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륜골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 일꾼이 겪은 국가보안법

 

ㄱ. ‘국방부 불온도서’가 태어난 까닭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옆에는 조그마한 인문사회과학 책방이 한 곳 있습니다. 비록 ‘인문사회과학 책’보다는 ‘수험서ㆍ교재ㆍ고시책’ 따위를 훨씬 많이 팔아서 책방 살림을 꾸리고 있으나, 이곳은 버젓한 인문사회과학 책방입니다. 책방 달삯을 넉넉히 내기가 쉽지 않아 땅위에 있던 가게가 땅밑으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땅위에 있든 땅밑에 있든, 인문사회과학 책방 한 곳은 처음 책방 문을 열던 때 마음을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수험서ㆍ교재ㆍ고시책 따위를 찾는 대학생이 훨씬 많을 뿐더러, 팔리는 책도 이러한 책이 더욱 많다고 하지만, 이곳 책시렁은 인문사회과학 책한테 더 넓게 자리를 내어줄 뿐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책을 보기 좋도록 꾸며 놓았습니다.

책방으로 들어가는 계단짬에는 책방 일꾼이 두 달에 걸쳐서 나갔던 촛불모임 때 길에서 주운 스티커를 잔뜩 붙여놓았습니다. 인권평화환경모임에서 보내온 알림쪽도 붙여놓고 ‘ㅈㅈㄷ 폐간’과 같은 동그랗고 작은 스티커도 붙어 있습니다.

얼핏 생각하기로,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도 아닌, ‘21세기 세계화 시대 대한민국’하고는 동떨어진 길을 걷고 있는 인문사회과학 책방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보문고나 영풍문고가 아니기 때문에, 이곳은 인문사회과학 책방의 숨결을 이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오롯이 인문사회과학 책방만으로는 꾸릴 수 없는 아픔이 있어서, 훨씬 땀흘리고 틈을 내어 우리 삶터를 밝히는 일에 마음을 쏟기도 합니다.

“책방을 하려면 좋은 책을 여러 권 읽어야지 책방에 오는 사람들한테 알려줄 텐데, 제대로 못 읽으니까 안타깝지요. 그래도, 요즘은 촛불모임에 좀 덜 나가면서 〈한겨레〉나 〈경향〉에 나오는 책을 알리는 글은 꼼꼼히 읽어 보고 책들도 잘 맞춰 놓으려고 해요. 새책을 맞춰 놓으면, 그거 보고 손님들이 오면 반갑더라고요. 갈수록 자기 몸과 마음을 맑고 밝게 하려는 책을 찾으려는 사람들보다는, 돈을 벌 수 있는 데에 도움이 되는 책들, 수험서나 기술서적이나 학교교재나 이런 거를 찾으니까, 이런 거는 안타깝지요. 그게 제일 마음이 아파요. …… 지구 한쪽에서는 너무 많이 먹어서 병치레를 하고 또 한쪽에서는 못 먹어서 죽어 가고. 그런 일이 갈수록 심해지는데, 그런 일을 자기 문제화하면서 풀어가려면 교양서적도 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알아야 하는데, 지금은 신문을 안 보니까요. 그나마 신문을 보고 그런 세상을 더럽히는 일에 맞서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고맙고, '풀무질'이 그런 일을 해서 내 스스로 뿌듯하기도 하지요.” ..

지난 11월 22일 토요일 낮, '풀무질' 일꾼 가운데 한 사람인 은종복 님을 만났습니다. 어느새 나라 안 인권모임과 생태평화모임과 언론매체에서 ‘사랑받고 이름 알려진’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된 '풀무질' 이름 석 자이고, 풀무질 일꾼 ‘은종복’ 이름 석 자입니다. 이제는 나라 안에서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꾸리는 분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은데다가, '풀무질'처럼 ‘회원 모금 안 받고 스스로 살림을 꾸리는’ 보기드문 인문사회과학 책방이기까지 합니다. 은종복 님은 바쁜 틈틈이 쪽글을 써서 스스로 언론매체에 보내어 당신 뜻을 알리는가 하면, 큰 언론매체와 이름난 출판평론가들이 다루지 않는 ‘묻혀진 좋은 책’을 바지런히 읽고 느낌글을 쓸 뿐 아니라 ‘풀무질 추천도서 100선’까지 손수 만들어서 책방 손님들한테 ‘강권 아닌 강권’, ‘부드러운 추천’을 하고 있습니다.

