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무지개 깃발을 짓밟는가> 저자 스티븐 스프링클 교수 강연회 열려

▲ 강연하는 스티븐 스프링클 교수(오른쪽). 같은 학교에 재직 중인 강남순 교수가 통역을 맡았다. ⓒ문양효숙 기자

“우리는 성소수자 혐오범죄 희생자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잊지 않아야 해요. 살아있는 우리는 그들의 삶의 증인이 되는 의무와 존엄성을 지닙니다. 불편함과 거부감을 일으킬지라도, 우리는 죽은 그들과 소통해야 합니다.”

15일 오후, 서울 성산동 섬돌향린교회에서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이자 인권운동가인 스티븐 스프링클 교수의 강연회가 열렸다. 우리신학연구소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가 공동 주관한 이 강연회에서 스프링클 교수는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기억하는 것은 공동체적 치료 행위인 동시에 사랑과 정의의 정치적 행동”이라고 말했다.

▲ <누가 무지개 깃발을 짓밟는가>, 스티븐 스프링클 지음, 황용연 옮김, 알마, 2013
스프링클 교수는 자신의 저서 <누가 무지개 깃발을 짓밟는가>(알마, 2013)의 한국 출판을 기념해 방한했다. 이 책은 미국에서 성소수자 혐오범죄로 살해당한 14명의 이야기를 다룬다. 스프링클 교수는 4년 반 동안 희생자들의 가족, 친구, 동료, 사건 담당 경찰과 언론사 기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스프링클 교수는 이날 강연의 원래 제목이 ‘내 아이를 잊지 말아라’였다며, “이는 성소수자 혐오범죄로 살해당한 15살 소년의 어머니가 내게 하신 말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신앙공동체에서는 희생자의 이야기가 특별히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포함해서 성서에는 수많은 희생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신앙공동체는 이야기를 전수받고 전수하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그 안에는 선하고 좋은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닙니다. 불의하게 고통받았던 이들의 이야기도 많습니다.

저는 신앙공동체에서 약자와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제가 사회정의에 얼마나 헌신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죽은 이들의 이야기는 현재 우리의 삶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지요. 배제된 사람의 이야기, 불의하게 죽임 당한 사람의 이야기는 신앙인에게 책임을 묻고, 이는 공동체의 중요한 뿌리를 형성합니다.”

스프링클 교수는 우리가 끔찍한 살해 사건 이야기에 이끌리는 이유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자신의 안락한 일상에서 벗어나 ‘나도 그런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위험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성애 중심의 사회 구성원들에게 성소수자 혐오범죄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변혁이 일어나며, 그 때문에 “우리는 끝없이 이들의 참혹한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책 1장에는 참혹한 살해 사건을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며 삶이 변한 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베테랑 경찰서장 데이브 오말리는 1998년 매튜 세퍼드 사건을 담당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이 사건은 두 명의 백인 청년이 종교적 이유로 당시 대학생이었던 동성애자 매튜 세퍼드를 끌고 가 폭행하고 인적 드문 울타리에 묶어 놓아 죽도록 내버려둔, 전형적인 성소수자 혐오범죄였다.

오말리는 2000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전에 나는 동성애자에 대한 온갖 선입견으로 똘똘 뭉친 나쁜 사람이었다. 그러나 매튜 세퍼드 사건으로 그의 친구와 가족을 만나면서 눈이 떠졌다. 매튜의 친구들은 죽을까봐 두려워 전학을 가고 마을을 떠났다. 그들은 누구라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전혀 두렵지 않은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생의 위협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후 오말리는 알바니 카운티의 보안관으로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한 거침없는 대변자가 되었다. 스프링클 교수는 “모든 죽음의 순간에, 살인에 반대하는 분노는 삶과 죽음만큼이나 보편적”이라고 말했다.

