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언론과 영화에 비춰진 범죄’ 세미나 열어
언론, 인권과 범죄 예방 위한 보도에 힘써야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이용훈 주교) 산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주최하는 세미나 ‘언론과 영화에 비춰진 범죄’가 24일 오후 7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1층 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세미나는 언론보도와 영화에서 범죄와 형벌을 다루는 방식과 이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의미가 생겨나는지 토론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가 ‘흉악범죄에 대한 언론보도’, 금태섭 변호사가 ‘영화에 비춰진 사형제도’를 주제로 발표했고,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김민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영화기획 강사,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이재성 한겨레 기자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피의자 신상공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언론의 범죄 수법, 피해 상황 묘사 지나치게 선정적

“미디어의 범죄보도는 공중들이 범죄 이슈에 몰입하게 만들고 해당 범죄 이슈를 미디어가 가공생산한 방식대로 수용하게 만들며, 해당 범죄를 저지를 것으로 혐의를 받고 있는 자나 피의자, 피고인을 그 범죄의 확정된 범인으로 미리 낙인찍게 만드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이승선 · 김연식, ‘범죄 보도로 인한 인격권 침해와 문제점’, <사회과학연구>, 2008, 67쪽)

▲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정현진 기자
먼저 흉악범죄에 대한 언론보도의 태도와 그 문제점을 지적한 김서중 교수는 “언론의 범죄 사건 보도는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일정하게 가공된 것”이라며 “언론은 강력범죄 보도를 통해 대중의 불안감을 조성하고, 정보와 심리적 안정을 구하는 대중을 대상으로 기사를 판매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서중 교수는 피의자의 실명과 얼굴을 밝히고, 범죄 혐의를 중심으로 보도하는 행태에 대해 “이는 단순 정보 제공일 뿐, 범죄 행위에 대한 올바른 사회적 대처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으며, 흉악범에 대한 사회적 ‘린치’는 일반 범죄를 다루는 방식에도 확산된다”면서, 언론이 범죄의 심각성을 진정으로 인식한다면, 범죄를 줄이고 예방하기 위한 보도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피의자 신상공개의 논리는 ‘국민의 알 권리, 범죄자에 대한 공인 개념 적용, 피해자의 인권 보호’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뒷받침되지만,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알 권리와 기본권(인권)이 충돌할 때 알 권리가 우선되려면, 그것에 의한 이익이 기본권 침해보다 훨씬 커야 하지만, 피의자 신상공개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없다”고 강조했다. 또 “공인의 개념도 훨씬 작은 범주에서 적용되어야 하며, 피의자의 신상공개로 피해자의 인권이 보호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서중 교수는 무분별한 범죄보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범죄 현장, 수법, 피해자의 모습 설명이 과도하게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라는 데 있다며 “이는 불필요한 감정을 자극함으로써 대중의 카타르시스와 알 권리를 빙자해 상품화된 기사를 판매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형 집행으로 피해자 인권 보호, 재범 방지할 수 없어
억울한 이의 목숨 빼앗는 오판 없다고 장담할 수 있나?

▲ 금태섭 변호사 ⓒ정현진 기자
이어 ‘영화에 비춰진 사형제도’에 대해 발표한 금태섭 변호사는 사형제도의 의미에 대해 “범죄에 대한 처벌을 보면서 사람들은 정의가 회복됐다고 안도하게 된다. 사형은 그러한 효과가 가장 강력한 형벌인 셈”이라고 설명하며, <그린마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집행자> 등의 영화를 들어 사형제도의 모순을 지적했다.

금 변호사는 “사형존치론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극악한 범죄가 존재하기 때문이지만, 흉악범에 대한 사형 집행이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재범을 막는 올바른 해답이 될 수는 없다”면서, “과연 사형으로 무고한 사람이 죽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사형에 미치지 못하는 범죄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물었다.

금태섭 변호사는 사형제도를 다룬 상업영화의 경우,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본질보다는 오판의 가능성, 사형수의 선한 성품 등 감성에 호소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이러한 영화들을 통해 ‘사형존치론’을 고수하기 어려운, 많은 질문이 제기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오판의 가능성과 사형 여부를 가르는 기준의 명확성에 대해 설득력 있는 대답이 준비되지 않는다면, 사형제도는 부정적인 제도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24일 오후 7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산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주최하는 ‘언론과 영화에 비춰진 범죄’ 세미나가 열렸다. ⓒ정현진 기자

범죄 원인이 되는 사회문제보다 가해자 처벌을 우선시하는 ‘안전 담론’
여과 없는 선정적 범죄보도, 피해자 가족 2차 피해로 이어져

이어진 토론에서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는 “사형제도는 안전사회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처럼 자리 잡았다면서, 사형제도를 인권보다 안전을 우선시하는 ‘안전담론’의 맥락에서 바라봤다. 그는 국가폭력 강화의 명분이 되는 안전담론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만드는 구조적 문제보다는 피해자의 처벌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또 안전이 자유를 위한 것으로, 통제를 ‘보호’로 호도하면서, ‘문제 사회’를 숨기고 ‘문제 개인’만 남겨놓는다고 설명했다.

류 활동가는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동성을 벗고, 범죄에 모든 사람이 당사자로서 연루되어 있다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가해자 처벌 양식이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조치인가를 살피면서 형사처벌 외에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는 처벌 방식을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언론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통해 범죄보도에 대한 인권 가이드라인이 효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윤소 활동가(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나주 아동 성폭력 사건 보도 모니터링 내용을 통해 성범죄 보도의 문제점을 짚었다. 그는 성범죄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언론은 피해 내용에 대한 상세 묘사는 물론, 사건 현장, 범죄 방식, 현장검증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줌으로써 사건을 호기심의 대상으로 만들며, 피해자 가족의 2차 피해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나주 아동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 가족의 행동을 범죄의 원인으로 돌리고, 성범죄 원인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반영하며, 심지어 범인이 아닌 사람의 신상을 방송에 공개하는 등의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했다.

이윤소 활동가는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 세부 권고 기준 등의 원칙을 지키는 것은 물론, 성범죄 근절을 위해 지속적으로 보도해야 한다면서, “사건 자체 보도보다는 성범죄에 대한 본질적 접근을 통해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언론의 바른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발표와 토론에 참여한 이들은 언론이 범죄 보도를 통해 또 다른 ‘가해자’가 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공포심과 호기심을 이용한 뉴스 판매가 아닌, 인권에 바탕을 둔 보도,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보도에 힘쓸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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