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에서 치른 임 세바스티아노 신부 장례식

올해 초 받아 본 2013년 서울대교구 사제평생교육원의 사제 연피정 일정표에 처음으로 ‘독일 수도원 체험’이 들어 있었다. 여러 독일 수도원들을 체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좋은 기회이기도 했고, 다른 피정들은 시간이 안 맞아서 이 수도원 체험 피정을 신청했다. 그런데 이번 체험 피정에 참여한 우리 23명의 서울대교구 사제들이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에 도착하기 직전에 임인덕 세바스티아노 신부님이 이곳에서 선종하셨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신부님의 장례 일정에 함께하게 되었다.

ⓒ박정우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도 장례미사에 참석자를 보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일행이 우연히도 임 세바스티아노 신부님이 한국에서 50년 가까이 헌신한 데 경의를 표할 수 있는 한국 사절단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 기쁘고 하느님의 섭리처럼 느껴졌다.

사실 나는 임 세바스티아노 신부님이 분도출판사 사장으로서 출판해 오신 수많은 책들을 통해 신앙을 키우고 신학을 배워왔지만, 선종하시기 전에는 그런 사실을 잘 몰랐었다. 선종 기사를 읽고 나서야 독재정권으로 말미암아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에 <해방신학> 등을 통해 사회정의를 일깨웠고, 돈이 되는 책은 아니었지만 신학생들의 필독서였던 ‘분도신학 총서’를 펴내시는 등 한국 신자들의 큰 스승 역할을 해 오셨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신부님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크게 일었고 장례미사에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수도원에서는 오일장(五日葬)을 치르기에, 장례미사는 현지시간으로 16일 수요일 오후 2시에 거행되었다. 우리 일행은 14일 밤에 도착하여 17일 아침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으로 이동하게 되어 있었다. 수도원 측은 복음 낭독과 보편지향기도를 한국어로 추가할 수 있도록 하고, 영성체 후 특송을 불러달라고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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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번 피정 지도자인 최호영 신부의 제안으로 ‘임쓰신 가시관’을 부르기로 하고, 당일 오전에 연습을 위해 성당에 모였다. 사실 최 신부와 나는 신학생 시절 ‘임쓰신 가시관’ 작곡자인 신상옥과 함께 서울 대신학교에서 ‘낙산 중창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이 노래를 수도 없이 화음을 넣어서 불러왔고, 다른 신부들 역시 잘 아는 곡이라 각자 자신 있는 파트를 부르기로 했다. 연습 결과는 단 한 번 불러본 것으로 충분할 정도로 훌륭했다. 미사가 끝난 후 아빠스를 비롯해서 많은 수사님들이 이 특송에 대한 감동과 감사의 뜻을 전했다. 사실 ‘임쓰신 가시관’의 가사처럼 임 신부님은 주님을 닮은 삶을 사셨던 참 사제였다.

미사를 집전한 미카엘 아빠스는 강론에서 한국을 여러 번 언급했다. 독일어라 알아듣지 못했지만 나중에 전해들은 바로는 한국 사제들의 미사 참석으로 큰 위로를 받았고, 정작 독일의 형제들은 임 신부님의 한국에서의 활약을 잘 모르고 있었는데, 한국 신부님들의 증언을 통해 임 신부님이 한국 일간지에 기사가 날 정도로 큰 인물이었음을 알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게 해주어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10월 중순 온통 붉고 노랗게 물든 잎들과 떨어진 낙엽이 수도원을 아름답게 장식한 독일의 늦가을 정취 속에서 소박하면서도 장중한 전례는 수도원 뒤편의 무덤으로 가는 행렬과 하관식까지 이어졌다. 독일과 한국 형제들의 진심 어린 배웅 속에 하늘 나라로 가시는 신부님의 여정이 외롭지 않으셨으리라 믿는다. 주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빈다.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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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우 신부 (후고)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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