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여러 종교를 이렇게 보실꺼야 - 성서와 이웃종교 3 ]


초기 교회의 두 가지 신앙 양상

1세기 그리스도교회의 신앙 양상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 그 하나는 오랫동안 유대교 율법에 익숙했다가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었고, 다른 한 부류는 박해를 피해 비유대 문화권으로 들어간 유대인들 또는 유대교의 율법과 전혀 상관없는 문화권에 살던, 이른바 이방인들이었다.


유대교 율법에 익숙했던 전자의 경우는 신앙 생활도 율법적으로 했다. 이들은 예수에 대한 신앙도 613개 되는 유대교 율법을 지킴으로써 가능하다 보았고, 특히 할례와 같은 의례를 준수하려고 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야고보였고, 베드로도 그러한 입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후자에 속한 이들은 신앙생활과 율법을 거의 별개로 보았다. 율법 밖의 문화에 더 익숙했던 데다가 율법보다는 그리스도 체험이 더 컸기에, 율법은 그리스도가 오신 후 효력이 상실된 것으로 간주했다. 그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올바른 행실이면 충분하다고 보았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울로이다.


물론 율법주의적이었던 야고보와 베드로, 그리고 율법에 매이지 않았던 바울로도 다 초기 교회의 주요 지도자들이었다. 하지만 초기 교회 성립기, 이들 간에는 개성 차이도 있었고, 율법을 둘러싼 입장 차이도 컸다. 지도자들 간에 입장 차이가 생기자 신자들 간에도 혼란이 생겼다. 그러자 이를 해결하고자 서기 49년 경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 회의가 소집되었다. 그리고는 거기서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지도자들의 소명과 개성을 존중하면서 그 소명에 맞게 전도 대상을 나누어 선교하기 시작한 것이다.(갈라 2,9) 그 뒤 베드로는 유대인 중심으로, 바울로는 이방인 중심으로 선교하게 되었다.

바울로의 선교관

이 지도자들 간에는 가끔 비판적 논쟁들도 벌어지곤 했다. 한 번은 이런 갈등이 생겼다. 베드로가 자신의 예수 체험을 전해주고자 안티오키아에 있는 교회에 갔을 때 일이다. 안티오키아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섞여 있던 교회였다. 초기 교회의 주요 의례인 애찬식도 유대인과 이방인이 뒤섞여 거행했다. 그 자리에 유대인의 율법을 존중하던 베드로가 가게 되었고, 함께 식사를 하게 된 것이다. 베드로는 이처럼 기회가 되면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기도 했을 만큼 ‘골수’ 율법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베드로보다 더 율법적이었던 야고보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유대인 율법의 음식규정대로라면 이방인과 식사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는데(에스겔 4,13; 호세아 9:3-4), 이방인과 식사하는 장면을 깐깐한 율법주의들이 목격하게 되었으니 베드로는 난처했다. 그래서 애찬의 시간을 사양하고 슬쩍 자리를 피했다. 야고보의 사람들을 자극하면 큰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바울로가 알게 되었다. 그러자 바울로는 베드로를 비판했다. 조금 전까지 이방인과 어울려 식사를 해놓고는 율법적 사람들이 들어온다고 해서 자리를 피하는 행동은 위선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기보다는 이방인과 더불어 식사하면서 적극적으로 함께 어울리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 바울로의 충고였다.(갈라 2,11-14) 유대인의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울로 신앙관의 핵심이었고, 당시 세계에 어울리는 신앙적 실천을 위한 요청이었다.

율법주의를 넘어

물론 이러한 요청은 내내 유대인의 율법적 문화 속에서 살았던 베드로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베드로는 이러한 충고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사람은 아니었다. 지난 번 본대로, 그도 결국은 하느님이야말로 종족이나 신분상의 이유로 인류를 차별하는 분이 아님을 깨닫고서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교라는 것은 율법주의적 자기중심주의의 일방적 적용과 확대가 아니라, 자신을 제한하고 이웃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하느님께서 모든 곳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구체화시키는 곳에서 선교가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교 선교의 역사는 율법주의를 극복해온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바울로식 보편성의 승리인 것이다. 오늘날의 언어로 하자면, 다른 종교인과 적극적으로 만나지 못하고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 자기폐쇄주의를 벗어나 이웃과 편견 없이 만날 때, ‘타’종교를 ‘이웃’종교로 대할 때, 그 이웃이 그리스도교의 언어를 비로소 알아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울로의 입장을 따르건대, 여러 종교에 대한 이해와 종교간 대화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종교간 대화의 이유

바울로에게는 이방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예수의 의미를 해설하고 해석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다. 아마 율법의 근본 의미를 읽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이른바 이방인에게 신앙의 보편성을 알려준 바울로가 없었다면, 그리스도교가 오늘과 같은 자리매김을 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오늘의 그리스도교가 된 데에는 바울로의 이런 자세가 한 복판에 놓여있다. 오늘날의 종교나 종파, 각종 이념들보다 더 강력했던 당시의 민족 내지 율법적 장벽을 넘어섬으로서 오늘의 그리스도교가 성립될 수 있는 기초가 닦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인들이 자신만의 언어와 세계관을 넘어, 이웃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찬수/ 종교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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