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종교의 향기 - 15] 강화도에서 공동체 일구는 성공회 ‘우리마을’

▲ 강화도 길상면 온수리에 있는 대한성공회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우리마을 ⓒ문양효숙 기자

‘마을’이 대세다. 단절되고 외로운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이, 강압하고 선언하며 밀어내는 국가에 지친 이들이, 소통하며 삶을 나눌 수 있는 마을로 눈을 돌리고 있다. 마을 축제를 열고 교육을 함께 하며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삶을 나누고 있다.

인천 강화군 길상면에도 마을이 있다. 마을 주민은 모두 58명. 주업은 콩나물 재배다. 좋은 우리 콩으로 잘 길러 하루 2톤이나 되는 콩나물을 대기업인 풀무원에 납품한다. 마을 이름은 ‘우리마을’. 이곳은 대한성공회에서 만든 지적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이다.

우리마을은 성공회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김성수 주교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기증해 2000년에 문을 열었다. 예쁜 돌담을 따라 들어가면 눈앞에 펼쳐지는 우리마을은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이라기보다 고즈넉한 피정의 집 같다. 콩나물 공장과 사무실뿐 아니라 공연장, 기숙사, 성당 등을 갖춘 이 아름다운 공간은 이외수 작가의 집필실과 서울 광화문 ‘트윈트리’ 등으로 유명한 건축가 조병수 씨가 설계했다.

건축을 시작하며 땅을 고를 때 나온 돌들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담으로 쌓았다. 건물은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렸고 태양열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한다. 돌담 옆 잔디가 깔린 공설운동장도 김 주교가 강화군에 기증한 땅이다. 장애인 시설이 지금의 위치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 반대한 길상면 이장은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지금이야 한 달 매출이 1억 4천만 원이나 된다지만,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농촌에서 할 수 있고 수익을 낼 수 있는 일을 찾으며 느타리버섯, 상추 등을 하우스에서 재배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러다 콩나물을 재배했고, 소문이 나 아이쿱 생협과 계약을 하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 우리마을 원장 유찬호 신부 ⓒ문양효숙 기자

“자립기반을 위해서는 일정한 소비처가 중요했어요. 평생 후원으로만 살 순 없으니까요.”

우리마을 원장인 유찬호 신부는 ‘자립’을 강조했다. 정부지원금이나 후원금으로 부족함을 보완하는 건 좋지만, 오로지 그런 선의와 도움에만 기대면 삶의 주체성이 사라지고, 그런 형태의 삶은 여러 면에서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유 신부는 “우리마을이라는 ‘집단’의 생산능력과 가치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마을이 튼튼해지면, 그 안의 구성원들 개개인의 능력이 떨어져도 함께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역량에 초점이 맞춰진 사회잖아요. 개인이 능력 있으면 잘 살고 경쟁에서 살아남지만,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죠. 그런데 우리마을은 중증 장애인 시설이거든요. ‘일할 수 있는 장애인만’ 있으라고 하면 중증 장애인은 여기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아이러니잖아요. 사실 중증일수록 이런 곳이 필요한 건데.”

우리마을에서 일하는 지적장애인 중 절반 정도는 출퇴근을 하고, 반은 기숙사 생활을 한다. 기숙사는 운영비와 인건비를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그룹홈과는 달리, 회사의 자제 비용으로 운영된다. 부담이 크지만 “그래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당연하지만 인간의 삶에 노동만 필요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 우리마을 장애인 기숙사 ⓒ문양효숙 기자

우리마을에서는 한글교실이나 문화제 같은 활동을 활발히 한다. 특이한 것은 장애인들이 직접 참여하는 미디어 프로그램이다.

“봉천동 나눔의 집에 있을 때, 장애인 분들에게 카메라를 주고 사진을 찍어서 대화를 했어요. 자기가 찍은 사진을 설명하면서 전에는 하지 않은 깊은 속내를 드러냈죠. 5년 정도 하니까 영화를 만들 수 있었어요. 매년 직접 시나리오도 쓰고 촬영과 편집까지 했어요.”

장애인들이 언제나 문화의 ‘소비자’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생산자’가 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우리마을에서는 3년째 미디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유 신부는 “누구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유 신부는 중증 장애인이 평생 살아갈 기반을 마련하고 싶어 했다. 작년에 유 신부는 마을에서 강화마을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영세농이었다. 계속 농사를 지었지만 판로가 마땅치 않았고 따라서 수익을 내기도 어려웠다. 우리마을이 풀무원에 콩나물을 납품한다는 소식이 마을에 전해지자 주민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유 신부는 우리마을과 지역 주민이 공동 생산, 납품하는 협동조합을 제안했고, 조합원 30명은 모집하자마자 마감됐다. 조합원 한 명이 기증한 땅에 간장과 된장을 만드는 장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주민들이 우리 마을과 함께 사업을 하는 형태죠. 단순한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이 아니라 지역에서 공동의 생산능력을 가지고, 우리 친구들이 주민으로 평생 살아갈 터전을 만드는 거예요. 서로 윈윈(win-win)하면서, 서로 기대면서요.”

유 신부가 생각하는 공동체는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리고 넓었다. 유 신부는 “기관을 넘어서 하나의 큰 마을 공동체를 일구고 싶다”며 “우리마을이 하나의 모델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들 혼자는 외롭고 두렵잖아요. 세상은 능력 우선주의인데다 기댈 곳도 없죠. 그러니 우리가 잘 살아가고, 누군가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며 자기 삶의 자리를 돌아볼 수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큐멘터리 감독인 부인과의 사이에 세 명의 자녀를 둔 유 신부는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달라졌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가 건강하려면 환경이 건강해야 하잖아요. 어떻게 해야 세상을 좀 더 건강하고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이 돼요. 우리 아이만 건강하다고 되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갈 사람들이 건강해야 하니까요.”

‘동네’가 ‘내가 사는 지역’으로, 나를 중심으로 한 공간의 의미라면, ‘마을’은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의미로,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이 담겨 있다. 핵심은 공간이라는 물리적 요소가 아니라 그 안에 함께 어우러지는 삶의 내용이다. 그래서일까. ‘마을’에는 ‘이웃집에 놀러간다’는 뜻도 있다.

‘우리마을’의 돌담을 걸어 나오며 묻는다. 우리는 지금 마을에서 살고 있는가. 서 있는 공간 안에 사람과 삶이 녹아들어 있는가.

강화도 길상면 온수리에 마을이 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힘을 모아 눈앞의 걸림돌을 치우며, 함께 행복을 만들어가는 진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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