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어느 분과 얘기를 나누다, 2008년 한반도 윗분들은 작정하고 벽돌깨기를 하는 듯하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나마 이 나라를 조금이나마 괜찮은 동네로 만들어주었던, 무지막지한 독재 속에서도 신기하게도 피어나고 살아났던 몇 개의 밑돌들. 소수자보호, 평준화교육, 금융실명, 평화통일, 최저임금 보장, 비정규직 보호, 재벌견제…… 제발 이것만은 살려주었으면 했던 안전핀들만 쏙쏙 뽑아 깨버리고 있으니 말이다. 뻔한 상상이지만 자꾸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그분이 한반도라는 이 너저분한 시장통에 오신다면 어떻게 일갈하실지 말이다.

인간 예수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을 직시하고 보듬으라며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택했다. 또한 신 예수는 과연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세상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몸소 인간이 되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택했다. 그 죽음을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이 시대에 더욱 절실하고 소중한 가치들을 우리는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늦었지만 하나라도 더 살려내야 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나와 함께하는 사람, 땅이 살기 위해서, 더 이상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 없기 위해서.

이제 몇 밤만 자면 떠들썩한 크리스마스이다. 누군가에게는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나눠주는 날이고, 누군가에게는 연인과 사랑을 확인하는 날, 누군가에게는 예수가 태어난 날이겠다. 어떤 날이든 이날의 주제어는 ‘사랑’이다. 나눔, 돌보기, 돌아보기, 보듬기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조카에게, 혹은 부모에게, 연인에게, 아니면 내가 사는 동네에서 같이 보듬어야 할 아이에게 한 번쯤은 권해주고, 전해주고 싶은 몇 개의 이야기를 감히 권해본다.

<미친 개>(박기범 지음, 김종숙 그림, 낮은산 펴냄)를 읽으면서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답답한 마음이 목까지 차오르는데 마치 가위눌리듯이 하고픈 말은 터져 나오지 않는 그런 지독한 안스러움으로 힘들었을 뿐이다.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떠돌게 된 개는, 미친 개로 오해받아 돌에 맞고, 쫓기고, 또 울부짖고, 더욱더 미친 개로 오인받아 공포의 대상이 된다. 악순환이다. 읽는 내내 궁금했다. 왜 사람들은 저렇게 오해를 할까? 마음이 궁핍해지고, 먹고살기 힘들어질수록 사람들은 공공의 적을 만들어낸다. 좀 과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쫓기는 미친 개를 따라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꾸 그분이 떠올랐다. 힘든 십자가를 짊어지고도 아무 말씀도 없으셨던 그분.

이야기는 사람을 닮는다. 박기범의 <미친 개>를 이야기하다 보니, 박기범이 그토록 따랐던 할아버지, 작년에 이 힘든 세상을 등지고 지금쯤은 그 작은 소원처럼 조금은 편해지셨을지 궁금한 권정생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마도 이 시장통을 바라보며 지상에서보다 더 속앓이를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권정생 할아버지의 이야기들은 모두 너른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무엇을 꼽아도 상관없겠지만, 유독 이 이야기를 꼽은 이유는 추운 겨울 구멍 난 양말, 해어진 바지를 기워 주시던 어머니가 생각나서일까?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권정생 지음, 박경진 그림, 우리교육 펴냄)은 권정생 할아버지 특유의 천진난만함, 작은 생명 하나도 아끼는 연민의 마음, 자연과 하나 되는 마음, 함께 사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듬뿍 담긴 짧은 이야기 여섯 마당이다.

아끼며 살면서도 해맑은 또야의 웃음, 흥겨운 장터 구경을 위해 키 큰 아저씨 머리에 응아했다고 미안해하는 찔룩이 동생 개미, 물렁감을 따먹기 위해 애쓰는 통통이 돼지와 가던 길을 멈추고 물렁감 따는 일을 도와주는 아기 사슴 콩이, 젊은이들이 떠나 버리고 시골 마을에서 쓸쓸히 혼자 살면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살구나뭇집 할머니의 눈빛, 불이 난 강 건너 마을을 보며 애타하고, 도움을 주는 동물들, 다 나눠 주고 나서 교회에 갈 때 떡이 얼마 안 된다고 미안해하는 오두막 할머니의 따뜻한 얼굴, 모두가 내게는 그분의 얼굴 같았다.

마지막으로 좀 생뚱맞아 보이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만국기 소년>(유은실 지음, 정성화 그림, 창비 펴냄). 아홉 편의 이야기는 모두 지금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진짜배기로 그려내고 있다.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살아가지만 세상 모든 나라와 수도 이름을 줄줄 외우며 삶을 견뎌내는 아이, 외할머니, 친할머니 틈에서 알콩달콩 괴로워하면서 커 가는 아이, 자식 앞에서 당당하고 멋져 보이고 싶은 아빠를 보는 아이, 단 돈 천 원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면서 손님을 맞기 직전 온갖 생각으로 설레는 아이, 엄마가 사라져버렸을까 고민 고민하는 아이, 가난 때문에 보리밥만 먹어 방귀를 잘 뀐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는 아이…….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종부세, 대운하, FTA, 미친소, 비정규직, 특목고, 물대포에도 찌들지 않은 이 아이들이야말로 정말 그분의 마음 아닐까? 우리가 보듬고 꼭 껴안아야 할 2008년 한반도의 예수 아닐까?

그런데 2008년 12월 한반도에 사는 우리 어른들은 어떠한가? 일제고사라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멍들게 하고, 양심에 따라 이 무지막지한 폭력을 거부한 선생님들을 파면ㆍ해임하고, 그래서 또 한 번 아이들 마음에 못질을 하고 있다. 2000년 전에도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우리들은 또 한 번 그분의 마음에 못질을 하고 있다. 제발, 제발…… 딱 한 번만이라도 우리 이웃들을, 아이들을 돌아보는 2008년 12월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생긴다.

정우진 / 책 만드는 사람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