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평화 탁발순례, 길 위의 5년을 마치다
이 땅 곳곳을 걸으며 생명평화의 씨앗을 뿌려온 생명평화 순례단의 탁발순례를 마치는 행사가 12월 13일 서울 종로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열렸다. 이에 앞서 순례단은 이날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순례단과 함께한 100명 남짓한 순례자들과 서울역에서부터 종로 보신각까지 걷는 순례 일정을 마쳤다. 순례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순례단을 이끌어온 도법 스님은 "생명평화의 길은 이제 시작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제 생명평화를 위해 한 발 내디딘 걸음의 시작이라고.
지난 2004년 3월 1일 생명평화 순례단은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하여 이 땅 산과 강과 들을 걸었으며, 마을을 들르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순례의 첫발을 내딛기에 앞서 도법 스님은 이런 말을 했다. "그동안은 이익과 승리만을 좇아왔는데, 이제는 체념하고 포기하는 길을 떠나려 합니다. 붙잡고 있던 것들을 떠나볼까 싶습니다. 포기하고 버리는 길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그 길을 떠나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땅에 생명평화의 문화가 일상적 삶의 문화로 자리 잡길 꿈꾼다고 하였다.
이렇게 걷고 나면 후에 울림이 있을 거예요
그래서일까? 서울 순례 100일을 마무리하는 순례길에는 초등학생부터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였다. '생명평화'는 우리한테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닌 것이다. "아이들도 알아야죠. 생명이 뭔지를, 평화가 어떤 거라는 것을. 지금이야 (아이들이) 뭘 알겠어요. 그래도 이렇게 걷고 나면 후에 울림이 있을 거예요." 추운 날씨에도 아이들한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자, (서울 삼양동지역) 명례방 스카우트 푸른솔 지구대 아이들을 이끌고 마지막 순례길에 오른 베로니카 수녀의 말이다.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은 지난 5년 동안 3만 리(1만2000km), 1127일(탁발순례 1113일, 생명의 강 104일)을 걸었으며, 그 길 위에서 8만 명 남짓한 사람들을 만났다. 더 이상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에서 탁발순례단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꺼이 청했다. 내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는 너, 네가 아니면 존재하지 못 하는 나를 깨달으며 먹을 것을 구걸하였고, 이야기 나누기를 청했으며, 잠자리 또한 얻어 잤다. 상처 받은 지역에서는 위령제와 천도재를 지냈고, 사회갈등과 생명평화의 염원이 필요한 곳에서는 기원제를 올리며 생명평화의 대중화를 이루어갔다. 그래서 순례단은 기꺼이 이렇게 고백한다. "당신이 길이요 내 생명이었습니다."
세상에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2007년, 순례단과 인연을 맺어 강릉에서 동해 구간을 열흘 동안 함께 순례길에 올랐었다는 성심수녀회의 이미경 수녀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변화를 말하면서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해 그러기를 바라는데, '세상에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는 말이 크게 마음에 와 닿아 기쁘게 길을 걸었습니다. 이 또한 외치는 게 아니라 침묵으로, 그 방법 또한 빨리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한없이 걷는 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라고 하면서, 그것은 마치 2천 년 전에 예수님의 활동과는 같았다고 하였다. "'생명평화' 순례는 마치 제가 예수님 일행 가운데 하나가 된 느낌을 갖게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도 2천 년 전에 오셔서 이러한 방법으로 걷고 사람을 만나고, 만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진리에 대한 염원을 끌어내셨다는 것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생명평화의 탁발순례는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탐욕은 인간의 마음을 병들게 하였고, 병든 인간은 개발논리에 사로잡혀 이 땅의 강산을 짓밟으며 생명체를 마구 죽였다. 그래도 인간은 만족할 줄 몰랐고 행복하지 않았다.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워졌으나 생명의 본디 모습이 걸러진 삶터는 곳곳이 지뢰밭이 되어 더욱더 위태로워졌다.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지향점으로 순례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삶 결 따라 마음 길 따라' 5년을 걸으며 성찰한 자리에서 우리는 생명평화를 마음에 심을 수 있었다.
삶 결 따라 마음 길 따라' 5년을
생소하기만 하던 '생명평화'라는 새로운 길을 걸어온 순례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길 위의 순례를 통해 우리는 "생명이 본디 우리 삶의 본질이라면 그 바탕이 이땅의 산하 산천초목일진대, 이것이 병들고는 우리가 건강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다.
그러나 생명평화의 삶은 물질에서 벗어나 생태적으로 영성적으로 살지 않으면 길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러면서 새로운 길을 걷는 깨달음과 생명의 울림 속에서도 정착되지 않은 평화를 위해서 우리 모두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제 우리한테는 깨달음의 실천이라는 숙제가 눈앞에 놓여있다.
"길 위에 있을 때, 그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도법 스님의 마지막 말씀이다.
박오늘/ 지금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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