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영미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장
“우리도 종북세력인가, 아니 복음세력이다”

천주교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이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염원하며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 앞에서 매일 미사를 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8월 말 “더 이상의 생명을 잃지 않기 위해 인내와 신심을 다해 노동자들 곁을 지키며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을 지킬 때까지 정의롭게 다그치겠다”고 약속했다.

대한문 매일미사 150일차인 지난 4일 김영미 엘리사벳 수녀(1960년생,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장)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는 수도자와 교회 전체의 입장이 아닌 김영미 수녀 개인의 생각이라는 것을 전제로 쌍용차 사태를 비롯한 우리 사회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 <노동과세계> 편집자

△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와 자신의 활동에 대해

= 사회정의와 평화,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는 수녀들이 모여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들, 불의로 인해 피해를 입는 이들에게 연대하기 위해 모여서 복음을 공부했다. 최근 후쿠시마 핵발전소 붕괴를 비롯해 시급한 사안들이 많았는데 지난 2012년 가을 총회 때 우리 이름을 사회사목에서 생명평화로 바꾸고 이것만 전담하는 사람이 있어야겠다고 판단해서 제가 지난 2월부터 사무국에서 일을 하게 됐다.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는 귀한 존재다. 핵발전소 사고 이후에 수도자들은 여성들에게 여러 가지를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핵발전소를 비롯한 나쁜 것들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먼저 자각해서 교육을 시작했다.

그 전에는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노동 상담을 3년간 했다. 일한 돈을 못 받은 이들에게 돈을 받아주고, 아픈 이들을 병원에 데려다줬다. 그나마 수녀들이 가서 이야기하면 사장들은 마지못해 돈을 내줬다. 외국인노동자들, 특히 불법취업 노동자들에게는 돈을 안 준다. 불법이라는 걸 빌미 삼아 정말 나쁘게 했다. 전국의 노동청을 다 다닌 것 같다.

한국 노동자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작지만 그나마 구조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지 않은가. 불법으로 취업한 외국인근로자들은 사각지대에 있다. 그들의 인권을 누가 돌봐주는가. 그래서 교회가 있어야 하고 교회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예언자 직분을 받았다.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곧 불의에 동조하는 것이다. 그것은 죄다. 사회적 악의 시스템에 침묵하는 것 자체가 악에 동조하는 것이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잘못이라고 말하고, 작은 행동도 하고, 기도도 한다.

수도자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데모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 같다. 수도자들이 길거리 미사에 참여하고 기도하는 것을 데모하는 것으로 본다. 우리는 불의에 저항하며 기도로 함께 연대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같이 해야 한다. 대다수 수도자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수도자들은 교회가 함께해야 할 곳들, 연대해야 할 곳들에서 가교 역할도 한다. 저는 그동안 주로 강정, 밀양, 쌍용차 등 현장에 있었다. 우리가 연대해야 할 모든 현장을 찾아보면서 우리 여력이 닿는 한 뭐든 하고 있다.

ⓒ변백선 기자

△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해 매일 미사를 하게 된 배경과 취지에 대해

= 대한문에 쌍용차 분향소가 차려지고 나서 매주 월요일마다 미사를 했다. 그 후 지난 4월 4일 분향소가 침탈 당했다. 긴급히 회의를 해서 4월 8일부터 매일 미사를 해 왔다. 지난 9월 4일이 150일째다.

사실 쌍용차 문제에 대해 나도 잘 몰랐다. 2009년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3,000명이 옥쇄파업을 한 것도 잘 몰랐다. 평택공장 앞 철탑 앞에서 미사하고, 대한문에서 월요 미사, 이렇게 매일 미사에 참석하면서, 또 지난 4월 메이데이 전에 큰 미사를 하고 거리행진까지 하면서, 노동자에게 연대하기 위한 기도모임을 하면서, 사제 · 수도자 · 신자들 모임을 통해 그 전에는 단편적으로 알던 것들을 이제는 명확히 알게 됐다.

대한문과 강정에서 매일미사를, 밀양에서는 주 1회 미사를 하고 있다. 국가와 자본의 폭력 때문이다. 그만큼 상식이 무너졌고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지켜지지 않는다. 대한문에서 경찰은 노동자들을 매일같이 토끼몰이 식으로 힘들게 한다.