▲ 15일 오후, 섬돌향린교회에서 스티븐 스프링클 교수의 강연회가 열렸다. ⓒ문양효숙 기자

그는 역사 속에서 흑인 노예 수송, 나치의 유대인 학살, 마녀 사냥과 종교재판 등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제는 결국 일시적일 뿐이었으며, “성소수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소수자가 “이데올로기로 배제 당하는 최후의 특정 그룹일 것”이라며 “이전의 다른 혐오와 폭력처럼, 성소수자 혐오도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우리의 희망”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성소수자 혐오범죄 10개 중 9개가 종교적 신념에 근거해 저질러집니다. 미국 캔자스 주는 노골적으로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지요. 다행인 것은 혐오의 불을 끄기 위한 움직임들이 종교인들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전에는 조용히 교회를 떠났던 성소수자들이 그 안에서 ‘여기가 내 자리다’라고 목소리를 내며 비난과 탄압을 버티고 있지요. 무언가를 바꿔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신앙공동체들이 늘어나면서 버틸 힘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스프링클 교수는 “살아있는 이들은 희생자들을 부정하고 망각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럴 때 산 자들은 억울한 죽음이 늘어나도록 방조하는 자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그들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에 가까이 서고, 그들이 ‘나와 관계없는 누군가’가 아니라 내 친구, 가족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 비로소 새로운 세계, 배제되는 이가 없는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신이 개별적으로 어떤 성적 성향을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희생이 일어나서는 안 되지요. 이성애자들은 자신이 당연히 누리는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삶의 권리를 LGBTQ〔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 성 정체성을 탐구 중인 사람(Questioning)을 통칭하는 말〕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지점까지 나가야 합니다. 성소수자들이 아무런 두려움 없이 권리를 가지고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스프링클 교수는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며 “나와 내 가족이 삶의 기쁨과 권리를 누리고 싶다면 다른 이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책은 “희생자들에게 인간의 얼굴을 회복시켜 주는 작업”이었다며 “그들의 삶을 지금에 되살리고 증명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강연 후 한 참가자는 “성소수자 혐오가 없어지고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 낙관하기에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현상도 많다. 한편에서는 권리가 진전된 듯하지만, 최근 러시아에서 반(反) 동성애법이 통과된 것처럼 혐오를 부추기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도 한다. 어떻게 우리가 이런 움직임에 대해 단호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하고 물었다.

이에 스프링클 교수는 “2009년 오바마 정부는 성소수자 차별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법이 통과된 후 성소수자를 향한 폭력은 더 늘어났다. 그러나 이것은 예전에는 보고되지 않았던 폭력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지나친 낙관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보이는 것 너머에 해석과 분석의 여지가 매우 많다”고 말했다. 그는 14명의 희생자 주변에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고 성소수자의 권익을 증진시키는 움직임이 늘어난 것 등을 예로 들었다.

“부당하게 죽임을 당한 이의 부모가 정의를 위해 투신한 경우가 많습니다. 14명 주변도 그랬지요. 사랑하는 사람이 희생되자 가족과 친구들은 적극적으로 성소수자의 권익을 위해 일하게 됐습니다. 더 많은 이를 변화시키는 힘은 이론이 아닌, 이들의 살아있는 목소리일 것입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책의 내용은 피해자 주변에 집중돼 있는데, 가해자와 가해자를 만드는 구조에는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피해자는 계속 생기지 않겠나”라고 물었다. 스프링클 교수는 성소수자 가해자들을 만나 인터뷰한 피터 챙(Peter Chang) 감독의 다큐멘터리 <살인면허증>(Licence To Kill)을 소개하며, “놀랍게도 모든 가해자가 자신의 신앙에 근거해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대답했다”고 답했다.

“그들은 성서적 근거를 대고, 개신교 유명 지도자들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살해를 조장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결국 사회 권력과의 커다란 싸움입니다.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들의 삶도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그러니 거대한 힘에 맞서기 위해서는 종교인이든 아니든 함께 일해야 합니다. 무관심과 외면 대신 거룩한 분노와 사회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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