은종복 님은 지난 여러 달 동안은 쪽글을 못 쓰며 지냈다고 합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과 미친쇠고기 말썽 때문에 날마다 촛불모임에 가느라 몸이 고단하고 마음까지 지쳐서 셈틀 앞에 앉을 수 없었답니다. 은종복 님은 누가 댓거리(인터뷰)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을 밝히시기에, 쪽글 하나 부탁 드리면서 생각을 여쭐 수 있습니다만, 요즈음 형편이 형편이기 때문에, 또 이참에 깊이있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일하시느라 바쁜 틈을 두 시간 남짓 내 보았습니다.

“이번에, 한 두 달쯤 앞서서 국방부에서 군인들 읽지 말라고 하는 불온서적을, 그들이 말하는 불온서적을 서른두 권인가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모르는 뒷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거기 보면 <우리들의 하느님>도 들어가 있고 <김남주 평전>, 뭐 <나쁜 사마리아인들>, 이런 전혀 불온하다고 볼 수 없는 그런 책들이 선정이 됐는데, 사실은 그게 내가 골라준 책들이에요.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면, 그것도 한 3주쯤 앞서서 토요일날, 실천연대 활동가가 수유리 쪽에 모꼬지가 있다고 해서 가는데, 나는 집이 그쪽이니까, 버스 타고 같이 가는데, 뒷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지난해 여름에 한총련 새내기들 모꼬지 가는데 새내기들 읽을 만한 책 알려 달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책방에 있는 책 50권을 보여줬지요. 그분들이 그걸 꼼꼼히 읽어 보더라고요. 그걸 한총련에 줬고 국방부 기관원이 그걸 입수했고, 그래서 <우리들의 하느님>이 들어간 거죠.

원래는 <죽을 먹어도>로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죽을 먹어도>는 '풀무질'에서는 팔지만 다른 책방에서는 안 파니까, 일부러 <우리들의 하느님>으로 했었던 거지요. 참, 그 출판사에서는 아무도 몰라요. 그 책들이 우리 책방에 다 있는데. 전부 다 새로 찍었잖아요. 그날 뒤로. 그만큼 잘 팔렸다는 겁니다. 다른 전자서점에서 특별판매를 해서 팔린 것도 있겠지만, 노동조합이나 학생들 이런 데에서도 한꺼번에 사 갔고, 우리 책방에서도 많이 주문이 들어왔고 성대 학생들도 전시판매를 해서 나도 보내 줬고요. 그런데 그 책들 목록이 나갔을 때 이상했어요. 내가 읽은 책, 내가 좋아하는 책이 여기 많네, 해서. 알고 보니 그런 일이 있었던 거지요.

하기야, 그 사람들이 국방부에서 일하는 그 사람들이, 그 책 읽지 않고 선정했다는 건데, 어찌 보면 권정생이 쓴 <우리들의 하느님>이 그들이 볼 때 불온서적일 수 있어요. 가난한 사람이 잘사는 세상이 되어야 하고,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실렸으니까요. 그들이 보기에 가난한 사람 세상과 남북 하나되는 세상이 와서는 안 되니까요. 그런데 그런 생각은 예수나 석가나 마호메트나 소크라테스나, 깨달은 사람들 다 하는 생각인데, 그게 뭐 폭력혁명을 선동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마음밭에 평화씨앗 뿌리는 글들인데, 그것이 그들이 보기에는 불온서적이라고 한 거죠. 참 웃긴 일이지요.” ..


