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청춘일기 - 여경]

어릴 때부터 오빠와 나는 참 달랐다. 생김새도 종종 애인 사이로 오해 받을 만큼 다른데다, 성향과 취향에 있어서 차이가 많이 난다. 초등학교 시절, 오빠는 과학소년잡지를 읽었고, 나는 별이 가득한 우주사진을 제외하곤 과학잡지에 관심이 없었던 대신 어린이 문예집을 읽었다. 조금 더 컸을 때, 오빠는 과학경시대회에 나갔고, 나는 그림대회에 나갔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여서 오빠는 이과를, 나는 문과를 선택했다. 오빠는 논리적이고 현실적이었던 반면 나는 감정적이고 이상적이었다. 나는 자주 울었고 오빠는 냉정했다. 그래도 우리는 꽤 다정히 지내는 남매였다.

그러나 서로 다른 지역의 대학을 가게 되면서,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미래를 다져나가면서 우리는 점점 더 달라졌다. 이제는 단순한 취향 차이가 아니라 삶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모두 각자 다른 삶의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도 다르게 마련이지만, 내가 놀랐던 것은 오빠의 사고방식이 내가 혐오하던 이들의 것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확인한 것은 강정마을 문제를 이야기하게 되었을 때인데, 짓밟힌 주민들의 삶은 아랑곳 않고 해군기지가 필요하면 지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하는 오빠에게 처음으로 분노를 표하며 울었던 것 같다. 거대한 골이 우리 사이에 푹 파인 느낌이었다. 그 뒤로 서로가 서로를 더 많이 이질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추석 때, 오랜만에 오빠를 다시 만나 나는 뜬금없는 질문을 하나 던졌다. “오빠는 세상에 대해 불만이 없어?” 그런데 그에 대해 오빠는 너무나 간단히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오히려 나에게 그렇게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불만스러워하고 불편해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했다. 도대체 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일에 관심을 두면서 스트레스 받으며 사느냐고.

그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이미 내 옆에 존재하는 불평등과 폭력이 불편한 사람이 되어버렸고, 그 불편함이 해소되지 않으면 나 또한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은 명백했다. 하지만 오빠는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차라리 무뎌지는 게 나을 거라고 말했다. 그런 걸 다 신경 쓰고 살면 정상적으로 살 수 없을 거라고 하면서.

그런데 정말로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걸까? 아니, 정말 어쩔 수 없는 걸까? 나는 그렇게 감수성이 삭제되어가고 체념이 나를 장악하는 것이 두렵다. 그것이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소마를 뿌려대며 고통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과 무엇이 다른가 싶다. 하지만 이런 문제제기가 비난이 되거나 어떤 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하게 되면 그 또한 하나의 폭력이 되지는 않을까 조심스럽다.

오빠도 내 대답들에 대해 지금 내가 마치 자기를 못된 사람 만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듯이, 일차적으로 돌아오는 반응은 짜증과 거부다. 그 밑에 깔려 있는 것은 아마도 옳은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음에도, 내 생활이 위태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진실을 외면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일 터인데…. 그렇다면 나는 누구에게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 가장 고민이 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어떻게 함께하자고 초대할까?’라는 질문 말이다.

나와 어떤 지점에서 의견이 갈리면 그 사람을 적으로 생각했던 때가 있다. 그래서 더 이상 대화의 여지를 남기지 않거나 관계를 끊어버리곤 했다. 어느 한 자질, 어느 한 사안에 대한 찬반 여부에 따라 적을 상정하는 것은 얼마나 간결한 이분법적 사고방식인지. 간단한 만큼 또 얼마나 위험한지.

오빠는 그런 나에게 간단히 적으로 만들 수 없었던 유일하고 특수한 존재였다. 그는 나의 혈연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 단순히 적으로 돌리고 배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오빠는 내 앞에 다시 ‘타인’으로 나타났고 나는 설득을 해야 했다.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여경

오빠와 바닷가에 산책을 나가 폭죽놀이를 했다. 지난밤에 혼자 산책을 나갔다가 옹기종기 모여 폭죽놀이를 하는 가족들이 따듯하게 느껴졌던 참이었다. 둘이서 어떤 놀이를 해본 지가 참 오래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서로의 어설픔을 놀리며 폭죽을 공중에 쏘아 올렸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길고양이를 만났는데, 오빠가 고양이를 참 반가워했다. 오빠가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비슷한 점도 있구나 싶었다.

우리가 엄마아빠의 자식이듯이, 흑미 섞은 밥을 좋아하듯이, 무언가에 대해 욕심을 부리듯이, 미래를 두려워하고 또 동시에 설레듯이, 작지만 그래도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있구나 싶었다. 여전히 어떤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설득의 시도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몽글 솟아올랐다.

포기하지 않는 것, 등 돌리지 않는 것. 그것은 우리가 연대해야 할 억압받는 자들을 향한 태도이기도 하겠지만 반대 방향으로도, 그러니까 타인의 삶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또 다른 타인들에게도 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끈질김의 아래에는 사랑과 믿음이 자리하고 있어야 하겠다.

애정이 밑바탕이 된 불화. 애정이 있기에 끝까지 설득하고자 하는 것. 매번 시급하게 흘러가는 사건들 앞에서 사랑과 이해를 주장하며 나아간다면 그건 너무 늦는 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오빠를 설득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여경 (요안나)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학생. 삶, 사람, 꽃, 벗, 별, 꿈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울림이 예쁜 말들에 이끌려 국어국문학과에 가게 되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고 이를 위해 문학과 예술의 힘을 빌리려 한다. 시와 음악과 그림, 나무, 물이 흐르는 공간,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고향 바다를 닮아 평온하고도 깊고 강인한 사람이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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