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컨저링>, 제임스 완 감독, 2013년작, 현재 상영 중

▲ <컨저링>, 제임스 완 감독, 2013년작
때는 자유의 시대인 1960년대를 막 관통한 1971년. 미국 로드아일랜드의 어느 호숫가 앞 고즈넉한 저택으로 페론 가족은 이사를 온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지만 부부와 다섯 딸들은 화목하고 사랑스럽다.

그러나 이 집은 으슬으슬 춥고, 썩는 냄새가 나고, 이상한 소리가 난다. 한밤중에 누군가가 자고 있는 소녀의 다리를 잡아당기고, 문 뒤에 선 누군가는 잠이 깬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그 존재는 소녀들의 숨바꼭질에 끼어들어 박수 소리를 내기도 한다. 어떨 때는 오르골의 거울을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 순수한 아이들의 눈에는 더 잘 보이고 잘 들리는 존재, 그들은 ‘귀신’이다.

B급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악마의 영혼을 불러온다’라는 뜻의 제목인 <컨저링>은 현재 흥행수익이 제작비의 12배를 넘긴 빅히트 호러영화다. 피칠갑 살인 장면이나 하드고어적인 시체 절단 장면이 없이도 영화는 몹시도 무섭다.

이 무서움의 원천은 바로 실화라는 데 있다. 귀신을 보고 악령에 씌운 존재가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니, 이는 누구라도 그럴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가정을 가능케 한다. 상상만으로도 무서운데, 그 치열했던 악령퇴치 작전의 나날들이 모두 눈앞에 펼쳐지니 오싹함의 강도가 최고조에 달한다.

불사의 존재가 전하는 위압적인 분위기, 무드의 영화

영화는 공포스러운 귀신들린 집의 현장을 1970년대 공기까지 재현한 듯 잘 살려낸다. 집안에 기거하는 귀신을 따라 내부 곳곳을 훑어가는 카메라로 인해 귀신이 내 주위에 존재하듯 섬뜩하다. 캐릭터들이 컴컴한 침대 밑이나 문 뒤, 장롱 속, 지하실을 살펴볼 때면, 인물의 시점과 일치된 카메라로 인해 언제 눈앞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달려들지 예측할 수 없는 두려움이 고조된다.

이 영화가 주는 공포는 괴물 같은 형상의 귀신 모습이나 음침한 음악, 혹은 폭발적인 비명소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스멀스멀 뭔가가 기어 나올 것 같은 분위기, 직시하기 두려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 기운과 분위기가 전달하는 공포감으로 인해 무서워지는 ‘무드(mood)의 영화’다.

귀신의 모습은 교묘한 편집 연출로 위압적인 아우라를 전달하며, 은밀하게 들려오는 숨소리와 속삭임은 불사(不死)의 존재가 곁에 있다는 느낌을 준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주는 압도적 에너지는 공포감을 더욱 배가시킨다. 귀신에게 몰리는 캐릭터들의 시점과 일치하는 카메라는 악령의 집의 현장에 관객이 함께 있다는 현장감을 한층 끌어올린다.

페론 가족이 처음 이사 온 날 사용된 초반의 오프닝 롱테이크는 정원에서 시작하여 집안으로 들어가 방과 거실 곳곳을 훑는다. 악령이 가족 구성원 각각의 등 뒤에 붙어서 전체 배경을 훑는 듯한 이 느낌은 너무도 오싹해서 공포감과 맞설 준비를 사전에 우리로 하여금 시키는 것 같다.

엄마 캐롤린은 너무도 무서운 이 일들을 견디지 못하고 초자연 현상 전문가인 워렌 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교황청에서 엑소시스트(악령 퇴치사)로 인정받은 에드와, 귀신과 대화를 나누는 영매 로레인은 귀신이 출몰한다는 가정을 방문하여 도와주곤 한다. 하지만 대개는 자연현상에 의한 사운드 효과라는 것을 확인해주기 일쑤라 그들은 캐롤린의 요구를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워렌 부부는 마지못해 페론 저택을 방문하고, 이 사건은 그들이 경험한 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사건이 된다.

 

가톨릭과 엑소시즘

공포영화의 역사에서 종교는 공포영화의 결정적인 요소였다. 실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 공포영화 대표작 <엑소시스트>(1973)에서는 신과 악마가 한 방에 모여 12세 악령에 휩싸인 소녀의 몸을 두고 선과 악의 주제에 대해 논한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루마니아 영화 <신의 소녀들>은 귀신에 씌었다는 혐의를 받은 젊은 수녀를 감금하고 퇴마의식을 거행하다 사망한 실화를 다룬다.