쌍용차는 어렵고 힘든 분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우리마저 그런다면 우리의 책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난 7월 20일 희망버스를 타고 울산에 갔다. 수녀들은 오로지 철탑 위에 있는 최병승, 천의봉 씨를 만나러 간 거였다. 무슨 시위를 하러 간 게 아니었다. 그런데 회사 측은 정문을 막고 용역이라고 하던가, 그런 사람들이 막 무장을 하고 위협을 하고 그래서 정말 많이 놀랐다.

경찰도 우리를 보호하지 않고 그들이 어떻게 하나 지켜보기만 했다. 제 느낌에는 그들이 우리를 폭도로 몰아 싸움을 유발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서글프고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었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일반 사람들은 언론에서 비쳐지는 것만 보고 폭력을 먼저 떠올린다. 노동자들이 주장하며 내놓는 의견은 모두 묻혀버리고 좋지 않은 이미지들만 부각된다. 지난번 희망버스를 경험하면서 경찰이 그런 것을 일부러 유발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 속에서 생명이나 평화는 전혀 부각되지 않는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그동안 싸워온 영상만 봐도 그렇다.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해서 그 노동자들에게 그토록 무지비한 폭력을 가해도 되는가?

저는 (쌍용차 노동자들 강제진압 상황을 보면서) 광주항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회 구조가 정말 잘못됐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정말 큰 병폐다.

쌍용차 사태는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폭력이고, 용산참사는 개발논리에 의한 폭력이다. 강정과 밀양도 마찬가지다. 이 모두가 한 줄기, 한 뿌리에서 나온 잔가지들이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같이 간 한 자매가 최병승 씨와 전화 통화를 해서 우리가 왔다고, 힘내시라고 전했다. 그리고 천의봉, 최병승 두 노동자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우리가 움직이는 것은 단순하다. 우리 수녀들에게는 이념이나 그런 것이 없다. 수도자들은 진보도 보수도, 좌도 우도 아니다.

우리 수녀들도 빨갱이 소리를 많이 들었다. 대한문에 쌍용차 노동자들과 함께 있을 때 어르신들이 지나가면서 수녀들이 빨갱이라고 했다. 이제는 우리를 종북세력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과연 수녀들이 빨갱이고 종북세력일까. 우리는 복음세력이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우리 사회에 현안들이 너무 많이 생겼고 그 문제들이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나라 4대강 사업이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됐고, 핵발전소 사태가 터졌는데도 아무론 대책이 없다. 정부의 태도는 상식을 벗어난 것이다. 언론도 그런 문제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아 국민의 눈과 귀를 다 막고 있다.


△ 대한문 매일 미사를 하고 있는 천주교 수도자들이 8월 말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며 선언을 했는데

ⓒ변백선 기자
= 전국의 천주교 사제 · 수도자 5,143인이 쌍용자동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염원하는 선언을 했다. 지난 8월 26일 선언일 당시에는 5,038인으로 발표했지만 누락된 105인 명단이 뒤늦게 알려졌다. 총 5,143인이다.

5,143인이면 전국에 있는 천주교 수도자의 30% 이상 규모다. 우리 여성 수도자들은 이 사업을 조직적으로 준비했다. 공문을 써서 나르고 여기에 동참하자고 호소하는 내용의 편지글도 써서 보냈다. 이 사태의 본질이 뭔지, 왜 동참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 등을 장황하게 설명해야 했다.

많은 이들이 쌍용차 사태를 그냥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났다. 회계조작이 있었다는 것도 많이 알게 됐다.

이 사태는 그야말로 상식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한 가정을 책임진 2,646명의 가장들이 하루아침에 잘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중한 가정을 파괴한 범죄다. 누군가의 자식이고 지아비이고 아버지인 사람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그로 인해 24명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벌어졌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부와 여당, 야당은 그 사태에 침묵했다. 많은 국민도 마찬가지로 침묵했다. 이제는 많이 알려졌지만 그래도 더 알리고 알려져서 국정조사든 뭐든 해서 그들의 말대로 일상의 삶을 되찾아야 한다.

나는 이렇게 편히 누리는 일상의 삶을, 다른 누군가는 누리지 못하고 편히 생활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나만 편히 살자는 세상이 아니다.

