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 - 35]

우리 집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다울이가 9월부터 유치원에 다니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죽마고우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그 얘길 했더니 친구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야, 너 학교도 안 보낸다더니!”

그렇다. 귀농 세계에 입문을 하면서부터 아이를 낳게 되면 당연히 학교에 안 보내겠다고 작정을 했다. 자연이라고 하는 너른 배움터가 있는데 굳이 학교에 보낼 필요가 있을까 싶었으니까. 또한 학교 교육이 오히려 아이의 개성을 갉아 먹을 거란 염려도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수많은 만남과 사건을 겪으면서, 학교에 보내고 안 보내고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란 것을, 어떤 경험이든 하지 않는 것보다는 기꺼이 하는 것이 배움에 이롭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무르익었다. 다랑이가 태어나자 다울이가 부쩍 아기처럼 굴게 된 것이다.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엄마가 해 주기를 바라는가 하면, 밖에 나가 노는 일에 도통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말년 병장이 되었다고나 할까. 이 녀석을 어떻게든 움직이게 하려고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밖에 데리고 나가는데 그럴 때마다 반발이 심했다.

“다울아, 논에 갔다 오자. 나락들이 다울이 발자국 소리가 듣고 싶대.”
“싫어. 논에 안 가. 힘들단 말이야.”
“그럼 엄마랑 다랑이만 간다. 집 잘 지키고 있어.”
“엄마랑 다랑이도 가지 마. 논에 가지 말자. 힘드니까 집에 있자.”
“힘들어야 힘이 나지. 가는 길에 다람쥐 있나 찾아보자. 논에 갔다 와서 간식 먹을까?”

그런 식으로 어렵사리 설득을 해서 길을 나서면 논에 다다를 때까지 가는 길 내내 “힘들어 힘들어” 노래를 불렀다. 밖에 나가면 다람쥐처럼 조르르 달려 다니며 온갖 것들을 새롭게 발견했던 다울이가 이렇게 변하다니!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드디어 때가 왔구나’ 하고. 다울이에게는 새로운 자극과 만남이 필요했다.

▲ 오늘 아침, 다울이는 울지 않고 통학버스에 올랐다. ⓒ정청라

다울이가 다니게 된 곳은 면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규모와 시설은 도시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아이들은 다울이까지 여섯 명뿐이다. 때문에 각각의 아이들은 존재 자체로 귀한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엄마들의 요구에도 민감해서 저녁 일곱 시까지 돌봄을 받는가 하면 방학도 며칠 안 된다고 한다. 아직은 엄마 품이 그리운 나이의 어린 아이들이 1년 내내 아침부터 밤까지 유치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사실 그 부분이 가장 마음에 걸렸던 터라 다울이를 유치원에 보내던 첫날 교장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렸다.

“유치원에서 저녁까지 먹고 오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조금 일찍 보내주셨으면 하는데 가능할까요?”

그랬더니 호탕하게 웃으시며 염려 말라고 하셨다. 원하는 시간에 다울이 전용 택시에 태워 집에 보내주시겠다면서 말이다. 교육 예산에 아이들을 위한 택시비도 따로 나오는 모양이었다. 또한 예방접종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노터치, 우유를 먹이지 않는 것에도 노터치, 겁냈던 것과 달리 내가 바라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맞춤형 시스템이라 방어적으로 눈치를 살피던 나는 시원하게 어깨를 폈다. 이 정도 유연함이면 대안학교나 공동육아 어린이집도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아이들 인원이 많지 않다보니 다울이가 생각보다 쉽게 적응을 하는 것 같았다. 물론 처음 일주일은 나름 힘들었는지 입에 아구창이 생기기도 했고, 유치원에서 때때로(지루한 활동을 하거나 낮잠 자는 시간이 되었을 때)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고 한다. 아침에 통학버스에 오를 때 “유치원 안 갈 거야. 집이 최고야”하며 대성통곡을 해서 내 마음이 먹먹해질 때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집을 떠나 낯선 곳에 적응하려는 안간힘 속에 몸과 마음이 쑥쑥 자라고 야물어지는 게 아니겠나.

아닌 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다울이는 맛있는 게 있으면 친구들이랑 나눠 먹겠다면서 싸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친구들 이름을 물어보면 관심도 없는 듯이 엉뚱한 이야기만 하더니 이제는 손에 꼽아 가며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그뿐인가. 신발 신기, 오줌 싸기, 김에 밥 싸 먹기 등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부쩍 많아졌다. 차츰차츰 한 발 한 발 새로운 배움 속으로, 흥미진진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겠지. 익숙한 데서 떠나면 놀라운 축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몸소 깨달으면서 말이다. 다울이도 나도, 떠나고 떠나보내는 연습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만나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함께 자라고 있다.
 

정청라
귀농 7년차, 결혼 5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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