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떼제 공동체 신한열 수사

한동안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피정이나 전례 프로그램에서 떼제 기도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옆 사람의 얼굴이 보일 듯 말 듯 한 어둠 속에 작은 촛불 몇 개 켜놓고 둘러앉아, 단순한 리듬을 얹은 한 문장 길이의 기도를 반복하며 하느님과 만나는 고요한 시간. 주위의 모든 소음과 번잡함을 빨아들인 것 같던 그 시간은,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망아지처럼 날뛰던 아이도 차분하게 만드는 마법의 힘이 있었다. ‘떼제’가 프랑스 중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의 지명이자 기도생활공동체의 이름이라는 걸 알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었지만, 피정이 끝난 후에도 떼제 기도의 노래는 한동안 입가를 맴돌곤 했었다.

바로 그 떼제 공동체가 주최하는 ‘동아시아 젊은이 모임’이 오는 10월 2일부터 6일까지 대전에서 열린다.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 동아시아와 세계 각지에서 출발한 320여 명의 젊은이들이 커다란 원을 만들고 앉아 기도 속에 화해와 신뢰를 나누는 자리다. 굳이 비싼 비행기 삯을 들여 프랑스까지 날아가지 않아도 떼제 공동체의 분위기를 직접 맛볼 수 있는 기회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떼제 공동체의 신한열 수사를 서울 합정역 부근 카페에서 만났다.

▲ 떼제 공동체 신한열 수사 ⓒ한수진 기자

먼저 신 수사는 떼제 모임을 가리켜 “신뢰의 순례”라고 운을 뗐다. 프랑스의 떼제 공동체에는 매주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찾아와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달, 1년씩 머물다 간다고 하는데, 동아시아 젊은이 모임과 같은 지역별 모임은 그런 젊은이들이 각자 자신의 나라에 돌아가서도 하느님과 이웃을 신뢰하며 기도생활을 유지하도록 돕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다. 유럽에서는 매년 연말에 해당 지역 교회의 협조를 받아 모임이 열리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에서는 몇 년에 한 번씩 지역 상황에 맞춰 열린다.

지역 모임에 참여하는 이들은 떼제 공동체 참여 여부나 종파를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고 있지 않거나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이들도 종종 찾아온다. 그렇게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대화하고 기도하는 행위는 서로가 신뢰를 전제하지 않고는 이뤄지기 어려운 일이다. 하느님과도 마찬가지다.

신 수사는 “신뢰는 신앙의 또 다른 표현으로, 하느님을 믿고 그분께 맡기는 결단과 모험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떼제 공동체 안에서 매일의 기도를 바치는 행위를 ‘순례’라고 표현한 건, 일상을 떠나 길을 걷되 목적지가 있고 곧 일상으로 다시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목적지는 하느님과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가리킨다.

“순례는 일상을 떠나 미지의 세계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새로움을 발견한 뒤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주변의 상황은 바뀌지 않았지만, 새로운 발견을 한 뒤에는 더 넓은 시야와 전망을 갖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자신의 삶을 보면서 일상 안에서 신뢰를 쌓아가는 거죠.”

▲ 프랑스 떼제 공동체 기도 시간 전경 (사진 제공 / 떼제 공동체)

신 수사와 떼제 공동체의 만남도 그랬다. 가치 있는 삶과 하느님을 향한 신뢰의 순례는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우연과 운명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이어졌다. 무엇이 진정 나의 삶이고, 그분이 원하시는 삶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희미하게나마 확신이란 게 생겨날 무렵 그는 어느새 떼제 공동체 안에 들어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1980년대 초반, 대학에 입학한 신 수사는 어느 날 영어 공부를 하러 어학실습실을 찾았다. 그런데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아주 생소한 언어였다. 의도치 않게 그는 불어 수업 시간의 불청객이 된 것이었다.

“키가 큰 외국인 선생님이 헤드폰에서 나오는 대로 따라하라니까, 뭐라 말도 못하고 그냥 시키는 대로 따라했어요. 그땐 수업 중에 자리를 뜬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분위기였거든요. 결국 수업을 다 듣고 난 뒤 찾아가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죠. 그런데 그 강사분이 바로 떼제 공동체의 안토니 수사님이었어요.”