교황청은 1999년에 “현대 정신의학을 중요하게 고려해 퇴마의식 실행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는 엑소시즘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가톨릭에서 엑소시즘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적법한 교회 당국의 허가와 엑소시스트의 신앙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귀신이 의심되는 사례들에 대해서 정신적 혹은 육체적 질병의 가능성에 더욱 중점을 두고 접근하는 추세라고 한다.

정식 엑소시즘은 성직자에 의해서만 실행될 수 있으며 주교의 서면에 의한 허가와 정신장애를 배제하는 세밀한 의학적 검사가 선행되어야만 행해질 수 있다. 이 과정이 영화에는 잠깐씩 소개된다. 웨렌 부부는 수퍼 8㎜ 카메라와 움직임을 포착하는 모션 센서 조명 등 당시로는 최첨단 장비들을 들고 귀신을 기록하는데, 이들이 영상과 소리로 남긴 귀신에 관한 기록은 성직들로부터도 존중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악령보다 더 큰 신의 존재에 대해 경외감을 가지거나, 과학적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건을 앞에 두고 혼란감에 빠지거나, 혹은 특정 종교를 강조하는 듯한 영화의 입장에 반감이 들거나 할 것이다. 이 모든 것 사이에서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현대 과학에서 아직 70% 가량은 입증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다양한 층위에 삶과 죽음의 면들, 제정신과 광기의 면들, 의식과 무의식의 면들이 있으며 이 모든 것들을 우리의 투박한 감각으로는 온전히 깨닫지 못한다. 세상은 살아있는 동식물들만의 것은 아니며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 함께 공존하는 곳이니, 귀신이 나타난다면 반갑게 말을 걸어보겠다는 결기로 무서움을 이겨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억압된 것의 귀환, 그리고 가족 로맨스

공포영화는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는 한 마디로 정의된다. 프로이트 식으로 설명하자면 개인 속의 억압이 꿈, 판타지, 그리고 어떤 경우엔 신경증적이거나 히스테리적인 징후들을 통해 무의식의 영역에서 발생된다. 사회에서의 지나친 과잉억압은 호러영화 같은 형식에서 전치되고 왜곡된 반응과 만나게 된다고 하는데, 전통적으로 호러영화는 동시대 사회의 억압기제를 살펴보는 척도로서 작용한다.

그럼 악령이 또아리를 틀기로 작정한 캐롤린의 억압에 대해 살펴볼 차례다. 1960년대 말에 미국은 베트남전의 전쟁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정부가 약속했던 복지정책을 실행하지 않아 대도시 곳곳에서 시민행진이 일어나고, 존슨 대통령은 디트로이트 등지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진압함으로써 많은 시민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

영화에서 아버지는 트럭운전사로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노동하여 다섯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으로 나온다. 엄마 캐롤린이 품고 있는 유일한 삶의 목표이자 희망은 아름다운 다섯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정이 행복하게 잘 유지되는 것이다. 휴양지에서 찍은 사진을 고이 간직하고 아이들의 양육에 최선을 다하는 이 소박한 엄마의 소망은 어쩌면 붕괴될지도 모른다.

심오한 문제에 봉착한 사회 구조의 문제가 있는데다, 아이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모로서의 본능적인 불안감, 즉 가장 순수한 존재인 아이가 양육 과정에서 악의 증식을 체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떼를 쓰거나, 통제 불능일 경우)은 아이를 괴물적인 존재로 느끼게끔 한다. 여성이 양육을 책임지는 문화에서 아이의 요구는 어머니를 지배하고 파괴하겠다는 위협으로 여겨질 수 있다.

과거에 마녀로 몰려 처형당한 여성, 이단종교를 숭배하여 아이를 제물로 바치려 했던 비열한 엄마의 악령이 이승을 떠돌다가 목표로 한 인간의 모든 의지가 부서지는 순간을 기다린다. 그 순간은 악령이 그 육체를 차지해 지옥의 문을 여는 순간이다. 신의 섭리로 자신의 영매 능력을 받아들이는 로레인은, 캐롤린의 소망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이겨낼 강한 에너지를 캐롤린 자신의 내부에서부터 끌어올리게 도와준다.

영화는 그냥 무서운 게 아니라, 신의 소명을 받아들이며 순종하는 여성과, 가정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지켜내려는 강한 여성의 자아들이 합심하여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정서로 인해 큰 감동을 준다. 무서우면서도 고결한 공포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는 아름다운 가족 멜로드라마다. 위협을 느끼면서도 감정의 극단이 주는 즐거움, 이것이 바로 공포영화가 주는 카타르시스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동국대, 수원대 출강 중.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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