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예수] 마태오 복음 해설 - 87

1 그 무렵에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 왕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2 신하들에게 ”그 사람이 바로 세례자 요한이다. 죽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능력이 어디서 솟아나겠느냐?“하고 말하였다. 3 일찌기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립보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는데 4 그것은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거듭거듭 간하였기 때문이었다. 5 그래서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했으나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는 민중이 두려워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6 그 무렵에 마침 헤로데의 생일이 돌아와서 잔치가 벌어졌는데 헤로디아의 딸이 잔치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헤로데를 매우 기쁘게 해주었다. 7 그래서 헤로데는 소녀에게 무엇이든지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8 그러자 소녀는 제 어미가 시키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이리 가져다 주십시오“하고 청하였다. 9 왕은 마음이 몹시 괴로웠지만 이미 맹세한 바도 있고 또 손님들이 보는 앞이어서 소녀의 청대로 해 주라는 명령을 내리고 10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 있는 요한의 목을 베어 오게 하였다. 11 그리고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건네자 소녀는 그것을 제 어미에게 갖다 주었다. 12 그 뒤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그 시체를 거두어다가 묻고 예수께 가서 알렸다. (마태 14,1-12)

▲ 살로메, 루카스 크라나흐(Cranach the Elder, Lucas), ca.1530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오늘 단락은 마르코 6,14-29를 1/4 줄이고 고치고 덧붙인 것이다. 예수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마르코 6,14-), 헤로데와 세례자 요한의 대화는(마르코 6,18-20) 마태오에서 삭제되었다. 마르코에서 헤로디아가 세례자 요한을 죽이려 했고 헤로데는 그를 보호하려 했다.(마르코 6,19) 그러나 마태오에서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을 죽이려 한다.(마태오 14,5)

요한 제자들이 스승의 죽음을 예수에게 알렸다는 12절 내용은 마르코복음에는 없다. 마르코에서 12제자의 파견과 귀환사이에 이 단락이 배치되어 제자들이 없던 시기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이 언급되었다. 그러나 마태오에서는 예수가 고향 나자렛에서 면박당한 장면에 이어 세례자 요한 죽음 이야기가 등장한다. 마태오에서 세례자 요한의 죽음이 더 강조되고 예수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방인을 주요 독자로 삼은 마르코복음과 유다인이 주요 독자인 마태오복음의 시각 차이가 드러난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다르게 보도하는 복음서 사이의 차이와 그 의도를 오늘 신자들은 설교에서 잘 알아듣고 있을까.

1절에서 마태오는 헤로데를 영주라고 보도했지만 9절에서 왕이라고 부른다. 헤로데는 예수 탄생 무렵인 BCE 4년 16살에 부친을 이어 갈릴래아와 페레아 지방을 다스리게 되는 헤로데 안티파스를 가리킨다. [B.C(Before Christi)는 그리스도교 중심으로 시대를 보는 방식이니 삼가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BCE(Before Common Era)를 쓰겠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예수에게 요즘 말로 도지사인 셈이다. 그는 왕으로 불리기 좋아했고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 것 같다.

세례자 요한 이전에도 여러 예언운동으로 처형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 연속선상에서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보아야 한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대해 유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다르게 보도한다. 세례자 요한이 군중을 선동하여 정치적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헤로데는 그를 처형시켰다고 요세푸스는 기록하였다. 처형장소는 사해(死海) 근처의 마케루스 성(城)이라 한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 이유와 장소에 대한 보도에서 성서학자들은 복음서들보다 요세푸스를 더 신뢰하는 편이다.