ㄴ. 국가보안법과 ‘작은 책방’

제가 책방 '풀무질'을 처음 찾아간 때가 언제인지는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만, 얼추 일고여덟 해쯤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동안 한 번 찾아갈 때마다 서너 권씩 읽을 책을 골랐고, 미리 주문해 놓은 책을 장만하기도 했습니다. ‘녹색평론사’ 낱권책은 책방 '풀무질'에 오면 가장 먼저 소식을 들을 수 있는데다가 언제라도 여러 권씩 사들일 수 있습니다. 언론매체의 빛을 받지 못하는 수많은 인문사회과학 책과 생태환경 책은 오히려 책방 '풀무질' 책시렁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소리소문 안 나지만 꿋꿋이 애쓰는 분들 땀어린 책들도 그곳 책시렁에서만큼은 잘 보이는 자리에 얌전히 놓입니다. 몇 해 앞서부터는 어린이책도 퍽 갖추어 놓으시는데, 아무래도 당신 아이를 키우는 가운데 ‘아이한테 어린이책을 읽히려면 당신이 먼저 어린이책을 살펴보는 눈을 길러야 하며, 아이한테 좋은 어린이책을 읽히고 싶다면 당신이 먼저 좋은 어린이책을 알아보는 마음밭을 가꾸어야 한다’는 마음다짐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한 해 두 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사서 읽고 느낌글과 쪽글을 주고받는 동안, 서로서로 조금씩 ‘나은’ 사람으로 발돋움하지 않았나 느낍니다. 이제까지 보지 못한 세상을 보고, 아직 깨닫지 못한 세상을 깨달으며, 미처 느끼지 못한 세상을 느낍니다. 한쪽에서 그저 밀어붙이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뿐사뿐 오가는 이야기이며, 한쪽에서 무턱대고 쏘아대는 지식조각이 아니라 삶으로 녹여낸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그러니까, 이제 곧 12월 1일이지요? 그 1948년 그때, 이승만이가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되찾겠다는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고 죽였던 치안유지법을 고쳐서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을 처음 만든 날이지요. 60년째가 되는 해인데, 그게 처음에는 없앨까 하다가 다시 박정희 때 더 힘이 세게 되고, 다음에 전두환 노태우 여전히, 그리고 김영삼 때 그리고 김대중 때도, 노무현 때 없앨 수 있었는데 여당 측에서 힘있게 못 밀어붙여서 다시 또 살아남았고, 지금은 국가보안법만 문제가 아니라 그 국정원, 국가정보원 법도 고쳐서 사람 하나하나 생각과 표현을 억누르려고 하는 그런 법들을 늘려가고 있잖아요. 안타까운 일이지요. 책방도 국가보안법에 자유롭지 못했지요. 1997년 4월 15일날, 내가 국가보안법 제7조 5항 이적표현물 판매죄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갔잖아요. 가서 2주 있었고 서울구치소에서 2주. 한 달 만에 풀려나기는 했지만, 참 끔찍한.”

