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7시 30분 태평로 서울파이낸스센터 앞

국정원 문제 해결을 위해 천주교 평신도들이 다시 나서기로 했다.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선언 추진위원회는 지난 9월 11일 열린 제1차 시국기도회에 이어, 오는 10월 16일 오후 7시 30분, 1차 기도회가 열렸던 장소인 태평로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국정원 개혁을 촉구하는 시국기도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지난 6월 25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등 가톨릭 평신도 단체들이 한국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와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등과 함께 천주교계에서 처음으로 국정원 개혁을 위한 시국선언을 발표한 바 있으며, 이는 7월 21일 부산교구를 시작으로 전국 각 교구 사제들의 시국선언으로 이어졌다. 천주교 사제들의 시국선언운동은 9월 23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서울광장에서 ‘국가정보원 해체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전국 시국기도회’를 열고 “온갖 불법으로 민주주의 존립을 위협하는 국정원을 해체하라”고 촉구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나승구 신부는 <국민TV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시국기도회가 계속될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강우일 주교께서 잘 말씀해 주신대로, 성령께서 계속 일을 하신다면, 그리고 그 하시는 일을 마무리하신다면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현재 국정원 개혁을 위한 촛불집회마저 다소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사제들의 시국기도회도 중단되고, 이목이 밀양 송전탑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문제가 한꺼번에 사방에서 터지고 있어서, 말 그대로 정신 차릴 틈도 없는 실정이다. 매일같이 대한문 앞에서 미사를 봉헌하지만 쌍용차 문제는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강정 해군기지는 물론이고, 밀양 송전탑 문제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정부 아래서 합리적 정치와 약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가 없다. 국군의 날에 보여준 군사 퍼레이드가 상징하고 있듯이, ‘대결과 갈등’이 현 보수세력을 키우는 숙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문득 우리나라가 ‘전시 체제’에 들어간 듯한 살풍경이다. 어디선가 국민 모르게 ‘국가비상대책회의’ 같은 게 가동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마을 모자 대신에 등장한 해병대 차림의 노인들이 기세등등한 나라, 그 나라가 우리나라라면 끔찍한 노릇이다. 국정원 공작원들이 암약하는 ‘국민이 행복한 나라’에서 ‘행복한’ 국민이 누구인지 묻고 싶다. 4대강 사업의 후유증이 사실로 확인되어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여전히 행복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전히 부엉이바위 위에서 울고 있을 것만 같다. 그 장례식장에서 아이처럼 울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없는 대한민국에서 ‘행동하는 양심’은 박해받고 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훈령 <자유의 자각>에서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의 나라를 전파시켜 모든 인간들이 구원을 받고 또 자신들을 통하여 실제로 온 세상이 그리스도께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목적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며, 이러한 과업을 완수하여야 한다. 구원 사업은 이렇듯 이 세상의 인간생활 조건을 개선 향상시키는 과업에 확고히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80항)고 말한 바 있다.

교황청이 펴낸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공권력의 도덕적 정당성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공권력은 독재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안 된다”(1902항)고 명시하고 있다. 또 “공권력은 집단의 공동선을 추구하고, 또한 공동선을 달성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합당한 방법들을 사용해야 비로소 정당하게 행사되는 것”이며, 만일 지도자들이 옳지 못한 법률을 제정하거나 윤리 질서에 어긋나는 조치를 취하는 일이 있다면, 그런 규정들은 “더 이상 공권력이 아닌 압제”(1903항)라고 말한다.

교회는 이러한 압제에 대해 저항할 의무가 있다. 교회는 이를 ‘사회적 사랑’이라고 부르며, 약한 자들과 일치하는 연대는 “인간적이고 그리스도인다운 형제애가 직접 요구하는 것”(1939항)이라고 가르친다. 비교적 보수적이었다고 알려진 교황 비오 12세조차도 1941년 라디오 연설에서 형제애에 입각한 투신적 사랑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요청한 바 있다.

“이천 년 동안 어제나 오늘이나 사람들을 영웅적 사랑으로 이끌어 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위대한 정신이 교회 안에 계속 살아 있습니다. 농사짓는 수도자, 노예 해방자들, 병을 치유하는 사람들, 그리고 모두가 인간답고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여건을 만들고자 신앙과 문명과 지식을 모든 시대, 모든 민족에게 전달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교황 비오 12세, 1941년 라디오 연설)

ⓒ한상봉 기자

현재 국정원 문제에 대해 외롭지만 지속적으로 입장을 밝히고 있는 교구는 천주교 광주대교구뿐이다. 광주대교구는 북동성당에서 10월 내내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시국미사와 강연회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9월 12일 남동 5.18기념성당에서 열린 시국미사에서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성명서를 통해 현 시국을 “유신독재의 회귀”로 규정하고, 박근혜 정부를 성토하면서 “현 시국에 대해 슬픔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를 인용해 “우리가 하는 일이 바위에 계란을 치는 것같이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하느님께 계속 간청하면 민주주의와 한반도의 평화를 후손들에게 드러낼 수 있다”고 격려했다.

국정원 문제는 사실상 국정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음지’에서 ‘민주공화국’을 위해 활동해야 할 국정원이 정치 전면에서 국정을 농락하고 있으며, 국민보다 정치권력을 위한 국가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 있다. 4.3 항쟁 당시의 토벌대처럼 보이는 공권력에 의해 군사작전처럼 추진하는 강정 해군기지 공사처럼, 충분한 국민적 합의와 설득을 동반하지 않는 정치로부터 해방되려면, ‘국정원’으로 상징되는 공작정치를 중단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다시 평신도들이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모여 그분의 참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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