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에서 마주친 교회]

대학 때 꽤 많은 집회와 시위 현장에 참여했지만, 잘 뛰지 못하는 나는 대열에서 떨어질까 혹시나 잡혀갈까 엄청나게 떨었고, 눈치껏 바짝 쫓아다니곤 했다. 학교를 한두 해 더 다닐수록 그런 두려움의 마음을 드러내기 어려웠고, 가끔은 너무 두려워서 그게 두려움이라는 걸 잊은 줄 알았다.

그렇게 두려움을 잊은 듯 살아오던 2009년이던가. 명동에서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의 4대강 관련 미사와 행진이 있었다. 미사까지는 뭐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미사가 끝나고 행진이 시작되면서 몇 걸음 떼지 않았을 때, 그 자리에 혼자 참가했던 난 그 순간 왠지 간 덩어리가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이 자유분방한 행진 대열에서 혹 잡혀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 탓이다. 그날 그 행사가 끝나고 동생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부끄럽기까지 한 그 두려움에 대해 한참이나 횡설수설 어설픈 수다를 떨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내 두려움을 인정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꽤 오랫동안 난 내가 아주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존재라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건 단지 강해 보이고 싶었을 뿐 실제의 난 별로 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지 몇 년 안 되었다.

내 안의 두려움을 알게 되고부터 나는 거리에서 싸우는 사람들, 철탑을 올라가는 사람들, 희망버스에 오르는 사람들, 비혼을 주장하는 사람들, 탈핵을 말하는 사람들을 전보다 더 많이 존경한다. 이렇게 맞서 싸우기 어려운 권위적인 체제와 문화, 질서에 대항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들만의 두려움이 존재할 것으로 생각해서다.

지난 기고에 대한 반응 몇 가지를 보면서 오랜만에 간이 쪼그라들었다. 몇 달 전, 우연히 만났던 CMC(가톨릭 중앙 의료원) 해고자 몇 분이 가톨릭교회의 놀라운 정보력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다. 해고자 중에 누구를 회유하면 효과적일 것인지까지 파악한 것처럼 느껴지더란다. ‘그들이 나를 찾아왔다’고 했는지 ‘골랐다’고 했는지, 그분들의 정확한 표현도 잊은 것 같다.

비록 해고자 몇 분의 직감이라 하더라도 참 무서웠다. 필명으로 글을 쓰는데도 내가 누군지 알아낼 사람이 곧 나타날 수도 있겠구나. 아니면 혹시 정보기관 같은 곳에서 남편에게 ‘네 마누라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알고 있느냐’라며 전화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자본론을 강의하는 시간강사도 고발당하는 토끼몰이 분위기까지 더해져 생기는 공포심 같은 것, 그런 이유로 혹여 해고되는 것도 싫지만, 나와는 차원이 다른 ‘권력’에 파악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정말 소름이 끼친다. 그것이 교회든 국가든 말이다.

사실 한국 천주교회에 적을 둔 평신도가 ‘본당에서 마주친 교회’라는 칼럼의 성격에 맞게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글을 쓰기는 쉽지 않다. 물론 우리는 ‘내가 교회’라고 교리를 통해 배우기도 하지만, 교회와 관련된 영역에서 조금 활동을 해보면 ‘정말 내가 교회일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기도 한다. 어찌 보면 ‘너도 교회인데 왜 다른 존재의 부족함을 들추려 하느냐’는 비난도 감수해야 하는 코너다. 나도 다른 필진의 글을 읽을 때 이 칼럼이 좀 더 불편하고 읽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또, 너는 얼마나 깔끔하고 성실한 직원이었느냐 물으면 도망치고 싶어질 지경이다. 요즘 흔하게 유행하는 ‘갑을관계’라는 말로 치면 여러모로 ‘을’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할 사람들, 우리 사회에서 99%쯤 될 거라고 얘기하는 ‘을’이 교회 안에 있다면 당연히 교회 직원이다. 그 입장에서 하는 얘기는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나도 이곳에서 일하기 전엔 그랬으니까.

