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그리스도교의 사회사> 번역, 초기 교회 모습을 사회적 맥락에서 읽어내..

 

<초기그리스도교 사회사-
고대 지중해 세계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에케아르트 슈테게만, 볼프강 슈테게만 지음(도서출판 동연)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는 지난 12월 22일 오후 5시 만해NGO센터에서 <초기그리스도교의 사회사-고대 지중해 세계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라는 책의 출판기념회를 겸한 송년회를 가졌다. 이 책은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손성현 교수와 괴팅엔 대학 출신의 김판임 교수가 공동번역한 볼프강 슈테게만과, 그의 쌍둥이 형제인 에케하르트 슈테게만이 지은 것으로, 새로운 성서해석의 가능성을 사회사(社會史)를 통해 보여준 책이다.

이날 첫 번째 논평을 맡은 김창락 소장(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에 따르면, 1970년대 말에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 출신의 몇몇 성서학자들이 사회사적 성서해석에 주목하였고, 이들은 전통적 성서해석에 대신하여 전혀 새로운 성서해석을 내놓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이 해석방법을 ‘비관념적 성서해석' 또는 '물질적 성서해석'이라고 이름 붙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실사적(實事的) 성서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바 있다고 한다. 김 소장은 “이 성서해석 방법이 아직까지는 ‘거지 왕자’의 신세이지만 성서해석의 본래적 왕자, 참된 적자(嫡子)로 판명될 날이 곧 도래하기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한편 두 번째 논평을 맡은 김학철 교수(신약학. 연세대)는 ‘초기 그리스도교 사회사 연구의 한국 수용사적 의미’라는 주제로 발표하면서 이 책을 통해 한국 그리스도교의 캐리커처를 그려나갔다.

한손엔 성경, 다른 한 손엔..

김 교수는 그리스도교 신자이자 시민사회의 일원인 우리는 종종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이라는 경구를 듣는데, 이 말은 신앙과 사회를 균형 있게 바라보라는 권고라고 말한다. 그런데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에는 찬송가를.”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회를 등진 근본주의 신앙의 모습이며, 아주 딴판으로 사회현실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구호 중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인다고 말했다.

대다수 교인들은 “한 손에 영어 성경을, 다른 한 발은 시청 앞 극우보수 집회에.” “한 손에는 성경의 교리적 읽기를, 다른 한 손에는 조중동을.”이라는 깃발 아래 모이고, 정치에 민감한 일부 목사들은 “한 발은 교회에, 다른 한 발은 이른바 진보적/보수적 시민단체 혹은 정권기관에”라는 깃발 아래 모인다는 것이다.

한편 김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개신교의 ‘장자’ 교단이라 불리는 한 교단의 최근 총회에서 ‘총회 신학대학 교수 신학성향검증위원회(가칭)’를 구성한다는 안건이 통과되었다고 밝혔다. 이제 교단의 목회자들이 대학교수들의 신학 성향을 검증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검열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공식화되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가톨릭교회에서도 서울대교구에서는 최근 ‘출판물검열위원회’가 생겨 교회서적들을 사상검증하고 있으니 비슷한 맥락이겠다.

개신교회는 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제자리를 못 잡고 갈팡지팡하는 게 일부 신학자들 때문이라고 판단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김 교수는 꼬집었다. 그는 오히려 “신학자들이 지금 자신이 외국에서 배워 온 지식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느라 우왕좌왕한다. 그들은 결연한 각오로 ‘잘못된 신학교육’을 할 용기도 없고, 분연히 일어나 그리스도교의 현실에 참여하고 변혁하고자 하는 의사도 없다.”는 것을 문제삼는다.

예수운동은 사회적 일탈운동이었다

김학철 교수
한편 김 교수는 이러한 한국교회의 모습을 되짚어 보면서 슈테게만이 초기 그리스도교 사회사 연구 분야에 교과서가 될 만한 책을 쓴 셈인데, 이러한 노력은 “인간 존재의 현실을 각자가 처한 구체적인 사회적 맥락에서 보도록” 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곧, 예수가 살았던 이스라엘의 땅 역시 1세기 지중해 세계를 장악했던 로마 지배 체제의 군사, 경제, 사회, 문화, 종교적 질서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 ‘예수 운동’의 고유한 성격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슈테게만은 팔레스타인 안에서 진행되었던 예수 따름을 ‘농촌’이라는 생태학적 환경에서 비롯된 ‘예수운동’이라 부르고, 팔레스타인 밖의 도시적 환경에서 성장한 예수 따름을 ‘그리스도-고백 공동체’라고 불렀다. 그는 이들 공동체의 사회적 배경을 먼저 따져 묻는다.

“몇몇 예외를 빼고는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하던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농촌출신 하층계층에 속했다. 그들은 동시대의 예언자적 천년왕국 비전에 고무된 다른 그룹들과 유사한 종교적 동력에서 출발하였는데, 이는 저자의 명명에 따르면 하나의 ‘일탈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운동은 이 비전과 카리스마적 행태를 통해 당시 이른바 주류에서 빗나가며 확장되었다. 예수 사후 그 운동을 특징지었던 카리스마는 비인격화되고 마침내 제도화되기에 이른다. 마태복음서와 요한복음서는 그러한 후기 공동체의 삶의 정황을 잘 드러낸다.”

“한편 팔레스타인 밖 도시를 근거로 하던 ‘그리스도-고백 공동체’ 역시 도시의 하층계층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들은 주로 이방인들로, 종말론적 비전보다는 ‘카리스마’에 의해 추동되었다. 에클레시아로 불렸던 그 공동체는... 팔레스타인 밖에 유사한 신앙적 뿌리를 가진 유대교 회당 및 다른 이방 종교단체와 경쟁과 갈등을 겪으며 유지되고 또 성장하였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초기 그리스도교가 자신을 주류에서 벗어난 ‘일탈적 모임’이거나 '세계와 갈등을 빚는 존재'로 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회의 주도층, 지배자의 태도를 이미 학습한 가톨릭교회

김학철 교수는 슈테게만의 연구에서 얻은 통찰을 통해 한국 그리스도교가 어떤 사회적 자의식을 가졌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 그리스도교, 특별히 개신교인들이 ‘독선’, ‘배타’, ‘옹졸’, ‘이기’ 등의 말로 비판받는 이유가 박해 받던 소수자였던 때의 언행 문법을 버리지 못한 데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보면서 “과거 한국사회에서 소수였던 때의 피해자적 소수자의 자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묻고 있다. 김 교수는 이제 한국 그리스도교가 사회의 주변자나 소수자, 일탈자가 아니라 도리어 상류계층을 대거 흡수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가 되었다는 점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개신교는 여전히 주류 종교의 언어를 배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주류 사회에서 피해를 입은 이들과도 함께 하지도 못한다는 데에 문제가 놓여 있다”고 말한다. 또한 “가톨릭이 근래 한국사회에서 적지 않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이른바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측면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으면서도 이미 천 년이 넘게 사회의 주도층, 지배자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학습한 결과로 보인다.”고 평가하였다.

결국 개신교의 전투적 성향은 1세기 팔레스타인 예수운동처럼 소수종교의 모습 그대로인데, 실상 우리 사회의 무력한 이들과 소수자들에 대한 연대감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으며, 한편 가톨릭교회는 다수종교의 풍모를 지니면서 예수운동이 가졌던 복음과 거리가 먼 안온한 지배자의 모습을 띤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슈테게만의 이 책은 비록 세상을 바꿀 만한 혁명적인 책은 아니지만 1세기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기원과 사회적 성격을 밝혀 오늘 이 땅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곱씹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한상봉/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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