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없는 밀양 송전탑 건설, 공권력 투입 중단해야”

천주교 사제와 가톨릭농민회원이 2일 오전 11시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앞에서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에 반대하는 무기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단식을 시작한 이는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상임대표 조성제 신부(부산교구), 가톨릭농민회원이자 밀양 동화전마을 대책위원장인 김정회 씨와 부인 박은숙 씨다.

이들은 단식농성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밀양 송전탑 건설은 핵마피아들을 위한 명분 없는 공사”라고 비판하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공권력 투입과 공사 강행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 단식에 돌입하는 김정회 밀양 동화전마을 대책위원장(앞줄 오른쪽 두 번째)이 막내 아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단식에 돌입하는 김정회 씨가 호소문을 읽으며 눈물을 보이자 부인 박은숙 씨와 막내 아들이 함께 울음을 터뜨렸다. ⓒ문양효숙 기자

기자회견에서 김정회 위원장은 “70~8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현장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병력과 한전 용역에 막혀 진입하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경찰과 몸싸움을 하고 있다. 체력이 저하되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쓰러진 분들도 있다”며 밀양 현장의 소식을 전했다. 김 위원장은 “국책사업은 우리나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행복한 것이어야 하는데 왜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하고, 왜 서울에서 편하게 전기를 쓰는 사람은 행복한가?”라며 “공권력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폭력으로 진압하지 말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대화에 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조성제 신부는 “성직자가 이렇게 길바닥에서 단식을 시작하는 건 목숨을 바쳐서라도 제발 미친 짓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라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더 이상 다치게 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조 신부는 “지난 5월 공사 재개 때, 경찰 병력 1,000명이 와서 할머니 30명을 부상 입혔는데 이번엔 3,000명이 배치됐다”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테러범인가? 국민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오히려 한전을 돕고 있다”며 비판했다.

조 신부는 “한전은 365㎸ 지중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자기 입으로 인정했다”며 “한 기당 30억인 765㎸ 송전탑은 사막형인데다 구시대적”이라고 말했다. 조 신부는 “할머니들은 언제나 ‘나는 그만 살아도 된다. 다만 우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죽겠다’고 하신다”면서 이런 할머니들이 보상금 400만 원 받자고 목숨 내놓고 싸우겠는가” 하고 물었다.

▲ 단식농성을 시작한 조성제 신부가 “밀양 송전탑 건설을 즉각 중단하라”고 외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기자회견에서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한전이 밀양 송전탑 건설이 필요한 이유로 제시했던 ‘신고리 3 · 4호기 완공’과 ‘2014년 여름 전력수급 문제’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양이원영 처장은 “올해 말 준공, 발전될 예정이었던 신고리 3 · 4호기는 원전 비리로 관련 부품을 교체, 검사해야 하기 때문에 빨라야 내년 8월에나 가동할 수 있고, 전기가 필요한 시기는 낮 3~4시간 동안이지만 원전은 24시간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전력난에 맞는 발전 방식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완공도, 가동도 못하는 신고리 3 · 4호기 때문에 밀양 송전탑 공사를 강행한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한전에게 지금 시급한 일은 송전탑 건설이 아니라 원전 비리에 대한 사과와 대책 마련”이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양이 처장은 “올 여름 3개의 원전을 가동하지 않고도 전력은 부족하지 않았고, 최대 전력은 작년보다 낮았다”면서 “사실과 다른 이유로 국민을 협박하며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지 말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이들은 한국전력 앞에서 단식을 시작했다. 이날 김정회 위원장은 자녀 4남매와 함께 가족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가톨릭농민회 측은 “아이들을 위한 깔개만이라도 허락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경찰은 농성장 설치를 불허했다. 이에 농성단은 맨바닥에 앉아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밀양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내가 경찰에 끌려갔을 때 이틀 밤낮을 맨바닥에서 그냥 주무셨다”며 “상황이 급박하니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단식을 시작한 김 위원장은 “지금 1년 농사를 마무리하는 가장 바쁜 시기지만 다 포기했다”며 “농사는 내년에도 지을 수 있지만 송전탑은 이번에 막지 못하면 평생 우리 자식들이 고통스러울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날 동조단식에는 지영선 환경운동연합 대표와, 원불교 환경연대 강해윤 교무가 함께했다.

