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댓말로 읽는 헌법 - 14]

슬아, 지금까지 많은 헌법적 권리들에 대해서 이야기했잖아. 이것들을 모두 종합하면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슬이 너는, 인간답게 살고 있니?

혹시 질문이 우습니? 하지만 정말 진지하게 하는 질문이야. 너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느 정도이면 “인간다운 생활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어느 정도의 경제력과 어느 정도의 문화생활, 어느 정도의 삶의 질을 갖추면 ‘인간답다’고 할 수 있을까?

쉬운 것처럼 보이는 이 질문이, 오빠가 생각하기에는 전혀 쉬운 질문 같지가 않아. 헌법에 근거한 이 권리에 비추어 복지 제도가 시행되는 건데, 최근에 정치권에서 큰 논쟁거리였던 무상급식 논쟁에서도 보이는 것처럼, 그 범위의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잖아.

헌법 제34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지녀요.
제2항 국가는 사회보장 ․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집니다.
제3항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해야 해요.
제4항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집니다.
제5항 신체장애자 및 질병 · 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아요.
제6항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요.

헌법 조문을 보자. 특히 제34조 제4항을 봐. 국가는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가 있대. 어때, 네 생활 속에서 국가의 복지향상 정책이 조금 느껴지니? 이런 조문들이 학교에서의 ‘무상급식’의 구체적인 헌법적 근거가 되는 것 같네.

그리고 조문을 잘 보면, 조금 성격이 다른 것 같은 조문이 하나 들어가 있는 게 보여. 헌법 제34조 제6항. 물론 인간다운 생활 보장의 한 측면으로서 국가의 재해 예방 의무가 서술되는 것이 일관성이 없는 것은 아니야. 그런데 이것은 국민이 갖는 환경권과도 연결되는 조문이거든. 환경권에서의 환경은 생태계와 자연환경의 보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쾌적한 주거 환경, 도시 환경을 의미하기도 해. 그러한 환경을 유지하려면 당연히 국가에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에서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거겠지?

헌법 제35조
제1항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제2항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합니다.
제3항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슬아, 혹시 재작년에 ‘방사능 비’ 맞았니? 너무 충격적인 일이 일본에서 일어났잖아. 물론 대지진이 일어난 것은 참 안 된 일이지만, 그 결과 우리나라에 방사능 비가 내리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었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정부의 태도를 비난하고 있어. 일본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유출이 우리나라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정부의 발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슬아, 넌 어떻게 생각하니? 헌법 제34조와 제35조에 비추어 볼 때, 정부가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걸까?

심지어 지난 몇 년간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4대강 사업’에 이르면 헌법 제34조 제6항과 헌법 제35조는 사문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야.

슬아, 생각해 보자. 지금 이미 그 사업으로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들이 죽었고, 그 공사에 참여한 많은 노동자들이 과로로 돌아가셨어. 원래 그 지역에서 골재 사업을 하시던 분들 가운데 자살한 분들도 계시고. 그리고 그 공사 기간 동안 주위 환경이 많이 훼손됐어.

다른 부분은 차치하고라도, 헌법 제34조와 제35조에 비추어 봤을 때, 국민의 환경권이 보장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2010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김정욱 교수는 “대형국책사업의 진행방식을 보면 계획단계에서부터 공개적인 논의를 거쳐 사업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며 “먼저 정치적으로 사업 진행을 결정하고 그에 맞춰 사업타당성조사보고서가 꾸며지고, 환경영향평가는 사업이 시작되고 난 뒤에 형식적으로 이루어진다”(* 김정욱, <나는 반대한다>, 느린걸음, 2010, 166쪽)는 점을 강하게 비판했어.

그 이름 그대로, ‘강’을 가지고 ‘사업’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그것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예컨대, 강을 ‘정비’해서 주위에 골프장을 건설하는 것은 그 강을 상수원으로 사용하는 주민들의 환경권에 대한 막대한 침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이거야. 환경과 관련된 문제는 지금 세대의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것이라는 것. 지금 정부 관료들과 집권당이 한 일들 때문에 일어난 문제들로 피해를 보는 것은 정작 다음 세대인 슬이 너와 오빠, 우리 세대라는 것. 어쩌면,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 세대의 발언권을 현저히 축소시켜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참정권에 대한 조문들을 한 번 살펴보자.

헌법 제24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집니다.

헌법 제25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담임권을 가집니다.

헌법 제26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집니다.
제2항 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가집니다.

