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화 이야기]


지난 주일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제 한 분을 만났다. 강의 후 여러 신자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였는데 마침 이분이 내 앞에 앉았다. 그런데 그분 앞에 배가 불뚝 나온 데다 조금은 낡아 보이는 노트가 내 관심을 자극하는 바람에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다음은 둘이 나눈 이야기다.

“신부님 그게 무슨 노트에요.”
“아! 이거요. 백인 노틉니다.”
“좀 봐도 될까요?”
“보세요!”

그 노트에는 신문, 잡지, 인터넷, 책 곳곳에서 오려 놓은 기사와 사진들이 스크랩되어 있었다. 기사 밑에는 그 인물에 대한 간단한 설명들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이 시대에 참으로 인간승리를 이뤄낸 분들만 모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장애를 딛고, 어떤 분들은 가난을 딛고, 어떤 분들은 편견을 딛고 휴먼 드라마를 만들어내셨어요. 이런 분들의 사진과 기사를 보다 보면 이분들처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렇게 노트를 가지고 다니다 이런 기사들만 보이면 체면 불구하고 어디서나 스크랩합니다. 그런데 이게 참 쓸모가 많아요.

시간 날 때마다 들춰보며 묵상도 할 수 있고, 미사 때 강론자료로도 쓸 수 있습니다. 저처럼 사회복지를 하는 신부들에게는 더 유용합니다. 복지시설이나 기관에 방문했을 때 같은 처지에서 인간승리를 이뤄낸 분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기운을 북돋울 수 있으니까요. 아직 다 채우진 못했는데 꼭 아흔아홉 사례만 모으려고 합니다. 궁금하시죠? 백 번째는 제가 될 거라서요. 남들한테 되라고만 하는데 나 스스로 이런 분들처럼 되고 싶어섭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우리 둘은 신나게 노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이 더 나눠준 이야기이다.

“만약 제가 본당사목만 했다면 이런 생각을 꿈에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사회복지 일을 하면서부터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과 항상 가까이 있게 되더라구요. 본당에서 이런 분들이 가까이 올 수나 있었겠습니까? 있는 신자들과만 어울리게 되지요. 저도 본당에 있을 때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복되게도 이런 분들과 함께 있게 되었네요. 본당에서 이런 분들을 보면 몇 푼 도와주고 생색을 내는 게 다였는데 겪어 보니 그게 도와주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그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때까지 기초를 닦고 거쳐야 하는 단계들이 많은 거예요. 이제는 그런 과정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꼭 필요하면서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재미 있는 것이 제가 이런 일을 잘 버텨내지 못할 것 같았는데 하면 할수록 오히려 중독이 되는 겁니다. 이분들의 입장에서 이분들이 원하는 것을 더 많이 하고 싶어지는 것이지요. 이 노트도 이분들을 사랑하다 보니 만들게 된 것입니다. 육신의 불편함이 그들의 영혼까지 좀 먹어서는 안 되니까요. 사랑하면 그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임을 이제야 배웁니다. 내가 사제가 된 의미도 이제 조금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치도 마찬가지겠지요.”

박문수/ 프란치스코,  가톨릭대학 문화영성대학원 초빙교수, 평신도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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