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후쿠시마를 넘어 탈핵으로] ① 쓰나미보다 거센 방사능 오염 후유증

2011년 3월 11일, 동북아시아의 섬나라 일본에서 날아온 긴급 속보에 전세계는 경악했다. 태평양에 위치한 미야기현 인근 해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가 일본의 동북 지역을 강타한 것이다. 당시 측정된 지진의 진도는 무려 9.0, 일본에서 지진 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대 규모였다.

그러나 그것은 다가올 재앙의 서막에 불과했다. 최대 12미터 높이에 달하는 쓰나미가 후쿠시마 제1원전을 덮치면서 원자로가 폭발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는 도저히 감지할 수 없는 무색무취의 방사선은 사람들의 평온했던 일상을 순식간에 허물어뜨리는 악마의 얼굴을 드러냈다.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난 오늘, 후쿠시마의 상처는 얼마나 아물어가고 있을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9월 24일부터 10월 2일까지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예수회 한국관구 인권연대연구센터와 예수회 일본관구 사회사도직센터가 공동 주최한 ‘제2회 반핵평화운동 간담회’와 오사카에서 열린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의 ‘환경활동가 연수 프로그램’에 동행해 후쿠시마의 현 상황과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일본 시민사회 및 가톨릭교회의 노력을 취재했다.

<연재 순서>
① 쓰나미보다 거센 방사능 오염 후유증
② [기고] 시바타 기요시 신부 (예수회)
③ 원전 피난민, 누가 그들의 고향을 빼앗아갔나
④ [인터뷰] 하야시 히사시 신부 (예수회 일본관구 사회사도직위원장)
⑤ 원전 없는 미래를 만드는 사람들
⑥ [인터뷰] 사와무라 가즈요 (핵발전소 필요 없다! 시모노세키 모임 대표)

“시내 곳곳에 내걸린 ‘힘내자, 미나미소마 시(市)’라는 현수막을 볼 때마다 제게는 ‘힘내서 피폭 당하자’는 말처럼 들리더라고요.”

발표 도중 이케나가 오사무 변호사가 던진 농담에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은 없었다. 사가 현에 위치한 겐카이 원전 폐지 소송과 후쿠시마 원전 피해자 소송에 공동 변호인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케나가 변호사는 지난 7월 15일과 16일 이틀에 걸쳐 후쿠시마 제1원전 주변 지역을 조사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지난 달 26일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열린 ‘제2회 반핵평화운동 간담회’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2011년 사고 당일 때마침 내린 비의 영향으로 방사선 오염 피해가 컸던 후쿠시마 북서쪽 지역을 중심으로 9개 시(市), 정(町), 촌(村)을 돌아보며 방사능을 측정했다. 그 결과 그가 내린 결론은 “거주지가 정부가 정한 제한지역으로 분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직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도 가능하면 모두 피난을 떠나면 좋겠다”는 거였다.

▲ 주민들이 그대로 거주하고 있는 후쿠시마 시에서도 방사선량이 ‘측정 불가’인 심각한 오염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사진 제공 / 이케나가 오사무)

온기가 사라진 ‘무인(無人) 도시’의 풍경

거주제한지역으로 분류된 곳에서 이케나가 변호사가 촬영해온 사진들은 너무나 낯설고 기괴해 마치 공포영화의 스틸 사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했다. 입간판이 그대로 걸려 있는 상점, 깨진 유리창 하나 없는 빌딩, 깔끔히 정돈된 골목길 풍경은 저곳이 정말 대재난이 휩쓸고 간 도시가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초등학교 역시 운동장에 무성히 자란 풀을 제외하면 금방이라도 아이들이 재잘대며 뛰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한 장씩 넘어가는 사진 어디에도 사람들의 온기는커녕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방사능은 그렇게 평온했던 도시 전체를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 도시’로 바꿔 놓은 것이다. 이를 가리켜 이케나가 변호사는 “체르노빌에서나 볼 수 있던 광경이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이케나가 오사무 변호사
농촌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오다카 정에 위치한 한 농장의 축사는 텅 비어 있었다. 원래 그곳에서 사육되던 60여 마리의 소들은 모두 살처분됐다. 주변의 다른 농장도 사정은 같았다. 농장마다 살처분된 소들을 묻어둔 매장지가 곳곳에 무덤처럼 솟아 있었다. 사고 이후 농민들은 가축에게 사료를 주러 돌아올 수 없게 되자 가축들을 야산이나 들판에 풀어줬다. 그러다보니 야생화된 가축들은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됐고, 정부는 이 지역에서 키우던 가축 수만 마리를 모두 살처분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지금도 소가 사육되는 축사가 한 군데 남아있기는 했다. 방사선이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이케나가 변호사는 사전에 동의를 구한 한 피난민의 빈 집에도 들어가 보았다. 방에 걸려있는 옷가지와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심지어 사고 당일 아침에 마시던 찻잔까지 그대로였다. 사고 당일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급하게 몸만 빠져나온 흔적이 역력했다. 자녀의 방으로 연결된 2층 계단으로 올라가니 벽에는 아이가 좋아했던 한국 아이돌그룹 카라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집 주변에서는 정부가 시행하는 내진공사가 한창이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이처럼 예정된 공공사업을 계속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데도요.” 이케나가 변호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미에 정에서는 도로를 지나다가 희고 커다란 물체 하나를 발견했다. 쓰나미에 휩쓸려온 선박이었다. 기차역에서 선량계를 켜자 1.65마이크로 시버트(μ㏜)가 측정됐다. 그러나 그건 약과였다. 바닥에 선량계를 가져갔더니 9.999라는 숫자가 찍혔다.