당시 다른 유다교 그룹에 비해 세례자 요한의 세례운동은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1) 예루살렘 성전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즉 유다교 지배층의 역할을 거부하고 종교적 평등을 주장하였다. (2) 로마에 저항하기 전에 유다인 개인의 회개에서 개혁을 시작한다. 예루살렘 성전을 거점으로 하는 유다교 지배층은 로마군대와 협조하여 자기 배를 채우던 부패한 세력이었다. 그런 세력에게 더 이상 하느님의 뜻은 없다며 대중적인 예언운동을 한 사람이 바로 세례자 요한이다. 그러한 운동에 기꺼이 참여한 분이 바로 예수다. 정치와 종교가 일치된 유다사회에서 그러한 예언운동은 곧 반체제세력으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세례자요한과 예수는 정치범으로 처형되는 운명을 맞는다. 예수는 세례자 요한에게 입문하여 요한처럼 정치범으로 처형된다. 인류 역사에서 세례자 요한과 예수 같은 운명적 파트너가 또 있을까.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오늘 단락의 주인공처럼 주목받은 사람은 세례자 요한도 아니요 예수도 아니요 바로 헤로디아의 딸이었다. 당시 잔치에서 춤추는 역할은 본래 매매춘 여성에게 맡겨졌었다. 그러니 헤로디아의 딸을 곱게 볼 수 없었겠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 그 딸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중세 후기부터 이름 없던 그녀에게 살로메(Salome)라는 이름이 문학과 예술에서 선사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와 그리스도교 개혁기에 순종하는 딸의 모습에서 자의식 강한 여인으로 추앙되기 시작했다. (‘종교개혁’이란 단어는 사실에 맞지도 않고 이웃종교에게 무례한 단어이기도 하다. 대신 ‘그리스도교 개혁’이라고 쓰겠다) 살로메를 성숙한 아름다운 여인으로 표현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에서 그 결정적인 전환점이 생겼다. 춤을 창녀의 짓으로 멸시하던 분위기가 18세기부터 정반대로 바뀌었다. 춤을 긍정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은 Heinrich Heine의 ‘Atta Troll’(1841), Oscar Wild의 ‘Salome’(1893), Richard Strauss의 오페라 ‘Salome’(1905) 등이다.

성(性)과 욕망이 성서에서 억압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설교에서 그 주제는 무시되고 억압되고 잘못 설명된 역사로 가득하다. 그리스도교, 특히 성서학자들은 왜 성서본문과 관계없는 해설이 그리스도교에 유행하였는지 그 부정적 영향은 무엇인지 알아내고 반성해야 한다. 잘못된 성서해설은 신자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자체를 망가뜨리고 불의한 체제와 권력자에게 협조하게 만든다. 세상의 독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서 구절인 로마서 13,1을 잘못 해설하여 불의한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사람들이 옛날에만 있던 사례가 아니다.

아담과 이브, 헤로데와 헤로디아의 딸, 빌라도와 유다 지배층- 성서에서 범행의 주연과 조연을 맡은 대표적인 두 유형이다. 아담, 헤로데, 빌라도는 최종 판단과 실행을 맡은 주범이었다. 이브, 헤로디아의 딸, 유다 지배층은 그저 조연을 맡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주연 인물보다 조연배우에게 더 책임을 묻고 비난해 왔다. 왜들 그리 분별력이 모자랄까.

세례자 요한이 처형되고, 예수도 처형되고, 예수 제자들도 같은 길을 걷는다(마태오 5,12; 19,17-, 34-). 그런데 그런 죽음은 먼 옛날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쉽다. 순교자들을 존경하지만 순교자가 되기는 싫기도 하겠다. 사교모임 다니듯 교회를 다니는 사람에게, 신분세탁을 노리며 신자가 된 사람들에게 순교라는 단어가 과연 제대로 들릴까. 로마군대와 유다교 지배층이 같은 편이듯, 불의한 권력과 부패한 종교 지배층은 같은 편이다. 국민들의 의로운 분노를 무마시키고 신자들의 품위상승이라는 허위의식을 선물하는 그리스도교는 이런 점에서 ‘인민의 아편’ 노릇을 충실히 담당하고 있다. 그런 그리스도교가 없었다면 불의한 권력은 그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을까.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죽음을 보면서 그리스도교는 거울 앞에 서야 한다.
 

 
 

김근수 (요셉)
연세대 철학과, 독일 마인츠대학교 가톨릭신학과 졸업. 로메로 대주교의 땅 엘살바도르의 UCA 대학교에서 혼 소브리노에게 해방신학을 배웠다. 성서신학의 연구성과와 가난한 사람들의 시각을 바탕으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마르코 복음 해설서 <슬픈 예수 : 세상의 고통을 없애는 저항의 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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