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집]


예수님은 참으로 가난하게 태어나셨습니다. 사람의 자리가 아니라 짐승의 자리인 구유에 눕혀져 계십니다. 가난한 어머니 마리아는 아기 먹일 젖도 없으십니다.

우리 주변에도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노숙하는 사람들입니다. 추위를 피해서 지하상가로 내려가면 앉지 못하게 물을 뿌려놓는 매정한 인심에도 그냥 견디는 사람들입니다.

갑자기 추위가 찾아온 날입니다. 바깥에 있는 수도꼭지가 얼어서 터졌습니다. 식당 안에도 물이 나오지 않으면 밥도 못 할 뻔 했습니다. 우리 손님들도 새파랗게 질려서 국수집을 들어섭니다. 얇은 옷을 입고 오들오들 떱니다. 밤새 떨었습니다.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반찬을 준비하는 동안 커피를 들게 했습니다. 어떻게 노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한 분은 엔지니어로 한때 잘 나갔는데 이혼하게 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를 당해서 일자리도 잃게 되고 돈도 떨어지고 그래서 2년 전부터 노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한 분은 술을 좋아하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노숙하고 있다고 합니다.

추위 탓인지 우리 손님들이 보통 때보다 밥을 어찌나 많이들 드시는지 오늘은 쌀이 80Kg이 넘게 들어갔습니다. 사골 곰국에 밥을 말아 참 맛있게 드십니다. 아주 미안해하면서 옷 좀 얻을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민들레국수집 옥상 방은 보물창고입니다. 고마운 분들이 깨끗하게 세탁해서 보내주신 옷들을 모아둡니다. 이불도 모아둡니다. 운동화도 세탁해 보내주셔서 수십 켤레가 있습니다. 양말도 모아두었습니다. 그릇과 수저도 있습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나눠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은 손님들에게 필요한 것을 나눠드리기 위해서 옥상 방을 수십 번이나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얇은 옷을 입은 손님에게는 두꺼운 옷을 드리고, 슬리퍼를 신고 있는 분에게는 운동화를 나눠드렸습니다. 양말도 못 신고 있는 분도 많습니다. 양말도 나눠드렸습니다. 첫 추위에 우리 손님들이 넋이 나간 것 같습니다.

영희 할머니가 장을 볼 때 끌고 다니는 조그만 손수레에 겨우 종이상자 몇 개 싣고 식사하러 오셨습니다. 너무 추워서 늦게 나왔다고 합니다. 어제 얼마나 버셨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폐지 값이 너무 떨어져서 어제는 겨우 300원을 벌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폐지 1Kg에 20원을 쳐준다고 합니다. 할머니 신발이 다 떨어졌습니다. 발이 시려 죽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운동화를 신겨 드렸더니 아기처럼 좋아합니다. 닳아서 다 떨어진 신발을 버리시라고 해도 아깝다면서 봉지에 싸서 가져가시겠답니다.

영희 할머니가 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엉겁결에 받아보니 꼬깃꼬깃 접은 2만 원을 손에 쥐어줍니다. ‘할머니 이렇게 큰돈은 못 받겠어요.’ 돌려드리려니 할머니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니 꼭 받아달라고 합니다. 힘겹게 돌아다녀도 하루 천 원벌기도 힘드신 할머니가 주시는 선물입니다. 세상에!

영희 할머니는 칠순이 넘으셨습니다. 아주 작고 허름한 집에서 삽니다. 연탄도 땔 수 없습니다. 겨우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을 버팁니다. 집이 있어서 기초생활수급자도 안 됩니다. 남편에게 너무 맞아서 우울증이 심한 딸이 쫓겨 와 삽니다. 외손자도 둘이 함께 삽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 할머니 가족에게 필요한 쌀을 나눠드립니다. 할머니는 폐지를 주워 반찬값이라도 보태려고 온종일 거리를 헤매십니다. 그토록 가난한 할머니가 제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셨습니다. 세상에! 

 서영남/ 인천에 있는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면서 노숙자 등 가난한 이웃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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