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람 생활글 청라의 할머니 탐구생활
옹달샘 나들이[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 - 33]

지난해 여름엔 장마 끝나고 난 뒤 냇가에 물이 철철 넘쳐서 날마다 빨래하러 다니며 더위를 이겨냈다. 나무그늘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아 놓고 차디찬 냇물에 발 담그고 앉아 빨래를 하고 있으면 폭염주의보니 경보는 그야말로 먼 나라 이야기가 된다. 게다가 그냥 노는 게 아니라 놀이 삼아 빨래까지 해치우니 시원한 맛이 배가 된다.

그런데 올해는 장마 때도 장맛비다운 비가 몇 번 오지 않아서 냇가에 물이 많지 않다. 할 수 없이 빨래는 늘 하던 대로 세탁기 힘을 빌려 한다지만, 온몸을 불사를 것 같은 더위는 어떻게 피하나. 낮잠을 자면서도 땀을 주르륵 흘리는 아이들을 보며 뜨거운 한낮엔 집을 떠나 있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마을 위쪽 산에 있는 옹달샘으로!

옹달샘은 다울이가 붙인 이름인데 마을 저수지 위쪽으로 길게 흘러 내려오는 골짜기 물의 한 지점을 말한다. 골짜기 양 옆으로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데다 모래 언덕과 돌 웅덩이가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놀기에 딱이다.

   
ⓒ정청라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곳의 물을 끌어다 물탱크에 담아 먹고 있으니 말하자면 우리 마을 상수원인 셈인데, 그곳까지 가려면 발품을 팔아야 하는 까닭에 찾는 이가 거의 없다. 마을 상수원 관리자인 우리 신랑이 가장 자주 드나들고,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오는 등산객 한두 명이 쉬었다 가는 정도라고나 할까? 때로 우리 집에 오는 손님 가운데 땀 흘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이가 있다면 비밀스럽게 모셔가기도 한다.

사실 논둑길을 지나 저수지 너머 굽이굽이 산길까지 지나가야 하니 애들 둘을 데리고 집을 나서기가 만만치는 않다. 하지만 요즘처럼 무시무시한 더위가 등을 떠밀 때는 씩씩하게 길을 나서지 않을 수 없다. 논에 갈 때는 “힘들어. 가지 말자”며 떼를 쓰는 다울이도 옹달샘에 갈 때만큼은 투덜대지 않고 잘 걷는다. 가시덤불과 칡덩굴이 못 살게 굴지만 꿋꿋하게 헤치고 나간다. 맑고 시원한 옹달샘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불끈불끈 힘이 솟는 까닭이다.

며칠 전에는 도시락까지 싸들고 온 식구가 옹달샘을 찾았다. 옹달샘에 다다르면 우리 식구는 아무 말 없이 각자 흩어지는데, 먼저 나는 평평한 돌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신발을 벗는다. 그리고는 나뭇잎을 흔들어대며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물속에 발을 담근 채 벌거벗은 다랑이에 젖을 물린다.

다울이는 옷을 벗고 물에 뛰어들어 열심히 나뭇잎 물고기를 잡으러 다닌다. 돌 틈 사이로 숨어 다니는 물고기가 많고 많은데도 불구하고 물고기는 본 척 만 척 잡기 쉬운 나뭇잎 물고기만 잡는다. 한편 책임감 강한 우리 신랑은 상수도 물받이 통부터 살핀다. 물이 흘러들어가는 관 입구에 나뭇잎이나 물고기, 모래 같은 것이 자주 끼기 때문에 청소를 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청소를 마친 신랑이 갑자기 훌러덩 옷을 벗더니 물속으로 쏙 들어가 온몸에 물을 끼얹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벌거벗은 두 남자(다울이와 우리 신랑)가 물싸움을 벌이는데 보기만 해도 온몸이 서늘해졌다. 문득 ‘나도 벗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 마음을 읽은 걸까? 신랑이 내게 말했다.

“목욕할래요? 내가 다랑이 안고 있을게.”
“됐어요. 혹시라도 누가 지나가다 보면 어쩌려고요.”
“괜찮아요. 보면 보는 거지.”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다랑이를 맡기고 나도 옷을 다 벗었다. 그리고는 물속으로 풍덩! 처음엔 차가워서 눈을 찔끔 감았지만 시원함에 익숙해지니 차갑지가 않았다. 사방이 뻥 뚫린 자연탕에 몸을 맡기고 있는 그 기분이라니……! 잡으려고 하면 쏜살같이 달아나는 물고기들도 어느새 가까이 모여들어 내 몸 구석구석을 간질이는데 기분이 참 묘했다. 이게 바로 자연과 하나 되는 물아일체의 느낌이란 말인가. 늘 머릿속으로 짐작만 하고 군침만 흘리는 그 경지에 잠깐이라도 발을 담가보니 자연의 품이 참말로 고맙기만 했다.

두 발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이렇듯 맑고 깨끗한 옹달샘이 있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기에 쫓겨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내가 정말 부자로 살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정청라
귀농 7년차, 결혼 5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icon관련기사 icon설맞이 대청소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