책방 '풀무질'은 인문사회과학 책방입니다. 이 나라 인문사회과학 책방치고 ‘안기부 눈총’과 ‘강력계 형사 사찰’과 ‘정보부 요원 조사’를 받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불꽃이 되어 사라진 윤상원 님 일기를 모은 <윤상원 일기>(비매품,2007)를 보면, “1980.5.21. 오전, 심야시위에 이어 계속된 시가지 시위 현장에 ‘민주수호 전남도민 총궐기문’을 제작 살포. '녹두서점'에서 김상집ㆍ박효선ㆍ정상용ㆍ이양현ㆍ정해직ㆍ윤강옥 등과 투쟁상황에 대한 대응책 논의.”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가 흘러가는 한복판에 광주 '녹두서점'은 큰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그러면 오늘날 2008년에 이 나라 몇 군데 안 남은 인문사회과학 책방은 무슨 노릇을 하고 있을까요. 책방 '풀무질' 일꾼이 뽑은 ‘풀무질 추천도서 50선’이 얼결에 ‘국방부 불온도서’ 목록으로 탈바꿈하면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노릇? 정보부 공무원이 책방 '풀무질' 일꾼더러, ‘큰 책방에 있는 일꾼은 돈을 벌려고 하는 거고, 당신은 돈도 안 되는 책방 하고 있으면서 북한을 이롭게 하려고 책방에 오는 학생들한테 사회주의사상을 심어 주려고 그러는 것이다. 빨갱이 사상을 심어 주려고 하는 것이다’ 하는 말처럼 터무니없이 꾸며진 ‘조직사건 주동자’ 노릇을 하는 곳?

“그때도 남영동에서 조사관이 나를 국제사회주의자 조직원으로 엮으려고 했어요. 그게 아닌 거를 그들이 알자, 이제는 이적표현물 소지 판매 죄로 엮으려고 했는데, 내가 물어 봤죠. 여기 있는 <전태일 평전>이나 <말>지, <껍데기를 벗고서> 이런 책들은 시내 큰 책방에서 다 파는 책들인데, 그들은 왜 잡아가두지 않고, 나만 데리고 왔느냐, 했더니, 그 사람이 하는 얘기가, 큰 책방에 있는 일꾼은 돈을 벌려고 하는 거고, 당신은 돈도 안 되는 책방 하고 있으면서 북한을 이롭게 하려고 책방에 오는 학생들한테 사회주의사상을 심어 주려고 그러는 것이다. 빨갱이 사상을 심어 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물어 봤죠. 만약에 당신이 약국을 한다면, 그 약국에 있는 약을 다 먹어 보고 판매를 하느냐, 당신이 만약에 식품점을 한다면 거기 있는 먹을거리 다 먹어 보고 파느냐, 내가 책방을 한다고 여기 있는 책을 다 읽어 보고 판매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그 사람이, 나는 학교 다닐 때 학생운동 했었고 당신은 돈도 안 되는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하니 그렇다고, 그런 걸 들이대더라고요. 국가보안법 7조 3항을 보면,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침해하는 정을 알면서, 그 ‘정’을 보여주더라고요, 한자로 되어 있어요. 뜻 情 잡니다. 그 사람들은 내 마음속을 다 들여다보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 국가보안법이라는 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게 그 말 속에 드러나는 거지요. 그들 말로는 내가 책방에서 파는 책들이, 이 책방에 와서 사 가는 사람들한테 정부를 전복하고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성 책들만 팔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똑같은 책인데 교보문고에서 팔면 ‘돈 벌려고 하는 일’이 되고, '풀무질'과 같은 인문사회과학 책방에서 팔면 ‘빨갱이 사상을 심어 주려고 하는 짓’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똑같은 책인데 대학교수님이 연구하는 데에 쓸 때와 대학생이 자기 마음을 갈고닦으려고 볼 때와는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합니다. ‘빨갱이 사상을 심어 주려고’ 하는 책을 쓴 사람들은, 또 이러한 책을 펴낸 사람들은 왜 국가보안법에 안 걸리는지(?)도 여러모로 궁금합니다.

“그렇게 네 군데에서 왔어요. 김대중 때에도 한 달에 한 번씩 왔어요. 보면 알 수 있거든, 냄새가 나거든요. 걔네들은 몇 명이 와도 한꺼번에 와도 5분 간격으로 따로따로 와요. 인사도, 절도 안 해요. 쭉 책방을 구석구석 다 둘러보지요. 그러면서 그들이 보기에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좀 불온하게 보이는 책들을 눈여겨보고, 그런 책들을 사 가기도 해요. 그리고 나서, 노무현이 되니까 씻은듯이 안 왔어요. 그러다가 이명박이 이 나라를 차지하게 되면서부터 바로 또 기관원들이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일 주일에 서너 명씩 왔어요. 점심시간에. 열두 시 반에서 한 시 사이.”