“이건 실제 수치가 아니라 아예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보다 더 정밀한 선량계를 켜보니 무려 32.27마이크로 시버트가 나왔습니다.”

그런 이케나가 변호사의 눈에 신문 가판대에 놓인 신문이 들어왔다. 신문의 발행 날짜는 2011년 3월 11일, 1면에는 “동북지역에서 국내 최대 규모 거대 지진 발생”이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걸려있었다.

▲ 2년 반째 팔리지 않은 2011년 3월 11일 조간 신문이 사고 당일의 다급함을 보여준다. (사진 제공 / 이케나가 오사무)

▲ 이이다테 촌의 한 마을 농지에서 방사능 물질에 오염된 흙을 포클레인으로 긁어내는 제염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 제공 / 이케나가 오사무)

방사능 물질, 산림 통째로 없애지 않는 한 제거 불가
긁어낸 오염 물질 해결 방법도 아직 찾지 못해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주변에서 방사선에 고도로 오염된 지역을 중심으로 ‘제염작업’을 벌이고 있다. 오염된 땅 표면의 흙을 긁어내 다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수준으로 회복시키기 위해서다. 사고 이후 초기에는 고압으로 물을 뿌려 방사능 물질을 세척했지만, 오히려 강을 오염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자 땅을 긁어내는 방법으로 전환했다. 문제는 긁어낸 흙을 최종적으로 어디에, 어떻게 보관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간저장소 부지도 구하지 못해 일단 농지를 유상으로 임대해 ‘임시중간저장소’라고 이름을 붙여 말 그대로 ‘임시로’ 쌓아두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땅의 표면을 일부 긁어낸다고 해서 오염된 토지를 다시 예전의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제염작업은 주거지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고 있는 반면, 산림은 전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산림을 오염시킨 방사능 물질은 비가 오면 빗물에 섞여 하천과 땅으로 흘러든다. 산림을 통째로 제거하지 않는 한, 기존의 농지와 주거지만을 대상으로 한 제염작업은 사실상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거나 매한가지인 셈이다.

제염작업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큰 부담이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현 전체에 들어가는 제염작업 비용을 약 1조 5천억 엔(한화 약 16조 원)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민간 연구기관들 가운데는 20조 엔(한화 약 210조 원)까지 전망하는 곳도 있다. 이렇다보니 제염작업 자체가 새로운 이권사업으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후쿠시마 현의 다른 지역 상황은 어떨까. 최근 10월 19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소마 시의 어촌을 방문해 문어와 오징어 등 해산물을 직접 시식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후쿠시마 산 수산물이) 안전하고 맛있다고 전국에 알리고 싶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나 이케나가 변호사가 불과 3개월 전에 목격한 것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소마 시는 본래 수산물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갯벌 전체가 방사선에 심하게 오염되었다. 어민들은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다. 정부에서 낙지와 조개의 출하를 허락해 시험 조업이 이뤄지고 있었지만, 시장에 내놓아도 팔릴 리가 없다는 것을 어민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조업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보상 때문이다. 조업을 하지 않으면 도쿄 전력은 조업 피해에 대한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

표고버섯이 많이 나는 다케 시도 마찬가지였다. 버섯에 방사능 물질이 특히나 많이 축적된다는 사실은 한국에서도 익히 알려져 있다. 농민들은 상품으로 내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쿄 전력의 보상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버섯 재배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케나가 변호사가 측정한 표고버섯 재배용 나무의 방사능 수치는 0.68 마이크로 시버트. 사람들에게 먹으라고 내놓을 수는 없는 수준이었다.

▲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간판이 바닥으로 내려와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 2층 건물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사진 제공 / 이케나가 오사무)

생계와 건강 위협받는 주민들, “실험용 쥐가 된 것 같다”

위협받는 건 주민들의 생계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건강 자체에 대한 위협도 심각했다. 후쿠시마 시의 경우 제염작업이 거의 끝났음에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의 방사능 수치는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권고한 일상생활에서의 연간 피폭량 기준인 1밀리 시버트의 2배가 넘었다. 도로변 땅에서는 측정 불가 수치가 나오기도 했다. 이케나가 변호사가 만난 미나미소마 시의 한 시민은 정부가 주민들에게 배포한 피폭량 측정기를 보여주며 “우리가 실험용 쥐가 된 것 같다”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결국 일본 정부가 주민들의 안전과 건강보다는 행정적인 부담과 비용을 회피하는 쪽을 택했다는 것이 이케나가 변호사의 판단이다. 이처럼 원자력발전이 절대적으로 안전하고 깨끗하다는 일본 정부와 이른바 원전 마피아들의 ‘원전 불패 신화’는 쓰나미보다 더 높은 주민들의 실망과 좌절 속에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