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청춘일기 - 하민]

김동률 씨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듣고 싶어지는 가을밤이다. 정신없는 개강 시기인데도 한산한 도서관에 앉아 창밖으로 저 아래 사람들의 움직임을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그러다 문득 기분이 묘해지는 걸 보면 영락없는 가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기 초부터 과제는 쌓이기 시작하는데 괜히 핸드폰을 뒤적이면서 여기저기 연락을 해 본다.

▲ 평소에 긴 줄을 서서 들어가는 뽕삐두 도서관 ⓒ하민

독일에서 교환학생 기간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 6년 만에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으로 취직해 다른 도시로 이사를 계획 중인 언니, 브라질에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가 일본인 여자친구를 만나 일본 여행을 계획 중인 친구, 만난 지 4년째인 프랑스인 남자친구와 호주로 이사 갈 준비가 한창인 캐머룬 친구, 벨기에에 직장을 구했다는 이태리 친구, 어학연수를 마치고 대학교에 갈 준비가 한창인 한국인 친구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정해놓은 목표를 향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한때 다른 사람들 소식을 들으면 나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듯한 불안감에 혼자 기분이 상했던 적도 있었다. 어떤 구체적인 대상을 향한 경쟁심이나 질투라기보다 뚜렷한 꿈도, 계획도 없었던 나 자신을 향한 답답한 마음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신부님으로부터 “‘하’루를 마무리하고 일어났던 모든 일들 갈무리하며 ‘민’들레 홀씨 되어 날아오르듯 올라올라 저 하늘에 열매 맺기를” 바란다는 덕담(필자의 이름 두 글자를 두문자 삼아 쓴 글귀)으로 마무리 지은 따뜻한 편지를 받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던 기억이 난다.

▲ 퍼즐엽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하민

편지는 이렇게 쓰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설레게 하는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 주위에 편지와 엽서 쓰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은 덕분에 내 우편함에는 종종 반가운 소식들이 기다리고 있다. 평소 연락 챙기기에 유독 게을러서 원망을 많이 듣는 편인데도 문자나 메일 등 수시로 연락 가능한 방법들이 널려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슨 고집에서인지 나는 편지와 엽서가 좋다. 가끔 엽서 한 귀퉁이가 찢겨 우체국 보호비닐에 담겨 오기도 하고, 비에 젖었다 마른 엽서가 울퉁불퉁 울기도 하지만, 각자의 개성이 담긴 손글씨를 읽 어 내려가며 그 사람의 목소리, 몸짓, 표정 등을 떠올리는 재미에 기분이 한껏 좋아져서 나도 서둘러 답장을 보내곤 한다.

▲ 마지막으로 뽕삐두에서 본 빠리 하늘 한 컷 ⓒ하민
가끔은 편지가 불편할 때도 있다. 2년 전, 아는 분이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가셨다가 보내셨다는 편지가 중간에서 증발해버린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또 다른 분께서 정말 오랜만에 써보셨다는 엽서가, 이름과 주소 모두 정확하게 기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 우편함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몰랐을 때는 없이도 잘 살았지만 막상 알게 되니 편지들을 전달받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이런 아쉬운 배달사고(?)마저 아날로그 손편지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편지의 내용은 영영 모르겠지만 편지를 보낸 순간의 마음에 감사하고, 감동을 받는다.

처음에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청춘일기도 매번 누군가를 떠올리며 편지처럼 쓰다 보니 재밌게 느껴졌고,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운 생각마저 든다. 매번 정해진 날짜를 넘기는데도 항상 기분 좋게 받아주시는 편집 기자님과, 재밌는 경험을 페북으로 살짝 제안해주신 신부님께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다.

* 이번 회로 하민 님의 ‘레알청춘일기’ 연재를 마칩니다. 해외 유학 생활에서 겪는 다양한 일과 소회를 담은 글을 보내주신 필자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하민 (도미니카)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한국에 돌아와 초등학교까지 다니다가 일곱 살에 다시 영국으로 가서 3년을 살았다. 프랑스계 국제학교를 거쳐 프랑스로 유학 왔다. 고등학교 땐 이과였는데 언어와 미술에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는 문학과 미술사를 공부했다. 여행을 다니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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