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동의 바닥에서 문득]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외박을 밥 먹듯 하던 젊은 날
어쩌다 집에 가면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 발고랑내 나는 밥상머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 니, 오늘 외박하냐?
- 아뇨, 올은 집에서 잘 건데요
-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
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
퇴근 길에 마주친 아배는
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선 채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 야야, 어디 가노?
- 예… 바람 좀 쐬려고요.
-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부나?

그런 아배도 오래전에 집을 나서 저기 가신 뒤로는 감감무소식이다.

-안상학, 아배생각

詩人 안상학 / 1962년 경북 안동 출생.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그대 무사한가』, 『안동소주』, 『오래된 엽서』가 있다.

시를 써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자주 물어본다.
“시는 어떻게 써요. 어렵지 않아요.”
그때마다 막막하다. 있는 그대로, 느낀 대로 쓰시면 돼요. 라는 말 밖에는 해줄 말이 없으니 그렇다. 위와 같은 시라도 하나씩 넣어가지고 다녀야 할까 보다. 이 시를 봐요. 어려운 말 하나도 없죠. 그럴 듯한 표현 하나도 없죠. 일상적으로 오가던 이야기죠. 그런데 왜 웃음이 나오고, 눈물이 날까요.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 발고랑내”를 가진 아배의 이야기에서 오히려 왜 삶의 존엄을 느끼게 될까요. 여느 철학자 앞에서 보다 삼가 옷깃을 여미게 될까요. 시는 자잘한 삶의 지혜, 삶의 애환을 다루는 거예요. 그 바닥에서 사랑과 평화가 무엇인지를 느끼는 거예요. 오늘부터 한번 써보세요. 거창한 이야기, 멋들어지게 보이는 이야기말고, 조금은 쑥스러운 이야기들부터 시작해 보세요. 당신 마음속에도 시가 한 천 편은 들어 있을 거예요.

송경동 / 시인. 시집으로 <꿀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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