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스타보 구티에레즈 신부 (사진 출처 / 위키백과)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게르하르트 루드비히 뮐러 대주교는 교황이 페루의 해방신학자 구스타보 구티에레즈 신부를 조만간 만날 것이라고 지난 8일 발표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교황청과 해방신학의 오래된 불편한 관계를 청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방신학은 그동안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 교회가 새롭게 태어난다고 주장해 왔는데,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를 촉구해온 교황 프란치스코는 해방신학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보여 왔다.

<릴리전 뉴스 서비스(Religion News Service)> 칼럼니스트였던 알렉산드로 스페시알레는 “한때 커다란 인기를 누렸지만 보수적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와 오랫동안 교리적 권위자로 군림했던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거의 뿌리 뽑힐 뻔했던 해방신학 운동의 입장에서 보자면 180도 돌변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알렉산드로는 해방신학이 1960년대와 7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군사독재정권들과 맞서 싸웠던 마르크스주의 운동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대응으로 등장했으며, 해방신학은 때때로 노골적으로 독재정권을 지원하였던 교회의 태도를 비판해 왔다고 전했다. 또한 해방신학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단지 사후세계의 구원만을 추구하기보다, 지금 여기에서 가난과 어려움의 씨앗을 잉태하는 불의한 사회에 맞서 행동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구티에레즈 등 해방신학자들은 예수의 모범에 따라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강력한 반공주의자였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임 당시, 혼 소브리노와 레오나르도 보프 등 주도적 해방신학자들은 마르스크주의 이념을 신봉한다는 비난 속에 바티칸으로부터 견책을 받았다.

▲ 구티에레즈의 저서 <해방신학>
1980년대에는, 후에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된 요셉 라칭거 추기경이 이끌던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해방신학을 “심각한 이데올로기적 일탈”이라고 비난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구티에레즈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로 알려져 있던 뮐러 대주교를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임명한 이가 바로 베네딕토 16세 교황이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이 조치는 냉전의 종식과 공산주의 정권들의 붕괴로 조성된 교황청과 해방신학 사이 긴장의 해빙기를 알리는 사건이었다.

교황청 일간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는 이제 처음으로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교황이 출현함으로써 해방신학은 “적어도 유럽에서만큼은 최근 몇 년 동안 폄하되어 머무르던 어둠의 그림자 속에 더 이상 머무르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아직 해방신학을 명시적으로 지지한 적은 없지만, 가난한 자에 대한 착취를 비난해왔고 가톨릭교회가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촉구해왔다는 점에서 해방신학의 견해에 접근해 있다.

뮐러 대주교가 2004년 구티에레즈와 함께 펴낸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서 : 해방신학(On the Side of the Poor : The Theology of Liberation)>은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지난 9월 3일 이탈리아어 번역판이 출간되면서 교황청에서도 이 책에 주목했다. 이 책에서 뮐러 대주교는 해방신학을 “20세기 가톨릭 신학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조류”라고 설명하면서, 교회가 “지상의 행복과 초월적인 구원” 사이의 간격을 메워나가는 데 일조했다고 평가했다.

이탈리아 북부 만투아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뮐러 대주교는 1980년 엘살바도르에서 군부독재의 폭정을 비판하다가 암살당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시성 절차를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 참고 기사 번역 제공 / 배우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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