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한상봉]

<노름마치>라는 책이 있다. 전통예술 연출가 진옥섭 선생이 펴낸 책인데, 춤을 추던 기생과 무당, 광대의 ‘안타깝고도 아슬하게 아름다운’ 삶을 다루고 있다. 진옥섭은 “일어나 춤을 추면 ‘외양간의 누운 소’가 돌아보고, 앉아 소리하면 ‘헛간의 도리깨도 들썩인다’는, 짜하던 명성은 이미 옛이야기일 뿐”이어서 “오늘은 잊혀진 사람이 되어, 원망도 미련도 애정도 없다”고 전했다. “세상사에 대한 관심마저 끊고 말문을 걸어 잠갔다”고 썼다.

‘노름마치’란 ‘놀다’의 놀음(노름)과 ‘마치다’의 마침(마치)이 결합된 말로 최고의 잽이(연주자)를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다. 그 사람이 나와서 한판 놀면 뒤에 누가 나서는 것이 무의미해 결국 판을 맺어야 했다. 이렇게 놀음을 마치게 하는 고수 중의 고수를 노름마치라 부른다. 듣고 보는 이의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드는, 이내 닫을 수 없게 만드는 이들이 고수다. 최근에 한국 사회에서는 황당하고 경악해서 입을 닫지 못하게 만드는 사건이 줄지어 발생하고 있다.

노름마치들은 신기에 가까운 실력으로 예술적 감흥을 자아내지만, 한국 사회의 정치적 고수(苦手)들이 연출하는 상황은 국민을 참담한 심경으로 이끌어가고, 정치적 무력감에 빠져들게 만든다. 최근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사건으로 한국 사회가 시끌하지만 속 시원히 해결되는 것은 없다. 전 국정원장인 원세훈과 전 서울경찰청장인 김용판은 국회 청문회를 장구 삼아 치고 놀았다. 박원순 시장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고 말할 만큼 그들은 애초부터 증인석에서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었다. 뒷배가 든든하니 그럴 만하다.

그들은 검찰이 낱낱이 밝혀 놓은 사실에 대해서도 ‘사실무근’임을 주장하고, 아예 증언에 앞서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선서’마저 거부했다. 대선 당시 국정원 댓글을 중심으로 하는 그네들의 불법행위가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는 측면에서 그들은 현실권력의 비호를 받을 만하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김용판 전 청장의 발언을 두고 ‘거짓말’이라고 명토를 박았다. 그러자 새누리당 의원은 권 과장에게 “당신은 대한민국 경찰이냐, 광주경찰이냐?”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고, 이 질문의 의도를 묻는 권 과장 앞에서 의원은 이내 말꼬리를 흐렸다.

이처럼 부정한 자들의 ‘범죄를 비호하는 방탄청문회’를 보면서, 국민들은 참담했을 것이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농담처럼 청문회에 응하던 증인들은 ‘음험한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다. 이 자리에 ‘민주주의’는 힘이 없었다. 민주주의를 유린했던 장군의 딸, 한때 ‘각하’라고 불렀던 자의 후예와 권속들이 정치권력의 중심에 서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끝장내는 ‘어둠의 노름마치’들이다. 이들은 정치놀음의 황당한 예술적 경지를 습득하고 있었다.

▲ 천주교 수원교구가 지난 20일 주교좌 정자동성당에서 국정원 대선 불법개입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국미사를 봉헌하고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시국선언에는 교구장 이용훈 주교와 총대리 이성효 주교, 전 교구장 최덕기 주교를 비롯해 사제 304명과 수도자 323명이 참여했다. ⓒ한수진 기자

8월 20일 수원교구 주교좌 정자동성당에서 봉헌된 국정원 대선 불법개입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국미사에서 이용훈 주교는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께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간절히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강론에서 이성효 주교는 먼저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는 예수의 말을 인용했다. 부정한 세력을 불태워 ‘민주주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다짐으로 들린다. 이 주교는 국정원의 대선 불법 개입을 “과거 정보기관이 저지른 수많은 정치공작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더구나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이 결정되는 가장 중요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 국정원이 개입한 이 사태를 명백히 밝히어 민주주의의 근간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호소했다.

