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별 이야기]


연말을 맞아 송년모임에 참석하느라 어느 갈비집에 먼저 도착해서 혼자 앉아 있었다. 예약된 자리로 가서 물을 마시며 곧 나타날 동창들의 얼굴을 그려보니 정겨움에 미소가 번져 나왔다. '성실' 하나만을 의지한 채 거친 바다를 건너온 친구들이기에 눈가가 붉어지는 면면들이었다.

70년대 중반, 우리들은 천호동에 소재한, 문교부의 인가가 나오지 않은 작은 야간학교의 동창들이다. 어느 집의 가정교사 겸 식모로 일하다 저녁에 공부를 하러 나오든지 군소공장에 다니며 공부와 일을 병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십대 중반의 아이들이었다. 형편에 매여 사느라 그랬는지 중학생답지 않게 우리는 각자 사는 전세방 가격을 묻거나 연탄을 몇 장 때는지 등 아주 생활에 밀착된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다. 단짝으로 지내던 한 친구는 집에서 새로 곤로를 샀다며 쓰던 곤로를 머리에 이고 나의 자취집에 가져다 준 적도 있었다.

적신(赤身)으로 굶주림과 수치를 당한 걸 보복하듯

친구들은 서울에 집을 갖고 아이들을 키우며 저마다 일터에서 책임자 역할을 맡고 있었다. 열 명 안쪽이라면 갈비나 회쯤이야 거뜬히 사줄 수 있는 경제력도 있었고. 술이 돌고 이야기가 무르익어 가자, 이야기는 옷차림과 명함에 박힌 직위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며 성공한 친구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한 마디씩 덕담을 하는데, 그 도가 점점 상승하더니 정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들이 일군 성공을 기둥삼아 그에게 찬가를 바치는데 뭔가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겪은 친구들이라 그런지(?) 사람을 평가하는 가치기준이 경제적 성공 한 가지였다.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세상에 적응을 못하는 덜 떨어진 존재가 되어 성공한 이들을 돋보이게 해주는 제물이 되었다. 지난 시절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적신(赤身)으로 굶주림과 수치를 당한 걸 보복하듯, 이제 그들은 조금의 염치도 없이 경제적 성공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친구들을 조롱하고 있었다.

이야기가 지난 대선과 현재의 경제상황을 진단하면서 알게 된 건 우리 친구들이 경제를 살리겠다는 분을 대통령으로 만든 최고의 공신들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분의 통치력을 나름대로 지지하고 있었다. 친구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겨우 집 한 채 지니고 살 뿐 별다른 성공의 지표는 없었다. 선대로부터 축적된 문화적 심도나 경제적 여력이 없어 허허벌판에 선 모습으로 보이건만 그들의 자부심은 짜증을 넘어서 안쓰러움에 젖게 만들었다.

우리들이 '성실' 하나로 30 여 년간 이룩한 현주소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성실(誠實)... 성실이란 이름으로 우리는 집을 장만하고 자식들을 일류학교에 보내며 낙오(?)된 친구들을 불성실한 놈으로 단정해 버렸다. 지난 날의 피해자가 2009년 오늘 어울리지 않는 가해자의 역할을 하면서 서로 자족하고 있는 꼴이었다. 스스로 자신을 배반하는 모순에 빠져있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들 이미 중상층에 편입된 줄 착각하면서... . 그들이 1970년대 중반 중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처지에 빠진 일이 그 당시 우리 나이의 어른들의 무책임이었음도 자각하지 못했지만, 지금 여기에서 성인이 된 우리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들이 근거가 허약하다는 사실도 안중에 없었다.

친구들은 나름대로 경제적인 안착을 이뤄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들은 서로에게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있었다.

불야성을 이룬 거리를 휩쓸며 4차에 이르도록 먹고 마시며 서로를 탐색하고 찬양하다 비난하는 혼란을 감당하고 집에 들어와 혼자 커피를 마셨다. 우리가 이룬 게 이거였나 하는 자괴감에 밀려오는 허무로 가슴이 쓰렸다.  

정범태, 결정적 순간, 경기고등군법재판소, 서울, 1961

순결한 하느님의 육화를

위 사진은 `결정적 순간, 경기고등군법재판소, 서울, 1961`이라는 제목의 사진으로 사진기자 정범태 선생이 찍은 군사법정의 한 컷이다. 오일륙 쿠데타로 수립된 군사정부가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는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군사재판에서 어린 아기가 방청석에서 죄수들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 나와 수의를 입고 있는 어머니의 손을 잡는 사진이다. 부정부패를 저질러서라도 재물을 모으고 싶었던 이 어머니는 아기의 미래를 염려한 것이었을까... .

명작으로 꼽히는 이 사진을 보며 죄 많은 인류에게 오시는 순결한 하느님의 육화를 생각했다. 우리를 구원하는 건 어머니와 아가의 이런 신뢰와 사랑일것이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 하느님의 편린이 부정부패의 법정으로 오시어 어머니와 아들이 되어 손을 잡는 거 같아 이 사진을 오랫동안 들여다 보았다. 우리의 옛날 아기 모습에 머릿속이 시원해지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내 친구들이 부정부패를 저질러 집을 사고 부를 과시하더라도 친구인 내가 이 아기처럼 그들의 손을 잡아줄 수는 없는 건지 자문해 보았다. 몇 잔의 커피를 마시며 새벽이 될 때까지 옛친구들을 생각했다. 경제적인 성공을 향해 외길로만 달려온 친구들이 모처럼 옛친구를 만나 돈자랑 직위자랑을 했다고 너무 비판적인 눈길을 보낸 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알고 보면 어딘가의 지점장인 친구는 곧 다가올 구조조정으로 실업자가 될 처지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연봉이 억대를 넘어서는 친구는 그 연봉을 유지하느라 얼마나 머릿속이 복잡하고 일에 짓눌리는지 나는 모른다. 저마다 외롭고 허무하고 쓰라릴 것이다. 돈에 치중된 하루하루를 보내다, 문득 흙덩어리로 굳어져가는 몸속으로 죽음을 예감하고 경악하는 순간이 왜 없겠는가.

잘 된 친구의 자랑을 너그럽게 받아주는 여유가 없어서야 어디 사람은커녕 강아지나 키우겠나 하는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이규원/ 드라마와 소설 작가, 어린이 책읽기 교실 <글방집>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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