진실을 아예 볼 생각이 없는 사람들, 기득권들이 있다. 우리는 지금 세상을 1 대 99라고 표현한다. 99%의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거기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 나라의 역사는 1%가 아닌 99%의 대중이 이끌어왔고 대중이 써 왔다.

국민의 48%가 문재인 후보를 찍고, 52%가 박근혜 후보를 찍어서 대통령이 됐다. 그 후 48%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고 있다. 그 목소리를 외면하면서는 국민대통합을 할 수 없고 경제민주화도 할 수 없다. 물 건너갔다.

교회의 목숨 줄도 쥐고 급하면 나쁜 짓까지 한다.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안전과 생명, 존엄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인권 불감증이다.

우리는 지난번 선언에서도 밝혔듯이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한다. 약속은 생명이다. 우리는 약속이 지켜질 때까지 기도하며 노동자들과 함께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매일 미사를 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매일 미사가 되지 않는가. 오늘(9월 4일)로 150일째다. 우리는 기도가 일상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 신앙을 버리지 않는 것, 비록 당장 이뤄지지 않아도 끊임없이 기도하고 그들 곁에 함께 있어 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노동자들이 그들이 있어야 할 곳, 공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 매일 미사 현장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만나면서 드는 생각은?

= 분향소를 침탈해 화단을 조성한 뒤 노동자들이 그곳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매일같이 인권을 유린했다. 분향소가 철거된 그 상황에서 벼랑 끝까지 몰린 노동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봐 두려웠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아야 했고 또 죽으면 어쩌나 싶었다. 신부님들이 우리가 거기서 매일 미사를 하면서 지켜주자고 했고 우리도 동조했다.

얼마 전에는 교도소에 가서 김정우 지부장을 만났다. 밖에서 연대하는 이들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힘내시라고 했다. 수녀들이 가서 만나고 위로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해서 갔다. 그렇게 해서 연대가 생기고 그 연대가 더 커지고 그러는 것 같다.

지난 2월 대한문 앞에 가서 인사를 해도 나를 반긴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매일 미사를 시작하고 처음 쌍용차 노동자들을 만났을 때는 노동자들이 우리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아픔을 간직한 이들이고 그 아픔과 트라우마가 작용해서 다른 사람이 내미는 손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두려웠을 것이다. 누군가를 무턱대고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는 서로 얼굴을 보면 인사를 하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가족이나 친구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이다. 매일 미사를 150일 하다 보니 이제는 “수녀님, 어디 다녀왔어요?” 하고 묻는다. 그럼 저는 “연수 갔다 왔어요” 하고 대답을 한다.

강정 대행진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을 만났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을 서로 불러줄 때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서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삶의 일부를 공유하는 게 아닌가 싶다.

대한문 앞 미사를 쌍용차 노동자들은 쉬는 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이 평화로운 마음을 되찾아가기를 염원하며 우리는 기도하고 있다. 한 데 모여 기도하는 것을 보면서 아마도 그런 것을 느끼지 않나 싶다.

우리 수녀들은 쌍용차 노동자들과 서로를 알아가고 있다. 150일간 미사를 해 오면서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시간이 더 지나면 가정사도 알게 되고 제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게 될 것이다. 서로가 함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변백선 기자


△ 우리 사회가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준, 우리 사회 구성원이 소중히 여겨야 할 가치가 있다면?

= 서로 상생해야 한다. 사람을 뜻하는 한문자는 사람이 서로 어깨를 맞댄 모습이다. 한 획이라도 없으면 사람 인(人) 자가 될 수 없다. 사람은 사회적 조건 속에서 살아간다.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 그 소중한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고 공유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물질적인 가치들만 난무한다. 종교가 역할을 잘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했다면 우리는 적어도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살고 있을 것이다. 조화로운 삶은 나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남도 함께 잘사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불의가 아니라 불이익에 항거하는 시스템으로 몰아가고 있다. 우리는 불의에 침묵하고 약자들의 아픔을 양산하는 거대한 사회적 시스템에 침묵하고 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살인 행위다. 쌍용차 24명의 죽음을 몰랐던 것도 우리가 무관심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다.

바른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이라도 그 현장에 가보고 그들의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일단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되면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문제다.