헌법 조문에는 모든 국민이 선거권을 갖는다고 되어 있지? 하지만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가진다고 되어 있잖아. 현행 공직선거법은 19세부터 선거권을 주고 있어. 하지만 상상해보자. 만일 이 선거연령을 대폭 인하한다면 어떨까? 만 13세 정도(우리 나이로 15세)로 말이야. 민법에서 책임능력을 인정하는 경우(13~14세)*와 형법 제9조에 따르면 형사미성년자를 14세로 규정한 경우**에 비추어 만 15세 정도의 국민이 투표권을 갖게 된다고 하여 전혀 ‘부당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말야.

〔* 자기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변식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데, 구체적 ·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지만, 판례는 대략 13~14세 정도를 인정하고 있어. (곽윤직, <채권각론>, 박영사, 2009)〕

〔** 그래서 14세 미만자는 절대적 책임무능력자로 간주되고, 19세 미만자는 소년법의 적용을 받아. 하지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경우에는 소년법 규정에 의해 형벌이 아닌 보호처분은 받을 수 있어. (이재상, <형법총론>, 박영사, 2009)〕

슬이 네가 만 15세지? 너와 너의 친구들이 투표를 하면 어떻게 될까? 미성년자들은 아직 성숙하지 못했고, 대개 부모님 생각에 따라 선거를 할 거라는 점에서 많이들 반대하지만, 오빠 생각에 그건 비논리적인 것으로 보여. 슬아, 네 주위에 부모님 뜻에 맞춰 사는 친구들이 몇 명이나 되니? 네 친구들이 부모님 뜻에 맞춰 투표할 것 같니? 더욱이 ‘어른들’은 지금까지 얼마나 성숙한 결정들을 내려 온 걸까?

만일 13세 이상 청소년들 전부에게 투표권이 생긴다면 지금 있는 학벌 체제와 입시제도는 10년 안에 사라질 거라고 오빠는 생각해. ‘4대강 사업’ 같은 것은 시작도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가진 (조금의) 돈과 땅, 은행 예금, 학벌 같은 것들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기성세대는 그런 변화가 두려운 것이 아닐까, 오빠는 생각해.

오빠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00년, 최초로 ‘총선시민연대’가 발족했어. 부적합한 공천을 받은 국회의원 후보자들에 대한 낙천 · 낙선운동을 벌였지. 그 뒤로 2004년에도, 2008년에도 지역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은 꾸준히 진행되어 왔어.

하지만 이 낙선운동은 공직선거법상 처벌 대상이 돼. 결국에는 낙선운동 대상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를 위한 불법 선거 운동으로 해석되거든. 이에 헌법소원이 있었고, 헌법재판소에서는 합헌 결정〔헌법재판소 2001. 8. 30. 2000헌마121 · 202(병합) 전원재판부〕을 내렸어.

낙선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당선의 목적’이 없기 때문에 다른 불법선거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명백히 구분되고, 그렇기 때문에 처벌 대상이 아니지 않느냐는 주장에 대해서, 그 당선의 목적 유무를 판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요건만 충족하면 처벌해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지금도 낙선운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벌금형을 각오하고 그런 운동을 하는 거야. 사실 낙선운동 자체에 대해서 찬성, 반대의 입장을 가질 수 있겠지만, 낙선운동이 일어난 배경, 곧 정치인들이 국민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행태와 타락한 정치인들이 계속 국회의원직을 차지하는 모습에 대한 문제의식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더욱이, 슬아, 정작 우리 세대에게 올 일들을 이전 세대가 결정하면서, 한마디 양해를 구하지 않을뿐더러, 그들에 대한 낙선운동조차 법률로 금지해 두는 오늘의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니?

헌법 개정이 아닌 법률 개정만으로도 청소년도 충분히 선거권을 얻을 수 있단다. 만 20세였던 선거연령도 몇 년 전에 19세로 내렸잖아.

슬아, 지금 오빠가 하는, 청소년 참정권 같은 말들이 생뚱맞게 들릴지 모르겠어. 하지만 학업만을 강요하면서 정작 정말 너와 네 친구들이 누려야 하는 참정권과 환경권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어른들이야말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차진태 (모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재학 중이며, 구속노동자후원회 자문위원, 대학원자치회 대표를 맡고 있다. 예수살이공동체에서 배동교육(청년교육)을 받은 회원이며, 서울대 가톨릭 기도 모임 ‘피아트(FIAT)’에도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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