팔자에 없던 해병대 생활은 많은 질문거리를 던져주었다. 있는 듯 없는 듯한 나의 존재감, 타인에 대한 불신과 인간성에 대한 환멸, 육체를 이기지 못하는 영혼의 무력감, 평화를 지키기 위한 폭력의 모순과 허구. 지금껏 배우고 알고 있던 세상과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혼란스러웠다. 하느님을 닮게 지었다던 인간의 참모습은 어디에 있고, 하느님께서 감탄해 마지않던 세상이 이 모양인가? 보초를 서며 밤을 지새우던 그 긴긴 밤, 이런 물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부대에 배치된 상근예비역들은 머리수가 모자랐던 현역들을 대신해서 부대정비와 경계근무를 맡았다. 야간조에 걸린 달은 이틀에 한 번씩 저녁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에 퇴근했다. 저녁 어스름부터 두 시간 간격으로 초소와 숙소를 들락날락 거리며 밤을 새는데, 처음에는 보초를 서는지 잠을 자는지 구별이 안갈 정도였다. 엉성한 초소에서 더위와 추위에 시달리며 상근예비역들은 밤새 귀신 잡는 해병대를 지켰다.

철모를 깔고 앉아 짝꿍과 허풍을 떠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시간이 갈수록 보초들은 말이 없어졌다. 몰래 라디오도 듣고, 책을 읽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는 날이 많았다. 보초를 서면서 하늘과 가까워졌다. 새까만 하늘에 총총 박힌 별들도 앙증맞았고, 보름달이 뜬 하늘은 아늑하기 그지없었다. 시간과 계절에 따라 하늘은 여러 가지 장면을 연출했다. 붉게 물든 가을의 저녁하늘, 쨍하게 맑은 한겨울의 밤하늘, 촉촉하고 포근한 새봄의 새벽하늘은 지루하고 아까웠던 그 시간을 풍요롭게 채워주었다.

그즈음 문득 새벽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 날을 기억한다. 봄이 오고 있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말해주었다. 달이 기울고 동이 터왔다. 어두움이 조금씩 물러가면서 멀리 있는 산들의 윤곽이 희미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초소 앞에 펼쳐진 풀밭에 옅은 안개가 깔렸다. 그러더니 어디선가 백로 몇 마리가 살포시 날아와 풀밭 위를 거닐고 있었다. 한 폭의 수묵화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햇살은 안개사이로 서서히 퍼져나갔고, 흩어지는 안개와 함께 백로는 날아가 버렸다. 살며시 열렸던 새벽은 이내 사라져 아침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어두움과 빛 사이에 새벽이 있었다. 빛은 어두움과 다투지 않고 조심스레 천지를 감싸 안았다. 사방은 고요했다. 그렇게 새벽은 분주하거나 소란스럽지 않게 창생을 깨우고 있었다. 파수꾼이 기다리던 그 새벽에 나는 보았다. 세상에 깔린 어두움을 보았고, 내 안에 드리운 그늘과 상처를 보았다. 다툼 없이 어두움을 이기는 빛의 힘도 보았다. 모든 사람이 잠든 그 새벽에 나는 들었다. 어두움에 숨죽였던 우주가 가만가만 깨어나는 소리와 세상의 어두운 그림자가 눈부신 햇살에 밀려 서둘러 달아나는 소리를 들었다.

묘한 감동을 준 순간이었지만, 그때는 이를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몰랐다.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 장면은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았다. 한참 후에야 ‘장엄’이라는 단어를 찾아냈다. 그 장엄한 순간을 체험한 후 나는 내 앞에 수묵화를 그려냈던 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뭔가 새로운 소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렇게 문득 새벽은 나를 불렀고, 새벽을 여는 여명의 빛살을 따라 두려움을 떨치고 길을 나섰다.

눈뜨기 전까지 새벽은 미지의 땅이다. 잠에서 깨어나기 전까지 새벽은 꿈나라의 변경이다. 하지만 깨어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새벽은 삶의 출발점이며 중심이다. 그들에게 새벽은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자 무뎌진 마음을 닦는 수행의 시간이다. 한 처음 어두움을 가르며 빛을 내신 그분은 오늘도 새벽에 나를 불러 깨운다.
 

고진석 신부 (이사악)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기사 제휴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3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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