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댓말로 읽는 헌법 - 16]

슬아, ‘용산참사’ 이야기를 알고 있니? 2009년 초에 일어났던 비극적인 사건이야. 혹시 알고 있니? 지난 2010년 11월 11일, 용산참사 사건과 관련된 철거민 9명의 유죄 및 실형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어. 혹시 이것도 아니? 대법원에서 그 판결이 있기 일주일 전, 고등법원에서 용산참사 지역의 재개발이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무효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을.

물론 대법원 확정 판결을 기다려봐야겠지만, 만일 용산참사 지역의 재개발이 ‘무효’라고 확정될 경우 2009년을 뜨겁게 달군 최대의 ‘비극’은 2년 만에 ‘블랙 코미디’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불법 집회’의 문제로, 혹은 ‘적법한’ 또는 ‘위법한’ 공무집행의 문제로 이야기했지만, 오빠는 조금 생각이 다르네.

(하자 있는) 재개발 추진에 담긴 어떤 집단적 탐욕. 이에 대한 저항을 법치주의 이데올로기 확립 용도로 ‘활용’하려는 어떤 지배욕. 이 기회가 ‘승진’의 기회가 될 어떤 이들의 명예욕. 이런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명의 피해는 당연히 예견되었던 것이 아닐까? 탐욕과 지배욕과 명예욕의 소용돌이에 빠져 죽어간 용산 철거민들과 경찰관.

슬아,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해. ‘치료와 갱생 연합회’ 대표인 존 헤이글의 <고통과 악>에 등장하는 남미 신학자 마테오스(Juan Mateos)의 견해에 의하면, 예수가 죽은 것은 당시 정치적 · 종교적인 구조 속에 있었던 탐욕과 통제하고자 하는 지배욕과 올라가고자 하는 명예욕을 악마라고 불렀기 때문이래. 존 헤이글은 이에 대하여, 권세와 능력 있는 자들의 악은 존경과 두려움으로 아름답게 치장되고 합법적으로 위장된 악인데, 예수는 이러한 악을 위선이라고 꼬집었다고 이야기해. 존경받아 마땅한 권력자들의 신경을 건드린 죄. 그것이 심지어 사형을 선고한 총독 빌라도마저 “나는 이 사람의 죽음에서 손을 씻었다”라고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죄 없이 살해당한’ 예수의 죄라는 거야.

슬아 어때? 용산참사 때 일어난 죽음과 예수의 죽음에서 어떤 유사한 부분이 보이지 않니? 사실 이런 장면은 한국 현대사에서 그렇게 낯설지가 않아. 철거민들의 죽음과 관련해서도, 용산참사는 어쩌면 그동안 지속적으로 있어왔던 재개발 지역 주민들의 희생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는지도 모르겠어.

법의 보호망 밖에서 관행적으로 행해지는 건물 선임차인과 후임차인 간의 권리금(프리미엄) 지급은 해당 지역의 재개발 선정 시마다 문제가 되어 왔거든. 임대차 계약은 건물주인 임대인과 임차인 간에 하는 건데, 전임차인에게 후임차인이 권리금 명목으로 돈을 많이 주는 관행이 우리 사회에는 형성되어 있어. 그런데 재개발을 하면 이 돈을 보상해 주지 않아. 그래서 충분한 보상을 요구하며 임차인(상점 주인)들이 철거 반대 투쟁을 할 수밖에 없고. 사실 ‘용산’이 아니었더라도, 어딘가에서 ‘참사’가 날 예정이었던 거야.

슬아, 9차례나 개정되는 동안 합헌적인 개헌은 단 2번뿐이었던 한국 헌정사를 잘 살펴보면 탐욕과 명예욕과 지배욕이라는 욕망들의 향연과, 그에 대항한 수많은 ‘예수들’의 죽음이 몇 줄 안 되는 글과 60여 년의 역사 속에 깊숙이 새겨져 있단다. 그리고 그것은 1987년 개헌에서 헌법 개정 조항들에 그 흔적을 남겼지.

헌법 제128조
제1항 헌법개정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됩니다.
제2항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습니다.

헌법 제129조
제안된 헌법개정안은 대통령이 20일 이상의 기간 이를 공고하여야 합니다.

헌법 제130조
제1항 국회는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하여야 하며, 국회의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합니다.
제2항 헌법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합니다.
제3항 헌법개정안이 제2항의 찬성을 얻은 때에는 헌법개정은 확정되며, 대통령은 즉시 이를 공포하여야 합니다.

헌법의 개헌 규정을 살펴보면, 개헌이 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 의원 가운데 3분의 1만 반대해도 개헌은 할 수 없지. 그리고 대통령은 연임을 절대 할 수 없도록 해 두었고. 이는 독재자와 기득권집단에게 유린되어 온 헌정사를 반영한 거야. 더욱이 한국 사회의 근본 원리인 헌법 규정의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개헌을 하기 위한 합의 과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일반 국민(입법자)의 결단이기도 하고.

슬아, 혹시 지난 2011년 1월에 이재오 특임장관이 개헌 제안을 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니?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중핵으로 하는 현행 헌법상의 권력구조가 책임정치의 구현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이 매우 큰 공감대를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아.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따르면, 1987년 6월 항쟁 후 개헌에 관한 여야 논의 중 김영삼-김대중 민주진영은 대통령-부통령 4년 중임제를 주장했지만, 그럴 경우 단일민주진영이 선거에 나오면 필패할 것으로 예상한 여당에서 극렬히 반대해서 현행의 대통령 5년 단임제로 확정되었다고 해. 더욱이 김 전 대통령은 현행의 대통령중심제가 아닌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셨고,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 또한 재직 중이던 2007년 대통령 4년 연임 개헌을 제안하셨었지.

하지만 문제는 개헌 논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거의 ‘0’에 가깝다는 거야. 일반 국민은 대통령중심제나 내각책임제 등 권력구조의 변경을 위한 개헌이라는 주제보다는 무상급식이나 비정규직 문제, 물가 상승, 전세 보증금 상승, 대학 등록금 문제 및 북한 도발에 대한 우리 군의 대비 태세의 문제 등 민생 문제나 안보 문제에 훨씬 더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이니까. 더욱이 한국 헌정사는 이 땅에서 국민의 관심 밖에서 일어난 개헌은 모두 결정적으로 국민을 탄압한 세력에 힘을 실어준 개헌이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단다.

슬아, 정말로,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싸워서 얻어내고, 또 지켜내야 하는 무엇인 것 같아. 한 번 명예욕과 권력욕과 탐욕의 늪에 빠진 사람들은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 사람들의 집단이 결국 민주주의를 파괴하여 계속 기득권을 가지려고 한다는 것을, 우리 헌정사는 똑똑히 보여주고 있어. 그리고 그 과정 속에 ‘죄 없는’ 보통 사람들만, 용산참사에서처럼, 희생된다는 점을, 특히 주목해야 할 것 같아.

슬아, 우리 헌정사가 보여주는 건, 명예욕, 지배욕, 탐욕과 같은 욕망들에 대한 양심적인 사람들의 쉬지 않는 싸움이었던 것 같아.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유효한 싸움인 것 같아. 그러니 무엇보다도, 우리는 지배욕과 명예욕과 탐욕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되자꾸나. 대신, 우리는 좀 더 자유로워지자꾸나!
 

 
차진태 (모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재학 중이며, 구속노동자후원회 자문위원, 대학원자치회 대표를 맡고 있다. 예수살이공동체에서 배동교육(청년교육)을 받은 회원이며, 서울대 가톨릭 기도 모임 ‘피아트(FIAT)’에도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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