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칼럼 - 한수진]

“예수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보면서 정말로 마음이 찢어지는 것과 같은 아픔을 느꼈던 것 같아.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행동할 수는 없었을 거야.”

오래 전, 복음 묵상을 나누던 자리에서 한 선배가 말했다. 상상해보았다.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란 얼마만큼의 아픔일까. 갑작스런 사고로 친구를 잃었을 때 느꼈던 아픔과 비슷할까. 스무 살 무렵, 아직 삶의 보폭이 짧은 나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지난 주말 교황 프란치스코는 전세계 교회에 시리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시리아의 상황이 담긴 이미지들이 “마음에 큰 상처를 냈다”고 표현했다. 전쟁이라는 단어조차 모르고 자랐다면 더 좋았을 어린이 수십 명이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은 채 콘크리트 바닥에 나란히 누워 있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아마도 그는 예수가 가졌던 아픔을 근접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하면 더 이상 한 사람도 이러한 죽음을 맞지 않을까 고민한 끝에, 시리아의 갈등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가 제시한 해답이 세상물정을 모른 채 낭만적으로 늘어놓은 정치적 수사였다면, “전쟁은 결코 안 된다”고 두 번이나 반복하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호소”를 당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교황청 국무원은 5일 각국 외교관을 대상으로 최근 시리아 상황과 교황이 발표한 호소에 관한 간담회를 열었다. (사진 출처 / 유튜브 동영상 youtube.com/vatican 갈무리)

그러나 세상은 교황의 절실한 호소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 지난달 21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에서 화학무기 사용이 의심되는 공격이 벌어지자, 미국은 공격의 책임이 시리아 정부군에 있다고 결론짓고 군사개입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명분은 화학무기 사용이 국제법을 어긴 것이고, 해당 국가는 책임을 져야한다는 거였다. 바로 그 화학무기가 미국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유엔 조사단의 조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4일 미국 상원의회 외교위원회에서 시리아에 제한적인 군사작전을 승인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전투를 위한 지상군 파병은 승인하지 않되, 60일간 시리아의 군사 목표물을 대상으로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대통령의 요청이 있으면 이를 30일간 연장할 수 있다. 상원 전체 회의와 하원의회 통과를 앞두고 있지만, 의회 지도부는 이미 정부의 공습계획에 지지의사를 표명한 상황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본 지금까지의 시나리오는 너무나 익숙해 데자뷰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영국이나 독일 같은 절친 국가들의 동의를 얻지 못해 군사개입을 단독으로 준비한다는 차이점 말고는, 2011년 3월 리비아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공습을 준비하던 당시와 판박이처럼 닮았다. 자국의 안보를 걱정하는 대목에선 2003년 이라크와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떠오른다. 인도주의를 내세우며 성급히 공습 결정으로 돌진하는 모습은 1999년 코소보 공습과 다르지 않다.

실제로 미국은 코소보 공습을 전례로 들어 유엔의 동의 없이 단독으로 시리아를 공습할 근거를 마련했다. 정말로 코소보 공습은 미국이 ‘좋은 전례’로 여길 만큼 성공적이었을까? 실상은 그 반대였다. 미국은 세르비아 극우민병대의 학살로부터 코소보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유고슬라비아에 공습을 가했으나, 정작 심각한 수준의 대규모 학살은 공습 이후에 본격화됐다. 외부의 개입이 오히려 더 큰 불씨를 당긴 셈이었다. 미국은 자신의 군사개입으로 코소보 사태가 정리됐다고 믿고 싶겠지만, 공습 대신 외교적 해결을 택했다면 보복으로 인한 대규모 참극은 피할 수 있었을 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국의 침공 이후 10여 년간 잔혹한 세월을 보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무모한 군사공격이 어떻게 한 나라 국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이들을 더 끔찍한 내전의 수렁으로 이끌어 가는지를 보여줬다. 리비아도 마찬가지였다. 나토의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공습 이후 인명피해는 그 전에 비해 10배 가까이 높아졌다. 여기에 공습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일조한 것은 물론이다. 언론은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기만 하면 리비아에 평화가 올 것처럼 포장했지만, 정권 붕괴 이후 리비아에선 오히려 지역 군벌의 영향력이 커지고 무장단체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시리아 국민들이 원했던 건 외국군의 군사개입이나 내전이 아니었다. 현 상황의 발단이라 할 수 있는 2011년 3월에 시작된 대규모 시위에서 사람들이 요구한 것은 48년간 계속된 국가비상사태의 해제, 정치 수감자 석방, 언론과 표현 · 정치활동의 자유와 같은 민주화와 실업 문제 해결, 물가 안정, 부패 척결 같은 일반 국민들의 삶의 질과 환경 개선이었다. 정부가 마을 하나를 탱크로 포위하고 무차별 총격을 가해 진압작전을 펼쳐도, 시리아 전역으로 들불처럼 시위가 번져나갔던 이유는 민주주의와 인간적인 삶을 향한 강한 열망 때문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상황은 무엇보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과 정부에 책임이 있다. 정부군의 시위 탄압이 잔인하고 무차별적으로 진행되면서 사망자가 급증하고 체포자 숫자가 만 명을 넘어선 시점부터 시위대 일부가 무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시위대를 향한 발포 명령을 거부한 정부군 소속 군인들이 부대를 이탈해 시위대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무장항쟁으로 확대됐고, 반 아사드 성향을 가진 시리아 출신 자본가들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지원을 받은 무장세력들이 가세하면서 시리아의 민주화 시위는 사실상 내전 성격을 띠게 됐다. 물론 무장 수준은 정부군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 28개월 동안 양측의 무력 충돌로 발생한 사망자 수는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달 말 시리아 국경을 넘어 레바논으로 피난을 떠나던 45세 여성은 AP 통신에 “이미 폭력과 싸움이 온 나라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이걸로 충분한거 아닌가? 그런데 미국이 폭격까지 하려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나라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그가 문제의 해법을 알고 있다. 미국이 시리아를 공습한다면, 시리아의 미래는 불행하게도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리비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군사적 해결법을 밀어붙이는 건,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죽이겠다는 뜻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그들이 세계 곳곳에서 해왔던 방식대로 말이다.

그런데 한편에는, 무력개입이 시리아 내전을 빨리 종식시켜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공습이 벌어지면, 적으로 간주된 군인 외에 민간인의 피해 역시 발생할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이건 말 그대로 모순이다. 그렇게 귀하다고 여기는 생명 앞에서 100명의 죽음보다 10명의 죽음이 더 낫다는 잔혹한 숫자놀음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평화’라는 단어는 밝고 편안한 이미지를 가졌지만, 정작 평화를 구체적인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평화를 거스르는 이들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고, 가슴 깊이 호소하고, 눈물 어린 아픔을 겪어야 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호소에 귀가 향하고, 마음이 향하는 이유다. 평화를 이루는 가장 현실적인 길은 평화로운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한수진 (비비안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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