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신학 - 김근수]

강정, 대한문, 밀양 등 갈등의 여러 현장에서 가톨릭 사제들이 미사를 드리고 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익숙치 않은 모습일 수 있다. 사실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그리 낯익은 풍경은 아니다. 길거리 미사에 대해 가톨릭 신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사제들 사이에서도 엇갈리는 발언이 드물지 않다. 길거리 미사는 신학적으로 정당한가. 문규현 신부와 김유정 신부는 길거리 미사에 찬성하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우리신학연구소가 발간하는 월간지에서도 길거리 미사에 대한 특집 기사를 다룬 바 있다.

가톨릭교회는 성서에 기초하면서 또한 성사를 중시한다. 성서와 성사를 두 개의 동등한 원천으로 삼는다는 뜻은 아니다. 성서는 당연히 성사보다 앞서고 또 중요하다. 성서에 근거하여 가톨릭교회는 7성사를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 최종 확정하였다. 그전에는 성사의 숫자가 다양하였다. 베드로,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고해성사(고백성사)가 무엇인지 모른다. 고해성사는 그 후에 생겼기 때문이다.

성사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람의 노력이 함께 어우러진 계기이다. 하느님의 은총이 특별히 돋보이고 사람들의 정성이 유난히 드러나는 기회다. ‘성사 아니면 하느님의 은총은 없다’는 해설은 잘못된 것이다. 일상에서 이미 풍부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은총이 신앙공동체와 더불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계기가 곧 성사다. 7성사 중에서도 세례와 미사(성체성사)는 예수의 역사를 특히 기억하고 재현한다.

▲ 지난해 8월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거리 미사에 참여한 사람들 ⓒ문양효숙 기자

성당에서의 미사보다 길거리 미사가
예수의 역사를 더 잘 드러내

미사의 형식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미사를 드리는 사제, 빵과 포도주, 정해진 예식 순서를 지키기 등이 포함된다. 초대교회에서 사제 없이 미사가 진행되던 시절도 있었다. 빵과 포도주를 구할 수 없는 긴급 상황에는 다른 것을 준비하여도 무방할까. 학자들마다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성당 아닌 곳에서, 참석하는 신자가 없어도, 설교가 없어도, 제의가 없어도, 사제 혼자서 미사를 드리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TV로 생중계되는 미사는 신학적으로 정당한가. 교황의 해외 방문 때, 교도소, 병원 등에서 TV로 미사를 시청하는 경우가 있다.

미사의 내용적인 핵심은 무엇인가. 미사는 예수의 역사와 특히 관련되어 있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과 자주 식사하였다. 그들과의 친교의 시간을 우리가 미사에서 기념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처형된 예수의 몸을 미사에서 상징적으로 재현하여 예수의 몸을 나누는 것이다.

미사의 핵심적인 내용을 두 가지로 요약하고 싶다. 첫째,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나눈 예수의 역사를 기념한다. 둘째,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하던 예수의 역사를 재현하고 실현한다. 미사의 충실도는 미사의 내용적 요소들이 얼마나 잘 반영되느냐에 달려 있다. 미사는 예수가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던 피로연, 제자들과 나누던 송별잔치 정도의 것은 아니다. 예수가 생전에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을 나누던 식사가 미사의 원형이다.

길거리 미사를 신학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와 신자들이 있고, 빵과 포도주가 있고, 정해진 미사 예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미사의 형식적 요소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길거리 미사에서 발견할 수 없다. 내용적으로 보아도 길거리 미사는 예수의 역사를 아주 잘 드러내고 있다.

길거리 미사는 성당 안에서 드리는 미사보다도 예수의 역사를 더 잘 드러내고 있다. 세상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과 일치하는 모습에서 길거리 미사는 성당의 미사보다 앞서고 있다. 내용적으로 성당의 미사보다 길거리 미사에서 예수 역사의 모습이 더 잘 돋보이고 있다.

▲ 지난해 11월, 제주 해군기지 공사장 앞 천막에서 생명평화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강한 기자

길거리 미사, 가톨릭교회가 인류에 바치는 선물
수년간 계속된 강정마을 거리 미사, 특별히 평가받아야

길거리 미사가 정서적으로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길거리 미사의 정당성에 아무런 반박 요소가 되지 못한다. TV로 중계되는 미사에는 정서적으로 거부감이 없는가. 와인 한 잔 들면서 소파에 앉아 TV 생중계 미사를 구경할 때 거부감은 과연 없을까.

미사를 반드시 성당 안에서 드려야 할 이유는 없다. 성지순례 도중에 길이나 공터에서 미사를 드리기도 한다. 이스라엘 어느 사막 한복판에서 교수신부와 동료 신학도들과 함께 드리던 미사를 나는 잊을 수 없다. 지금은 당연히 여겨지는 미사 공동집전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전에는 가톨릭교회에서 생각할 수도 없었다. 칼 라너는 미사 공동집전을 강력히 주장하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결국 그의 의견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대한문에서 사제들이 함께 미사 드리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TV로 생중계되는 미사는 그 후에 생긴 일이다.

갈등의 현장에서 드리는 길거리 미사는 남미에서 20세기 후반에 시작되었다. 불의에 저항하는 뜻이 잘 나타나는 길거리 미사를 독재자들이 좋아할 리 없었다. 억압받는 사람들과 운명을 함께하는 길거리 미사는 가톨릭교회가 인류에게 바치는 고귀한 선물이다. 몇 년 동안 매일 계속되는 강정마을 길거리 미사는 그 지속성에서 세계적으로 크게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관행적으로 성당에서 바치는 미사에 대해 이번 기회에 몇 가지 언급하겠다.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을 나누는 예수의 모습이 성당 미사에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는가.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그러한 의미를 잘 새기고 있는가. 불의에 저항하는 예수의 모습이 미사에서―신자들의 기도나 설교에서― 잘 강조되고 있는가.

사제들은 길거리 미사에서 신학적으로 배울 점이 많다. 지금 주저하고 있는 주교들과 사제들이 대한문에 나와서 길거리 미사에 참여하길 바란다.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미사가 최고의 미사다. 바로 예수가 그렇게 살지 않았는가. 예수를 따르지 않고 그 누구를 따르려는가.

미사의 가치가 훼손되는 일부 모습도 언급하고 싶다. 미사 직전이나 도중에 사제가 일부 정치인이나 유지들을 신자들에게 소개하는 모습은 적절한가. 남미에서 군사정권 시절에 고위 장성들에게 성체를 허용하는 모습은 적절한가. 그런 모습에 비하면 한국의 길거리 미사는 신학적으로 너무도 아름답고 당당하다. 길거리 미사가 신학적으로 문제 있는 모습을 나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김근수 (요셉)
연세대 철학과, 독일 마인츠대학교 가톨릭신학과 졸업. 로메로 대주교의 땅 엘살바도르의 UCA 대학교에서 혼 소브리노에게 해방신학을 배웠다. 성서신학의 연구성과와 가난한 사람들의 시각을 바탕으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마르코 복음 해설서 <슬픈 예수 : 세상의 고통을 없애는 저항의 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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