사실 저도 잘 몰랐다. 대한문 앞 매일 미사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한 마디씩 듣는다. 그 아픈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많이 울었다. 저는 평택 철탑 위에 있던 복기성 씨가 “아빠, 언제 와?”라고 묻던 딸아이의 이야기를 했던 게 참 기억에 남는다.

한 가정의 가장이 자기 목숨을 담보로 철탑에 오를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분들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런 상황을 반추해 봤다.

길거리 미사에 대한 신학적 고찰이 진행되고 기사로도 그 내용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 걸 배제하고라도 하느님은 건물이나 교회 울타리 안에만 계시는 게 아니다. 어렵고 힘든 이들 곁에 계신다.

마태오 복음 25장 35-40절 말씀이 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이 말씀을 실천하는 것,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것, 그것이 바로 대한문 미사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학습의 장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배우는 현장이며, 많은 이들이 자신의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알게 되는 기회이기도 하다. 일반 신자들도 이를 통해 알게 될 것이다.

현 시대에서 정치권과 국가권력은 악이다. 천주교 15개 교구들에서 시국미사를 하고 있다. 전주와 수원, 대구 등 교구들에서 관련 시국선언과 미사를 했다. 특히 우리나라 보수세력의 텃밭인 대구대교구가 나선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수없이 저질러지는 잘못들에 대해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지켜보겠다는 경고다. 부마항쟁 때도 마산 지역이 도화선이 되지 않았는가. 9월이 가고 10월이 되면 다른 양상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공공부문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민영화는 절대로 안 된다. 공공부문은 국민을 위해 확보해야 할 공적 영역이다. 민영화가 추진되면 대다수 서민들은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우리 같은 수도자들은 주어진 여건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잘 견딜 수 있지만 서민들은 다르다. 민영화를 해서 서비스 질이 높아지겠는가. 민영화를 추진하는 이들은 서민들 삶에는 관심이 없다.


△ 평소 민주노총을 바라보며 했던 생각, 또 민주노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변백선 기자
= 민주노총에 대해 사실 잘 모른다. 일반적으로는 또 다른 거대 이익집단으로도 보는 것 같다. 자기네 밥그릇만 위해 싸우는 것으로도 비쳐진다. 귀족노조라는 말로도 대표된다.

민주노총이 정규직만이 아니고 비정규직도 함께 이끌어서 두 바퀴가 같이 가게 해야 한다. 제 눈에는 민주노총이 그동안 비정규직을 정말 잘 끌어안았는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과 함께하려고 했나 싶다.

노동조합 하면 항간에서는 관리자적 입장이나 집단이기주의로 많이 본다. 자기들 임금뿐만 아니라 노동조건, 환경 등 구조를 바꿔야 한다. 임투란 말을 많이 들었다. 임금도 중요하나 노동조건이나 상황 등 구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노동조건이 우선적으로 좋아져야 삶의 질도 나아질 것이다. 이는 노동자들만 노력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전체 국민이 함께 공존하고 상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제화에도 힘써서 정책을 바꾸게 만들어야 한다. 국가가 정책을 바꿔서 비정규직이 더 이상 양산되지 않도록 민주노총이 더 많이 힘쓰고 노력해야 한다. 내 밥그릇은 금이고 비정규직 밥그릇은 놋쇠가 아니다. 다 똑같은 밥그릇이다. 지금까지와 똑같이 비쳐지지 않으려면 민주노총이 더 노력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집단이기주의로 나가선 안 된다. 노조도 공동선을 향해 함께 가면 좋겠다. 노동자들 의식이 변해야 세상도 변할 것이다. 쌍용차와 밀양, 재능, 강정 등 모두가 서로 연대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공동선이다. 누군가 아파할 때 같이 연대해주고 아픈 사람들끼리 함께해야 한다. 내 아픔만 생각할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이 아파할 때 같이 아파해줘야 한다. 그게 우리 몫이라고 생각한다.

후세대에게 좋은 유산을 만들어주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좋은 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늘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세상이 올 것이다.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은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 첫 술에 배부르겠는가. 민주화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온 것이다. 그걸 지키기 위해 우리는 절대 안주해선 안 되며 더 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그리고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혼자가 아니니 외로워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늘 함께할 것이다.

<기사 제공 / 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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