가만히 보면, 이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영어를 가르칩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은 따로 영어학원을 다닙니다. 어쩌면 어느 집에서는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한테 영어학원을 보낼지 모르고, 영어과외 선생을 붙이는 집도 있을지 모릅니다.

학교 시험성적이 높지 못하면 어김없이 입시학원에 들어가거나 과외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새벽―야간자율학습을 ‘자율 아니게’ 꾸리고, 보충을 받지 않아도 될 아이들한테 ‘억지로’ 보충수업을 받게끔 합니다. 이러한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받지 않으면 ‘대학교 갈 마음이 없다’는 아이로 여기고, 대학교 갈 마음이 없어 보이는 아이는 ‘학교에서 팔짱 껴도 될’ 아이로 삼으며, 학교에서 팔짱 껴도 될 아이는 사회에서도 푸대접이거나 찬밥대접을 하는 아이가 됩니다.

어릴 적부터 모두 똑같은 틀로 길들여집니다. 어려서부터 모두 똑같은 지식을 머리속에 집어넣고 똑같은 틀로 꺼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판이니, 이런 흐름이니, 책방 '풀무질'처럼 ‘제도권 틀에서 벗어나려는 책만 무게를 두어서 소개하고 추천하고 파는 사람’들은 ‘자유와 민주를 어지럽’히고 ‘평화와 통일에 어긋나’는 사람들이라고, 이 나라 권력을 움켜쥔 이들이 한결같이 생각하지 않느냐 싶어요. 

“그게 그들이 말하는 이,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정부를 전복하려고 하는 그런 책들이, 이런 새책방에는 없고 헌책방에 떠도니까 헌책방 사람들까지도 잡아가두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기는 거지. 그런데 그 국가보안법이라는 게, 정말 그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나라를 뒤집어엎으려는 사람들을 잡아가두는 법이냐?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국가보안법은 자기가 차지한 정권을 유지하려고 만든 법이라는 거죠. 정권유지법이에요. 더러운 정권, 돈에 눈먼 정권, 가난하고 굶주리고 아픈 사람들을 더 아프고 힘들게 만드는, 이런 세상을 지키려고 하는 법이라는 거죠. 돈에 눈멀고 자연을 더럽히고 사람마음을 더럽히는 그런 세상을 바꾸려고 맞서는 사람을 가두려고 하는 법이라는 거지요. 얼마 전에도 문근영이라는 배우가 자기가 애써서 벌은 돈을 좋은 일에 썼는데, 그 배우의 외할아버지가 빨치산이었다고 해서 그 배우도 좌익 생각 갖고 있을 거라고 전자누리상에서 매도하고 업신여기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런 게. 그러니까, 그들이 얘기하는 인제, 그 빨갱이나 그 좌익이라는 것은 자기 생각과 다르면 빨갱이고 좌익인 거예요. 우리가 노무현 정권을 좌익정권이라 보지 않거든. 그런데 그들이 보기에는 좌익이고 빨갱이지. 왜냐하면 지금까지 권력을 누려 왔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가 누려온 경상도사람, 그리고 대구 그리고 일본을 좋아했던(친일) 사람들, 미국이 우리를 어지럽히는 일을 좋아하는(친미) 사람들을 노무현이가 문제제기 정도만 했는데도 그 사람들은 그냥 빨갱이인 거죠. 내가 보기에 노무현 정권은 똑같이 김대중이나 지금 이명박이나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을 힘들게 한 정권인데도 그들 눈에는 그렇지 않은 거지요. 국가보안법이라는 거는, 남북이 대치되어 있는 거를 영구히 하려고 하는, 그렇게 남북이 혼란스럽고 평화스럽지 않아야지, 자기들 지금까지 가진 밥벌이를 놓치지 않을 법이라는 거지요.” ..


