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오늘을 말한다 - 18] 루카 6,27-38

▲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 15~16세기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네(Giorgione)의 작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라고,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겉옷을 빼앗으면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라고, 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에게나 주고,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말라고….

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이 어쩌면 외면하고 싶은 그분의 말씀일 것이다. 그러면서 이 말씀을 두고, 예수님의 가르침은 현실의 가르침이라기보다는 이상(理想)의 가르침, 혹은 영적(靈的) 의미를 갖는다고 해석하려 할 것이다. 그래야 그분의 가르침을 외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분의 가르침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될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자들에게 원수가 생길 것이며, 제자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며, 제자들을 저주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임을 전제하고 있다. 제자들을 학대하는 이들이 등장할 것이며, 제자들의 뺨을 때리는 이들도 나타날 것이며, 제자들의 겉옷을 요구하는 이들도 생길 것이며, 제자들의 것을 달라고 요구하고, 가져가는 이들이 생길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왜 그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 했을까? 보통의 경우라면 어땠을까? 나를 따르면 사랑받을 것이며, 친구들도 많이 생길 것이며, 따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며, 칭찬하고 축복하는 사람 때문에 경황이 없을 것이며, 더 나아가 나를 따르면 부자가 될 것이며, 자손만대 떵떵거리며 살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그렇게 약속해도 따를 사람 모으기가 쉽지 않을 텐데, 예수님께서는 어쩌자고 터무니없는 말씀을 하셨을까?

짐작해 보건대, 두 가지 생각을 하셨을 것 같다. 하나는 그렇게 말씀하심으로써 당신 제자들을 떠나보내려 하신 것 아닐까. 제자들을 사랑하셨으므로, 사랑하는 제자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여 마음이 아파서 미리 당신을 떠나게 하시려고. 다른 하나는 당신이 겪으신 일들을, 혹은 겪으실 일들을 제자들에게 알림으로써 그 고통스러운 마음, 두려운 마음을 스스로 달래려 하신 것이 아닐까.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예수님이든 제자들이든, 왜 그들에게 그런 피하고 싶은 일이 생겨야만 했을까 하는 궁금함은 여전히 남는다. 먼저 생각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예수님이든 제자들이든 사람들에게 원한 살 짓을 하고, 미움 받을 짓을 하고, 저주받을 짓 하고, 학대받을 짓, 맞을 짓, 빼앗길 짓을 해서 그럴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런 일을 하셨을까? 하셨기도 하고, 하시지 않기도 했다. 복음에서는 분명히 드러난다. 같은 사건을 두고 극명하게 갈리는 두 태도가 있다. 그분 말씀과 행적을 두고 좋게 말하고 경탄하고 환호하는 태도도 있으나, 어김없이 죽이려 하고 음모를 꾸미며 중상모략을 하는 태도도 보인다. 전자는 보통의 혹은 수준 이하의 힘없는 백성이고, 후자는 율법학자, 대사제, 수석사제, 원로들, 그러니까 수준 높은, 힘 있는 이들이 보인 태도다.

예수님을 원수로 삼은 이들, 예수님을 미워하는 사람들, 예수님을 학대하는 사람들, 예수님을 저주하는 사람들, 이들이 누구였던가? 예수님이 왜 그들에게 그렇게 당했나?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은 ‘그들에게’ 나쁜 짓이었다. 그러나 군중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삶을 따르면, 예수님처럼 그렇게 당할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숙명이며, 하느님의 길이었다.

여기서 예수님의 제자들, 곧 교회 공동체의 진정성의 기준을 발견한다. 지금 교회는 누구로부터 미움을 받고, 누구부터 칭송을 받는가? 혹시 힘없는 사람들로부터는 원망을 듣고, 힘 센 사람으로부터는 점잖고 품위 있다고 칭송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면 교회의 길을 다시 물어야 한다.

혹시 점잖고 품위 있는 사람들에게 왜 교회가 어지러운 세상일에 관심을 보이느냐고 훈계를 들으면서, 혹은 뺨을 맞으면서도, 힘없고 약한 사람으로부터는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를 받는가? 그렇다면 용기를 내어 가는 길 멈추지 말아야 한다. 아무래도 우리 교회는 가는 길 멈추고,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진지하게 물어야 할 것 같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교회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십자가와 죽음을 전하며, 세상의 박해와 하느님의 위안 속에서 나그넷길을 걷는다.” (교회헌장, 8항)
 

박동호 신부 (안드레아)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신정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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