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청춘일기 - 여경]

네팔과 인도 여행계획에 티베트가 더해지면서 다람살라는 나의 인도 여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온 티베트 난민들이 정착해서 살고 있는 다람살라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자리한 곳이며, 티베트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가 머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티베트를 떠나 네팔과 인도를 여행하는 동안, 마음 한 켠에는 티베트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 다람살라에 대한 기대감이 자리했다. 그곳에 가면 다시 그리운 얼굴들을 마주할 수 있을까? 혹시 그곳에 나에게 큰 위로를 준 티베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까? 그런 생각들과 함께 한 달이 지나고, 여행의 끝자락에 다람살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높아지는 고도에 공기가 차가워졌고, 동행자와 침낭을 나누어 덮고 덜컹덜컹 선잠을 자다 깨어나 보니 어느새 산중턱이었고, 거기 다람살라가 비스듬히 자리 잡고 있었다.

ⓒ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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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미터의 산자락에 섬처럼 자리한 마을. 그것은 실제로 인도 안에 존재하는 티베트 사람들을 위한 섬이기도 하다.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산봉우리와 여기저기 걸려있는 룽타가 티베트의 고원을 생각나게 했다.

그러나 반가운 마음에 얼른 짐을 풀고 돌아본 다람살라는 나의 기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골목에서 마주친 티베트 사람들의 얼굴과 발그레한 볼, 티베트 전통의상, 스님들의 자줏빛 승복이 반갑고 애틋했지만, 그것들이 놓여있는 주변 맥락들이 티베트에서와는 너무 달라서 나는 그만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고 말았다. 고원과 평원 속에서 살아가야 할 이들이 치즈케이크를 파는 카페들 사이에서 살고 있는 모습은 마치 서울 한복판에 심어놓은 야자수 같았다. 새로 정착한 곳과 이질적인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난민의 운명이기도 하겠지만, 너무 많은 카페와 레스토랑, 술집 등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번잡했고, 훨씬 더 깊이 자본이 침투해있다는 게 느껴졌다. 거의 대부분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시설이었고, 그에 오히려 티베트 사람들이 주변으로 밀려난 것처럼 보였다.

물론 다람살라의 풍경과 특유의 고요한 분위기는 그동안 어지럽고 시끄러운 인도의 도시들에서 시달렸던 나에게 평온함을 가져다주었다. 티베트의 독립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많이 머물고 있어 티베트 어린이를 위한 학교나 티베트 여성을 위한 일자리 훈련소 등이 운영되고 있었고, 티베트 언어, 문화교육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티베트 사람들은 상인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자신의 호기심과 즐거움을 채우기 위한 방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가 만난 다람살라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전혀 다를 바 없는 소비자-관광객이라는 사실이 불편했다.

관광지에서의 삶을 상상해본 적이 있다. 언제나 잠시 왔다 떠나가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맞이하는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한 번 떠나면 다시 돌아올지 아닐지 모르는 이들을 위해 개편되어가는 삶의 공간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지. 여행자들은 분명히 손님인 것인데, 그들은 오히려 주인인 것처럼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의 삶의 공간에 침투하여 무례함을 저지르고, 어디서든 자신이 살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욕심을 부리곤 한다. 그러다보니 가끔 관광지는 강간당한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관광이라는 이름의 침략에 의해 본래 모습을 잃어가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방문했던 네팔의 포카라, 캄보디아의 씨엠립 등의 관광도시들은 그러했다.

ⓒ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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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살라의 골목들을 걸어 다니다 보면 여기저기 ‘프리 티베트(Free Tibet)’ 같은 구호를 써놓은 벽화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가끔은 저것들이 진정 티베트 사람들의 구호일까, 그 사람들의 목소리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티베트 사람들이 본래 그들이 살던 땅에서, 살던 방식으로 살게 되는 일은 중요하고 그들도 그것을 원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독립을 해야 한다, 독립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 혹은 독립은 불가능하고 자치를 주장해야 한다 등의 주장과 분석만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그게 아니라 그저 티베트 사람들이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여행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질서를 흐트러뜨리거나 그들의 욕망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기 위해서, 그곳에 사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평화로움과 불편한 감정이 뒤섞인 채, 자유와 종교와 민족에 대한 생각들이 뒤엉킨 채 다람살라에서의 시간이 흘러가고 나는 여행의 끝에 다다랐다. 돌아갈 시간이 되어서야 그동안 내가 들쑤시고 다니고, 때로 화내고 짜증내고 오해하고 했던, 내가 지나쳤던 많은 장소들과 존재들에게 미안해진다. 그럼에도 나를 웃음으로 기꺼이 받아주었던 곳들이 고맙고 소중하다.

언제 다시 무례함을 무릅쓰고 여행을 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다음번엔 더 조심스럽고 섬세한 여행자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가만히 순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에 작별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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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 (요안나)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학생. 삶, 사람, 꽃, 벗, 별, 꿈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울림이 예쁜 말들에 이끌려 국어국문학과에 가게 되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고 이를 위해 문학과 예술의 힘을 빌리려 한다. 시와 음악과 그림, 나무, 물이 흐르는 공간,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고향 바다를 닮아 평온하고도 깊고 강인한 사람이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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