성직자 중심의 위계를 갖는 교회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하위 층을 차지하는 무리가 교회 내 ‘노동자’이고, 거기에 속한 내가 교회를 바라보며 갖게 된 여러 생각을 거칠면 거친 대로 나누고자 용기를 내었으니 못마땅하다는 소리를 피하진 못할 거라 각오도 했다. 그랬으니까 나는 충분히 편향적이고 치우친 글을 썼을 테고 앞으로도 가능하면 더욱더 그렇게 쓰고 싶다.

불행하게도(?) 이 칼럼에 기고를 시작할 즈음 천주교회는 국정원 해체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하면서 우직하고 역사적인 행보로 한국 현대사의 한 획을 긋고 있다. 160일에 다가가는 쌍용자동차 미사도 그렇고 강정에서, 밀양에서 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활동 중이다.

정말 따뜻하고 신심 깊고, 게다가 약자와 소수자에 관심을 기울이는 성직자, 수도자가 적당히 많아서 가톨릭교회가 존경받아 마땅함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 칼럼의 취지는 그런 구성원들이 존재하고 많은 문제의식을 느낀 평신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교회는 여전히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문제에서 벗어날 길을 함께 찾자는 것으로 생각한다. 일단 모르던 처지에 있는 이의 말을 들어주겠다는 마음으로 이 코너를 대해주면 좋겠다.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얘기가 시작되고 길도 찾을 것 아닌가.

세 살 된 딸아이를 키우는데 그 아이는 자기 나름의 하고 싶은 게 있고, 나에게 요구하는 게 있어도 어른보다 말이 미숙하고 힘도 약하다 보니 자기주장을 하려면 떼쓰며 귀가 떨어져 나가라 울어 대곤 한다. 아이에게는 그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 크고 말이 늘면 말싸움이라도 하겠지만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로 해를 입는 자와 차별로 덕 보는 자, 힘센 자와 약한 자의 힘의 크기가 딱 엄마 앞의 아기처럼 느껴진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애처럼 울고 떼쓰지 않으면 흘깃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은 ‘을’의 입장을 ‘을’끼리라도 다독이며 나누어야 할 텐데, 그것도 만만치 않은 게 요즘 우리 사는 세상이다.

기성세대 혹은 기득권층은 언제나 아동, 청소년이나 소수자들에게만 조용히 하라고, 고분고분 말하라고, 말 잘 들어야 착하다고, 항의하려면 절차대로 하라고 말한다. 우리도 다 아이였으니 난 그런 말 안 들어봤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처럼 이렇게 이름도 못 밝히고 글을 쓰면, 이러지 말고 절차를 통해서 항의하라고 하거나 그냥 참고 국으로 있으란다.

그런데 양보나 협상은 더 많이 가진 사람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하고 싶은 얘기의 순서는 내가 정해야 하는 것 같은데 참 알 수가 없다. 상대편이 100을 가지고도 다섯을 내놓기 꺼리는데 내가 가진 10을 내놓으라는 협상은 이미 불평등하고 편향적이라고 판단하는 게 상식인 듯한데 말이다.

공손한 말투로 차분히 얘기하라는 말을 어떤 대상에게 하는지 잘 살펴보자는 거다. 그 말을 하는 나는, 또 당신은 어른인가 아이인가? 우는 아이들에게, 좌충우돌 10대에게, 부하 직원에게,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이나 밀양에서 삶의 터전을 지키려 몸부림치는 할매들에게 하고 있지는 않나? 왜 그들만, 또는 우리만 착하고 공손해야 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그 알 수 없는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 참 두렵고 두렵지만, 두려워도 계속 하는 게 용기라니 다시 용기를 내볼까 한다.


림보
(필명)
장래희망 있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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