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종교의 향기 - 14] 원불교 권도갑 교무

직장인 K는 퇴근길에 느끼는 해방감이 썩 개운하지 않다. 업무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아닌, 직장 동료들에게서 벗어난 해방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업무는 그나마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만, 인간관계는 회사를 다니는 한 계속 이어진다는 점이 더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고 K가 직장 동료들과 크게 갈등을 일으키는 건 아니다. 동료들의 특정한 행동과 말투가 K의 신경을 건드리는데, 그게 업무에까지 영향을 미치면 K도 미쳐버릴 것만 같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벗어나 집에 간다고 마음이 편해지는 건 아니다. 가족들은 혈연관계로 맺어진 또 다른 의미의 직장 동료로 다가온다. K가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는 길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섬으로 도망치는 것뿐일까? 지난 9일 종교대화 씨튼 연구원이 주최한 ‘종교대화 강좌’에서 원불교 권도갑 교무는 K와 같은 이들에게 “바꿔야 할 것은 내 마음”이라고 말했다. 괴로움의 원인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이다.

▲ 원불교 권도갑 교무 ⓒ한수진 기자

원불교는 1916년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큰 깨달음을 얻은 뒤, 불교를 접하고 새로운 불교운동의 일환으로 시작한 한국의 토착 종교다. “나의 마음이 곧 부처이고, 세상 모든 것이 부처”라는 믿음이 원불교 신앙의 근본이자, 소태산 대종사가 얻었던 큰 깨달음이다. 이에 따라 원불교 신자의 수행은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본래 불교 신자였던 권 교무는 “시장 바닥에 앉아 있어도 불심을 가지면 그곳이 법당이고, 법당에 있더라도 마음에 미움이 차 있으면 시장 바닥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가르침에 감동을 받아 원불교 신자가 됐다. 권 교무는 20여 년간 원불교 수행법인 ‘마음공부’를 종교의 벽을 넘어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전파해왔고, 2007년에는 저서 <우리시대 마음공부>를 출간했다. 매월 두 차례 ‘행복 가족 캠프’를 열어 마음공부를 통한 갈등 해결을 돕고 있기도 하다.

권 교무는 타인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보라”고 강조했다. 갈등이 생기는 이유가 상대방을 현재의 눈이 아닌 과거의 기억이 덧씌워진 눈으로 보는 데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같은 사람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실은 내가 볼 때마다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2500년 전 부처님이 깨달은 무상(無常)의 지(知)는 일체의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조금 전과 지금이 다른 것이죠.

누군가를 만날 때 늘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대한다면 그 속에서 신선함과 새로움을 교감할 수 있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는 갈등이나 문제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과거의 고정관념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평가하면서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오늘 전혀 다른 사람으로 내 앞에 있는데, 나는 같은 안경으로 그 사람을 보고 있는 거예요.”

새로운 눈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보면 많은 것이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느껴진다. 늘 보던 사람도 매번 볼 때마다 다른 존재이며, 그래서 바로 지금 내 앞의 존재를 마주하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면 그와의 만남은 애틋하고 절실해질 것이다.

권 교무는 군대에 입대해 휴가 나온 아들과의 일화를 꺼냈다. 껑충하게 큰 총각이 되어 돌아온 아들을 보고 깜짝 놀랐던 그는, 일주일 뒤에 군대에 복귀하러 집을 나서는 아들을 다시 불러 포옹하며 작별의 인사를 전했다. “다음에 올 때는 또 다른 사람이 되어 오겠구나. 오늘의 너하고는 이게 마지막이야.” 권 교무는 “같은 사람을 또 본다고 생각하니 적당히 만나게 된다. 하지만 다음에 보는 건 지난번 본 사람과 전혀 다른 사람이니, 헤어질 때에는 다시는 못 본다는 마음으로 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권도갑 교무가 9일 종교대화 씨튼 연구원이 주최한 ‘종교대화 강좌’에서 마음공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수진 기자

그렇다고 헤어짐에 아쉬움과 허전함만 남는 것은 아니다. 한창 피었던 꽃잎이 시간이 지나 떨어져도, 그 자리에는 새로운 꽃을 담은 씨앗이 차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권 교무는 “모든 것을 새롭게 보면, 잎이 떨어지게 하고 다시 피우게 하는 섭리의 존재를 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눈으로, 모든 존재를 새롭게 맞이하고 떠나보내며, 그 안에서 사랑과 은혜를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무상(無常)을 깨우치는 길이다.

두 번째 단계는 화가 나는 원인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닫고, 화를 올바로 표현하는 것이다. 권 교무는 우선 “어느 때 화가 나고 속상한지를 자신에게 물어보라”면서 “화가 나는 원인은 바깥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화는 상처를 주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나 어떤 상황 때문이 아니라 그런 말이나 행동, 상황이 생기면 ‘안 된다’고 여기는 집착에서 비롯된다. 권 교무는 “좋은 신념이라도 굳은 신념이 되면 자신을 괴롭힌다. 그것은 부처님이나 예수님 말씀이라도 마찬가지”라고 조언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어요.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네가 판단하는 마음이 너를 괴롭게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누가 나를 욕할 때 불같이 화가 날 수 있지만, 나에게 애정이 있어서 그런 말을 한다는 걸 알 때에는 눈물을 흘릴 수도 있죠. 바깥의 것이 아닌 내 마음 안의 어떤 것이 나를 속상하게 한다는 사실을, 오늘 여러분이 이 순간부터 깨어나서 볼 수 있어야 해요. ‘내 마음 속에 일어나는 감정은 내가 만든다’, ‘아무도 나를 괴롭힐 수 없다. 아무도 나를 상처 줄 수 없다’는 말을 직접 입으로 표현해 보세요.”

화의 원인을 찾았다면, 화를 표현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권 교무는 “화는 마음을 깨어나게 하는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단, 화를 내는 것과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사회에선 화를 내는 사람들을 나쁘다고 여기고, 화를 참아야 한다고 억압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화를 제대로 내는 법을 몰라요. ‘너 똑바로 해, 너 그 따위로밖에 말 못해?’라고 밖에 표현 못 하죠. 이건 다그치는 거예요. 화를 숨기고 남을 탓하는 거죠. 화를 내고 싶을 때는 이렇게 말해보세요. ‘화가 나요. 속상해요. 뚜껑이 열려요. 그런데 이건 내 문제예요.’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은 맞받아 칠 수가 없어요. 저 내면에서 서로의 진실이 만나게 됩니다.”

결국 관계에서 오는 갈등은 내 마음과의 갈등이다. 권 교무는 사람의 마음을 ‘영사기’와 ‘부메랑’에 비유했다. 내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마음에 있는 것이 그대로 다른 이에게 투영되기 때문이며, 그 마음이 그대로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고집이 센 사람은 상대방에게서 고집이 센 모습을 발견하고, 친절함을 가진 사람은 상대방에게서 친절함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에게 없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서도 볼 수가 없다.

같은 원리로, 과거의 기억 때문에 상처 받고 그 사람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다면 그런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게 된다. 상처에 얽매어 그와 같은 사람만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권 교무는 “마음을 정화하고 깨끗하게 만들면 어떤 사람이든지 아름답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위대한 정화의 소식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기는 정말로 어렵죠. 그런데 그를 미워하면 결국 내가 나에게 상처를 준다는 걸 정확히 아신 겁니다. 원불교에서는 원망을 감사하라고 가르칩니다. 자신을 도와줄 때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만, 그러한 감사는 영양가가 크지 않아요. 내 앞길을 막고 고통스러운 존재에 감사할 때, 내 안에 보이지 않는 아픔이 치유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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