단식농성에 들어가며 (조성제 신부)

불의한 정부가 주민들을 막다른 곳으로 몰고 있습니다. 아무런 정당성도, 근거도 없는 공사에 밀양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

지금 밀양 주민들에게 국가는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전력수급’이라는 기만적인 논리로 강탈해가는 도둑에 다름 아닙니다. 한국전력은 지난 8년간 밀양 주민들에게 너무나 큰 죄를 지었습니다. 주민 동의와 설명 절차 없는 노선 선정, 일방적 공사 강행, 공사 현장에서 이루어진 말할 수 없는 인권유린과 분신사망으로 이어진 용역 폭력, 전문가들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지식권력의 폭력, 우리는 이 폭력의 배후에 핵마피아들과 대기업의 이윤이라는 이 시대의 거대한 마몬이 숨 쉬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시골 노인의 생존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강탈해가는 죄, 지금 저들이 저지르고 있는 죄가 하늘에 사무칩니다. 땅과 고향을 지켜온 어르신들에게 이 사회와 국가권력이 저지르는 이 커다란 죄악을 어떻게 갚을 수 있겠습니까?

감추어진 잘못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한국전력은 주민들 앞에 사죄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저는 밀양 어르신들의 피눈물 나는 싸움에 주님의 길을 따르는 한 사제로서 함께하고자 합니다. 어서 빨리 정부와 한국전력이 어르신들 앞에 잘못을 참회하고 회개하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겪을 주림의 고통이 어르신들의 피눈물 나는 고통에 가 닿을 작은 기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13년 10월 2일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 상임대표 조성제 임마누엘 신부

765㎸ 송전탑 반대 가족단식을 하며 정부에 드리는 호소문

저는 41세 밀양시 단장면 동화전마을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위원장 김정회입니다.

십여 년 전에 방위산업체에 근무하다 사람 죽이는 무기를 만드는 것이 싫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사람 살리는 농사,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유기재배 농사를 지으려고 귀농하여 열심히 하늘과 땅만 쳐다보고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이럴 때 하는 말인 것인지, 나라가 원하는 세금 한 푼 빼먹지 않고 열심히 냈고, 나라에서 원하는 다자녀 정책에도 동참하여 4명의 자식을 두어 아름다운 밀양 땅 동화전 산골마을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던 우리들에게 닥쳐온 시련이 있었습니다. 왜 765㎸ 송전탑이 집 앞으로 지나가야 하는지, 과연 내가 무엇을 잘못했고 힘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손톱이 닳도록 흙을 파서 만든 전 재산과 건강을 빼앗아 가려고 하는지, 저는 아직도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국민이 주인이라 하던데 주인이 원하지 않는 공사를 왜 공권력이라는 폭력을 동원해서까지 하려 합니까.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행복할 수 있도록 공사를 해야지 한 명이라도 불행하게 하는 공사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밀양 765㎸ 송전탑 공사를 재검토해 주십시오.

산자부 장관님이 내려오셔서 한 말씀과 국무총리님이 내려오셔서 한 말씀이 ‘밀양 주민들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아름다운 양보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밀양 4개면 52개 철탑 밑에서는 우리 부부, 할머니, 할아버지들,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서는 양보하고 또 양보해야지요. 그러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겨울바람을 이기고 올라오는 새싹보다 더 약하고 어린 우리 6살 진서가 거대한 765㎸ 송전탑 밑에서 산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은 것입니다.

차라리 나를,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몸과 마음을 갈가리 찢어 놓으십시오. 절대로 저 어린 생명을 765㎸ 송전탑 밑에서 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제발 765㎸ 송전탑을, 핵발전을 멈추어 주십시오.

2013년 10월 2일
밀양 765㎸ 송전탑 경과지 동화전마을 김정회 · 박은숙

▲ 기자회견이 열리기 전 농성장 설치 불허 방침을 밝힌 경찰이 한전 앞을 에워싸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앞에서 밀양 송전탑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시작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문양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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