떼제 공동체는 그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떼제의 규칙>과 같은 책들과 슬라이드를 통해 처음 알게 된 뒤로 기억 한 편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던 모임이었다.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아랑곳하지 않고 청년들이 다 함께 원을 그리고 손을 부여잡은 채 기도하고 나누는 공동체의 모습이 안토니 수사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기억에서 현실로 자리바꿈하게 된 것이다.

▲ 떼제 공동체 신한열 수사 ⓒ한수진 기자

그때부터 그는 틈만 나면 서울 화곡동에 있던 떼제 공동체에 발걸음을 하기 시작했다. 항상 무언가에 짓눌리는 듯 숨 막히던 1980년대의 시대 상황에서 공동체는 그에게 쉼과 해방의 순간을 제공하는 피난처 같은 곳이 되어 주었다. 대학 3학년 때에는 떼제 공동체의 초대를 받아 6개월 간 수사들과 함께 살기도 했다. 야학에서 강의를 하거나 가톨릭 학생회 미사를 하는 날 빼고는 매일 저녁 공동체 식구들과 성경을 나누고, 기도하고, 밥을 먹었다.

“공동체 생활은 참 아름다운 경험이었지만, 내게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을 거라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만 아직 젊고 자유로울 때 외국에 나가서 가난한 이들과 같이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 정도만 갖고 있었죠.”

그런 생각은 그를 인도로, 방글라데시로, 그리고 88올림픽을 앞두고 세입자들이 난민처럼 대거 쫓겨나던 상계동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몇 년을 더 머나먼 곳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만 있었을 뿐, 정작 자신은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그는 안토니 수사의 주선으로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된다.

“처음에는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고 어울릴 수 있다는 게 좋았는데, 매일같이 함께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차츰 그 단순하고 깊은 기도의 매력에 빠져드는 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떼제 공동체 생활을 1년간 경험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결정의 순간과 함께 깨달음이 찾아왔죠. ‘하느님이 원하시는 건 나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전부였구나’ 하는 깨달음 말이에요.”

친구들이 ‘한열이가 얼마나 견디나 보자’며 내기까지 걸었다던 신 수사는 그렇게 떼제 공동체의 수사가 되었다. 1년을 계획하고 떠났던 짧은 여정은 어느덧 25년이라는 기나긴 삶으로 변해버렸지만, 다시 되돌아봐도 지난 25년은 마치 25일처럼 느껴지는 “은총의 시간”이었다.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끝날 무렵 교회에 들어가면 가운데에 공동체 형제들이 앉아있고, 주변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앉아있어요. 그걸 마주하는 순간 기쁨을 느껴요. 공동체 밖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에는 형제들이 정말로 반갑게 맞아주는데, 그때도 그런 기쁨을 느끼고요. 특히 수많은 젊은이들을 동반하면서 기쁨의 순간을 많이 느껴요. 젊은이가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고 그걸 표현할 때, 그게 바로 하느님을 발견하는 순간이거든요.”

신 수사가 느끼는 기쁨은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느낄 수 있지만, 세상에 물들고 익숙할수록 느끼기 어려운 감정이다. 떼제 공동체가 번듯하고 화려한 시설이나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는데도 수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은 바로 이 소박하지만 가장 인간적인 기쁨에 있는 것은 아닐까.

10월 2일부터 닷새 동안 대전에서 열리는 ‘동아시아 젊은이 모임’에 이어 11월 초까지 두 번의 떼제 모임이 기다린다. 10월 28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정동 성공회 대성당에서 떼제 공동체 원장 알로이스 수사와 함께하는 ‘화해와 평화를 위한 기도회’가 열리고, 11월 1일 금요일 오후에는 부산에서 같은 내용으로 모임이 열린다.

▲ 프랑스 떼제 공동체 기도 시간 전경 (사진 제공 / 떼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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