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신학 - 김근수]

▲ <젊은 시절의 예수>, 제임스 티소, 1894년

예수는 노동자였다. 그것도 화이트칼라가 아닌 육체노동자였다. 노동자 생활이 예수의 공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우리가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추측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실정과 고통을 예수가 가까이 느끼고 아는 계기였다는 사실이다. 예수에게 육체노동은 가난한 사람과 일치하는 성사적 행위였다.

예수의 삶을 재현하고 계승하는 사제 생활에서 아쉽게도 육체노동이 대부분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예수의 마음을 사제들이 느끼기에 유리하지 않은 환경이다.

사제들이 자신의 임무 내에서 나름대로 정기적으로 육체노동에 참여하는 것이 어떨까? 일주일에 하루 또는 한 달에 두어 번씩 정기적으로, 신분을 감추고 말이다. 육체노동이 사제에게 주는 고마운 장점은 한둘이 아니겠다.

신학교 시절부터 경제적 고뇌에서 사실상 면제된 삶은, 사제들이 사람들의 경제적 현실을 제대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 사제의 가족과 신자들, 지인들의 이야기를 물론 자주 경청하긴 하겠다. 그러나 관찰과 참여는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사제들의 육체노동은 사람들이 처한 경제적 현실에 눈뜰 계기를 줄 수 있다. 신학교 수업에서 정치, 경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빈틈을 실존적으로 보완하는 기회가 되겠다. 구조로서의 경제, 가난한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좀 더 정확히 알 수도 있겠다.

육체노동은 심리적 겸손과 실존적 어려움이 얼마나 다른 차원에 있는지 느낄 좋은 계기다. 마음이 몸에 주는 영향에 대해 자주 교육받지만, 몸이 마음에 주는 영향에 대해 별다른 교육도, 체험도 부족한 것이 성직자 생활의 단면이다. 두뇌를 움직이는 것과 몸을 움직이는 것은 결코 같지 않다. 육체노동이 생략된 가난의 영성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육체노동은 가난한 교회에 대한 사제들의 열망과 체험을 격려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회’뿐 아니라 ‘가난한 교회’를 사제들이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교회는 돈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보겠다고 출발한 조직이 아니다. 교회가 가난해야만,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를 비로소 믿어준다. 육체노동을 하는 사제가 신자들에게 헌금 이야기를 자주 하겠는가. 교회 운영이 부자 중심으로 흘러가겠는가. 성지 개발이니 성당 신축이니 하는 말이 쉽게 나오겠는가.

육체노동은 사제의 세속화 현상을 견제하고 반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육체노동을 정기적으로 하는 사제가 세속화에 크게 물들 수 있을까. 사제가 골프장에서 농약을 뿌리는 일을 한다고 상상해보자. 그 사제가 골프장에 차마 들락거릴 수 있을까.

안식년이나 휴일에 자발적으로 신분을 감추고 육체노동을 하는 사제들도 있다. 참으로 고맙고 존경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육체노동이 사제 생활의 전반적인 흐름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의무가 아니라 자진해서 그렇게 일하는 사제가 늘어나면 참 좋겠다.

주교들이 노인들과 어울려 거리의 쓰레기를 줍거나 길거리 화단 작업을 한다고 상상해보자. 사제들이 건물 공사장에서 일한다고 상상해보자. 한 달에 한두 번 그렇게 일한다고 상상해보자. 그렇게 일하는 본인들에게 삶과 생각에서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신자들의 삶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열성적인 사제와 헌신적인 평신도가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모습을 지니고 있다. 정의구현에 앞장서는 사제들과 상당히 세속화된 삶을 사는 사제들이 공존하는 기이한 모습도 지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회 개혁 노력을 지원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가난한 교회를 만들어가는 노력이다. 육체노동은 가난한 교회를 지향하는 사제들의 다짐이요 기초다.

이처럼 육체노동은 사제의 현실인식, 영성, 가난한 교회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주고, 세속화를 견제하는 등 다양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계기인가. ‘지금 한국 가톨릭교회가 제대로 살고 있느냐?’ 이런 질문은 가톨릭 신자들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물어보아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 입에서 ‘아니요’라는 답이 나온다면 가톨릭교회가 무언가 크게 잘못 사는 셈이다. 사제들의 육체노동은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와 종교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김근수 (요셉)
연세대 철학과, 독일 마인츠대학교 가톨릭신학과 졸업. 로메로 대주교의 땅 엘살바도르의 UCA 대학교에서 혼 소브리노에게 해방신학을 배웠다. 성서신학의 연구성과와 가난한 사람들의 시각을 바탕으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마르코 복음 해설서 <슬픈 예수 : 세상의 고통을 없애는 저항의 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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