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쇼를 사랑한 남자>,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2013년작, 현재 상영 중

“무신론이나 동성애와 싸울 시간에 세계의 빈곤과 싸우라”던 우리 교황님. 프란치스코 교황의 거듭되는 열린 태도가 불러일으키는 충격은 크다. 보수주의의 아이콘 ‘바티칸’ 발 전복의 메시지를 들으며, 시대의 변화에 맞게 가톨릭교회도 변화함으로써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한 종교로 다시 태어나야 할 때라며 지지를 표하는 사람이 많다. 반면 그의 행보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삐딱하게 째려보는 사람도 많다.

 
오늘 소개할 영화에서 어떤 특별한 영성적 메시지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결코 약자가 아니었던 한 유명 동성애자 연예인의 연애담을 듣는 것은, 세상의 수많은 알지 못했던 진실 중 하나를 접한다는 면에서 소중한 기회이다.

여기 호사스럽고 세속적이기 그지없는 실존인물 동성애자가 주인공인 영화가 있다. 그의 이름은 월터 리버라치. 이탈리아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피아니스트 리버라치는 1950년대에 ‘리버라치 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하여, 1970년대와 1980년대를 풍미했던 피아니스트 퍼포머다.

쇼의 여왕들인 마돈나와 레이디 가가, 쇼의 왕자인 엘튼 존 이전에 모피코트와 반짝이로 치장하고 현란한 손가락 튕기기로 열성 팬들을 끌어 모으며 죽을 때까지 유명인사였던 남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특별공연을 하고, 꿈의 무대인 뉴욕라디오시티홀 전 공연 매진 기록을 가진 남자.

영화는 1977년부터 리버라치가 사망하는 1987년까지를 담는다. 그 시기, 리버라치는 어린 연인 스콧 토슨과 함께였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숨길 수밖에 없었던 시대를 살았던 한 유명인사의 사생활을 통해 영화는 관용적이지 못했던 시대상을 그려낸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시기, 케네디는 죽고 히피즘은 서서히 명맥을 잃어가고 있었으며 ‘강한 미국’을 표방한 레이거니즘이 등장해서 미국 중산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며 사회는 급속도로 보수화되고 있었다. 음악계에서는 로큰롤과 소울, 그리고 디스코의 반항과 전복의 정신이 상업주의에 포섭되어 재편되어갔다. 또한 영화계에서는 뉴아메리칸시네마의 신선하고 진보적인 실험정신이 퇴보하면서 ‘클수록 더 아름답다’는 블록버스터의 새 시대가 열린 즈음이다.

저항과 전복의 자유주의가 쇠퇴할 무렵, 그 자리엔 상업주의와 성적 방종이 들어앉았다. 케네디의 죽음을 목격하고 식음을 전폐했던, 열렬 가톨릭 신도인 이 피아니스트는 ‘쇼의 달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더 화려하고 더 호사스럽고 더 소비적인 쇼의 세계로 빠져 들어간다. 이미 60대가 된 리버라치의 사생활도 쇼의 연속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순수한 여인을 찾아 헤매는 싱글 순정남으로 포장되었지만, 현실에서 그는 늙은 게이 색정광(色情狂)이었다.

 

<쇼를 사랑한 남자>는 ‘오션스’ 시리즈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한 작품이다. 영화의 원작은 스콧 토슨의 자서전으로, 원래는 TV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져서 텔레비전으로 방영되었고, 이 성공한 TV 드라마는 재편집을 통해 극장용 장편영화가 되어 개봉했다.

주인공 리버라치 역으로 최근 암을 이겨내고 돌아온 마이클 더글라스, 스콧 역으로는 근육질을 갖춘 지적인 마초남 이미지의 맷 데이먼, 성형괴물인 성형외과 전문의 역으로 <영 블러드>의 꽃미남이자 1980년대 대표 아이돌 스타였던 로브 로우. 이들 스타 배우들의 조합은 영화에 대해 한껏 기대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선한 이성애자 이미지를 가진 세 명의 남자 스타들은 각기 완벽하게 게이 역을 소화하며 섬세한 균형감과 원만한 앙상블을 이룬다. 이 영화는 얼마 전 끝난 에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현란한 쇼맨십으로 막대한 부와 명성을 누리고 있는 피아니스트 리버라치는 1977년 여름에 젊고 매력적인 청년 스콧 토슨을 만나게 되고, 이내 둘은 연인, 친구, 가족으로서 함께하는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수의사가 꿈이었던 순진한 농장 청년 스콧은 24시간 리버라치 곁에서 지내며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로 화려한 생활을 맛본다. 리버라치는 스콧에게 자신의 치부까지 보여주며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듯했다.

색정광 유명인사의 상상력은 그로테스크하기 그지없어서, 사랑하는 연인을 아들로 입양하겠다는 황당한 계획을 세우고, 스콧의 얼굴을 자신과 닮은 생김새로 성형해 버린다. 스콧은 경제적, 정신적으로뿐만 아니라 외형적으로도 리버라치에게 완전하게 장악 당한다. 그러나 요사스러운 색정광 엔터테이너의 변덕은 어쩔 수 없으니, 스콧은 곧 버림받게 될 것이다.

 

번쩍거리며 화려하게 치장된 볼거리로 영화는 큰 재미를 준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어서, 이야기는 사랑의 의미에 대해 묻고, 자신과 타인의 삶에의 책임에 대해 질문한다. 유명인과 어린 연인이 맺는 관계에는 여느 커플의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열정과 사랑과 질투와 집착, 그리고 애원과 미움, 연민이 따라 다린다. 집착은 파괴를 낳고, 파괴는 자신을 포기하게 만든다. 영화의 교훈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라는 것!

1985년에 중산층 마초남 아이콘이었던 영화배우 록 허드슨이 에이즈로 사망하며 게이임이 밝혀지자 전세계적으로 동성애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리버라치가 살았던 시기도 정확히 이 시기와 일치한다. 그는 살아 생전 여성들과의 염문을 만들어서 동성애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위장했다.

그는 1987년에 실제로는 에이즈로 사망했지만 당시에는 심장병이라고 발표할 정도로, 1980년대는 충분히 보수적이었다. 돈과 명예를 누리는 유명인의 성적 취향도 존중받지 못할 때이니 일반인 동성애자에 대한 핍박은 대단했다고 상상할 뿐이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흘렀고 이제 그만 인정할 때도 되지 않았나. 그럴수록 교황님의 입이 가진 위력은 강하고도 위대하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동국대, 수원대 출강 중.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