특히 이 주교는 “정의가 없는 국가는 강도떼와 같다”는 <신국론>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한 말을 인용하고, 이어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입법자가 공동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 내지는 야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시민들에게 큰 부담을 주는 경우에 그 법은 정의롭지 못한 부당한 법”이라고 언급한 것을 전했다. 그러니 대통령은 “나는 그 사건과 무관하다” 식으로 말해선 곤란하다는 게 이성효 주교의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이 주교는 국정원의 불법 대선 개입을 “헌정 사상 초유의 사건”이라며 “분명 시계는 2013년 8월 20일을 가리키는데 정치는 과거 70년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었다. 이 위기의식 속에서 “사랑의 한 방법으로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치가 혼탁하다고 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정치는 계속 혼탁하게 될 것”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정원 사태와 관련해 8월 27일부터 시작한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선언’ 서명운동은,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정치적 ‘고수’(苦手)들이 민주주의를 더 이상 유린하지 않도록 돕는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과업이라고 믿는다. 이제는 제대로 된 고수(高手)들이 나설 차례다.

최근 십수 년 동안 한국 교회 안에서 평신도들의 존재감은 별로 없었다. 용산참사와 4대강 사업, 강정 해군기지와 쌍용차, 국정원 사태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미사를 중심으로 사제들의 역할이 대단해 컸다. 특히 두물머리와 대한문 앞에서 사제들이 봉헌해 왔던 매일 미사는 다른 어느 종교단체에서도 행할 수 없는 예언자적 면모를 충분히 보여주었다. 사제들의 용기와 애덕에 감사드리지만, 한편으로는 평신도들의 어정쩡한 위치에 대한 자괴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 지난 27일부터 성염, 공지영, 김항섭 등 51명의 평신도들이 주축이 되어 국정원 관련 평신도 1만인 시국선언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선언’과 관련해 일부에서는 왜 하필 ‘평신도’(平信徒)선언이냐, ‘신자’로 하거나 그냥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럼 사제는 ‘특신도’(特信徒)냐는 말일 텐데, 우리 교회 현실은 여전히 신자들을 ‘평범한 신자’로 남겨두고 있다. 신자들이 나서는 것보다 사제들이 나서주어야 그나마 일이 풀린다는 경험 때문일 것이다. 사제들의 특권의식 때문이라기보다 상징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회 문헌은 한결같이 평신도들을 ‘세상을 성화시키는 전위’(前衞)로 여긴다. 자신의 일상과 직업을 통해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탈바꿈시켜야 할 일차적 담당자가 평신도라는 뜻이다. 가톨릭노동청년회(JOC)를 창립한 조셉 까르댕 추기경도 노동세계를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신도를 선두로’ 세워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를 복음화하려는 예언자적 활동에서 그동안 평신도의 존재감이 적었던 것은 일차적으로 평신도들의 책임이다. 자신의 몫을 남이 대신 찾아주지 않는다. 당사자의 문제는 당사자가 걸머져야 한다는 게 시대정신이다. 그러니 본분대로 이제 평신도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세상사를 다루는 데는 사실상 평신도들이 고수(高手)가 될 수밖에 없다. 영적 지지를 사제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평신도들은 자신의 영성에 기반해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동안 교회가 알아주지 않아 잊혀지고, 교회에 대한 원망도 미련도 애정마저 사라져 버렸다고 한탄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세상사에 대한 관심마저 끊고 말문을 걸어 잠갔던 과거를 털고 그냥 제 일을 하면 족하다. 이제 하느님께서 우리를 불러 세우시고, 사랑으로 다그친다. 평신도는 세상을 위한 교회의 노름마치다. 

 1만인 평신도 시국선언 참여 사이트 www.socialfunch.org/layshout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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