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교도소 수감 박도현 수사의 8번째 옥중서신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활동으로 수감 중인 박도현 수사(예수회)가 쓴 편지가 공개됐다. 이를 전재해 싣는다. ―편집자

▲ 박도현 수사
가을 기운이 완연합니다. 모두들 안녕하시지요.

많은 분들의 기도와 연대 덕분에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교도소 접견(면회) 오시는 분들이 많이 묻는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그중의 한 가지는 교도소 생활의 어려움과 불편함에 대한 물음이지요.

“혹, 어려움은 없으세요?” 혹자는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지내기에 제일 어려운 것은 무엇이지요?”

그러면 저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뭐, 큰 어려움은 없고요. 지금까지 어려움을 생각하기보다는 감사할 거리들을 많이 생각했네요. 여기서도 감사할 거리가 많아서, 굳이 어려움이라면 1평 가량의 공간에 갇혀서 24시간 통제된 생활을 해야 된다는 건데, 밖에 있는 분들의 기도와 접견 등으로 외롭지 않았네요.”

최근에 이런 대화를 하고 저의 방으로 돌아오면서 ‘무엇이 나를 가장 어렵게 하는지’를 떠올려 봤습니다. 아무래도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통제받는 생활에서 오는 어려움이 가장 큰 도전이겠지요. 그러나 구속된 생활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으니, 불편은 제 몸이 적응함으로 해소되는 것이 됐습니다.

연행되어 구속된 지 석 달이 지났으니, 세월만큼이나 많이 적응했지요. 그럼에도 방으로 돌아와 앉자마자 바로 도전거리가 생겼습니다. 배식구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나의 책 읽기를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런 통제할 수 없는 소음이 현재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다가오네요. 어떤 소음이냐고요? 저의 독방 배식구 바로 밖에 세 명의 ‘소지(도우미)’가 있는데, 그 중 40대 고참 소지가 내 옆방 수용자 김 군에게 해대는 욕설 섞인 큰 목소리입니다.

좀 지난 이야기지만,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소리 때문에 같은 페이지에서 10분 가량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짜증이 났었지요. 그 고참 소지가 내 옆방 김 군에게 하는 이야기는 생활 교정 지시이기도 하고 인생 상담과 같은 대화인데, 하루의 중요한 소요거리인 듯합니다.

여기서 ‘소지’란 출력(노동)을 나온 기결수입니다. 매일 아침 6시 50분에 출력 나와서 저녁 6시 40분쯤에 기결수동으로 귀가하지요. 그들은 매 끼니 배식하는 일, 구매물품 신청 및 분배, 온수 배급, 보고전 전달 등, 수용자와 계장(교도관) 사이에 중계자 겸 도우미 역할을 합니다. 수고비랄까, 한 달 받는 돈이 3만 원 정도 합니다. 처우가 안타깝습니다.

하여튼 통제할 수 없이 매일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소리가 심하게 방해가 된 것은 ‘책 읽고 싶은 욕구’를 좌절시켰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가 방해가 될 때면 일단 읽던 책을 덮고 그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집중하지 않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신문 등으로 바꾸어 읽기도 합니다. 역시 함께 사는 삶에서는 사소하고 쩨쩨한 일들이 현실의 어려움으로 다가옵니다.

며칠 전 미국에서 온 85세 예수회 원로 빅스 신부님이 교도소를 다녀갔습니다. 10분의 짧은 면회시간에 간단한 인사말을 주고받은 후, 신부님께서도 반전평화를 위해서 핵잠수함에 무단 승선했고, 이 문제로 곧 미국 재판정에 서야 하는데, 신부님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말을 덧 붙였습니다.

▲ 9월 30일,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 2주년 미사가 봉헌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앞을 방문한 윌리엄 빅셀 신부(오른쪽) ⓒ정현진 기자

존경과 고마움이 우러났고, 신부님과 좀 더 긴 시간의 나눔을 할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았지요. 동시에 작년 2월쯤 영국에서 온 평화환경활동가 엔지 젤터(Angie Zelter)와의 만남이 떠오릅니다. 그녀는 동티모르 전쟁터로 날아갈 예정인 영국 폭격기를 손 망치로 망가뜨려서 구속되었으나, 영국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낸 사건으로 유명합니다. 이 폭격기의 폭탄에 무고하게 죽어갈 수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그녀는 폭격기를 파손시켰으며, 법원은 그녀의 평화 추구 행위를 인정하여 무죄로 판시했습니다.

그녀가 강정마을에 한 달 가량 머무는 동안 강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구럼비 해안 쪽으로 쳐놓은 철조망을 자르고 구럼비 바위로 많은 미사 참석자 등과 함께 들어갔다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지요. 이 사건으로 한국 정부는 그녀를 조건부로 추방한 셈입니다.

시대의 징표를 읽으며 예언자의 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회개하십시오!” 모세,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요나 등과 같이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자. 하느님은 나약한 인간을 예언자로 선택하십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먼저 저항합니다. “아, 주 하느님,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예레 1,6). 그러나 그들은 결국 하느님의 소명을 받아 떠납니다. 위험하고 외롭게, 그러나 용감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앞의 반전평화와 환경보호를 부르짖는 두 분에게서 예언자적 몸짓을 또한 봅니다.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제3차 세계대전에 대한 과학자이자 환경주의자인 아인슈타인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제3차 세계대전에는 어떤 무기들로 싸울지 알 수 없지만, 제4차 세계대전에는 몽둥이와 돌을 들고 싸울 것이다.” 중국과 한반도의 해안을 따라 세워져 있는 수도 없는 핵발전소를 봅니다. 그리고 중국, 미국, 북한의 핵무기가 동북아 여기저기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파괴력과 살상력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최첨단 무기들을 늘리려고 군부는 안달입니다.

한 · 중 지도를 보십시오. 핵발전소든 핵폭탄이든 어디에서 터져도 한반도는 직 · 간접 영향권에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쟁이나 전쟁을 유발하는 사고의 결과는 공멸입니다. 그러니 무기와 힘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군사력에 북한의 국내총생산보다도 많은 34조 원을 한해 국방비로 쓴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와 해군은 온갖 절차적 속임수로 천혜의 섬 제주도에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안보의 이름으로 강정마을에 지뢰를 묻으려는 행위처럼 느껴집니다. 지뢰는 언젠가 터지기 마련인데.

이명박 대통령이 불통으로 밀어붙인 4대강 사업의 결과와 국민이 치러야 하는 대가를 위정자들이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그리고 평화는 평화적 수단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것도.

모두 모두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고, 평화와 희망으로 풍성한 가을 보내시길 기도합니다.


2013년 10월 3일, 제주교도소에서, 박도현 수사.

“악인이 의인을 거슬러 계교를 꾸미며 그를 향해 이를 가는구나. 주님께서 악인을 비웃으시니 그의 날이 다가옴을 보시기 때문이다. 악인들이 칼을 빼들고 활을 당겨 가련한 이와 불쌍한 이를 쓰러뜨리고 옳은 길 걷는 이들을 죽이려 하는구나. 그러나 그들의 칼은 자기들 가슴을 꿰찌르고 그들의 활은 부러지리라. 의인이 가진 적은 것이 악인들의 많은 재산 보다 낫다.” (시편 37,12-16)


박도현 수사
(요한)

예수회

* 주소 : 690-162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2동 161번지 박도현 수사 #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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