ㄷ. 책이란, 국가보안이란, 볼온이란, 삶이란

책방 '풀무질' 일꾼은 ‘나라를 빨갱이 사상으로 뒤엎을’ 마음으로 인문사회과학 책을 다루지 않습니다. 수수한 꿈 하나, 제 밥을 제 손으로 일구어 먹는 농사꾼이 되고픈 마음으로, 또 이러한 농사꾼 마음을 간직하면서 도시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려는 마음으로 인문사회과학 책을 다룰 뿐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훌륭하거나 뛰어난 인문사회과학 책이라 해도 ‘누구네처럼’ 수백 권씩 쟁여 놓고 팔지 않습니다. 헐값에 넘기지 않습니다. 쿠폰을 끼워주는 일도 없습니다. 세상을 고르게 껴안는 숱한 좋은 책을 골고루 팔아서 사람들이 골고루 세상을 읽고 저마다 자기 뜻과 꿈을 슬기롭게 펼쳐 나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모든 목숨은 얼키고설킨 가운데 이루어진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지금 이명박 식으로 사람들을 잘 살게 해 주겠다며 자연을 더럽히고, 자기같이 잘 사는 사람을 더 잘 살게 하겠다고 많은 가난한 사람을 더 내치고 했을 때, 사람들이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봐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잘 살려고 하면, 그 잘 살려고 하는 틈바구니 속에서 그 배를 곯고 아프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는 아이들이 갈수록 많아진다는 거지요. 내 목숨 지키자고 힘없는 아이들 목숨 앗아가는 일이 점점 많아지는 게, 그래서 그런 걸 생각해요. 권정생이 생각했듯이 고르게 가난하면서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을, 저는 꿈꾸고 있어요.

그러니까, 자연을 더럽히지 않고 스스로 먹을거리를 텃밭을 일구어서 먹고, 정말 필요한 기계 말고는 만들지 않고 쓰지도 않고 그렇게 살려고 했던 권정생이 살았던 삶, 그게 진정으로 잘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 길이, 많은 사람들이 그 길로 갔을 때, 어른들 욕심으로 아파하고 쓰러지는 아이들이 없어질 테고, 어른들 욕심으로 수많은 미사일을 터뜨려서 이유도 없이 죽어가는 아이들이 없어질 거 같아요. 그래서 나는, 책방이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나누는 그런 자리가 되고 싶은데, 참 힘들어요. 그런 책만 팔게 되면 진작 문 닫았을 거예요. 안타깝게도 수험서 팔고 교재 팔면서 그런 뜻을 이어가려고 하는데, 그러니까 참 살기 힘들지요. …… 그런데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는 것은 더 웃겨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것들이 사회를 위태롭게 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자기 자리를 위태롭게 한다고 생각하는지, 내 이런 생각을 불온한 생각으로 보는 거지요. 그래서 이런 생각 담는 책도 불온하고, 그래서 잡아가두었고 지금이라도 언제든지 잡힐 수 있는 거고.”

그나저나 ‘국가보안’이란 무엇일까요. 한자말을 뜯으면 ‘나라(國家) + 지키기(保安)’인 ‘국가보안’일 텐데, 나라를 지킨다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수 있는 일일까요. 우리가 지켜야 할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우리가 지켜야 할 나라에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요. 우리가 지켜야 할 나라는 어떤 길을 어떻게 걸어가고 있을까요. 

“나는 내 꿈을 물으면, 내 얼굴이 맑고 밝아지고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 피는 날을 맞이하는 건데, 살아갈수록 내 얼굴은 거칠어지고 나도 모르게 돈에 쪼들려서 돈을 밝히게 되고. 그리고, 온 세상 아이들은커녕, 그리고 내 아이, 가까이 있는 ㄱㅇ도 있었지만, 좀더 부드럽게 맞아 주고 같이 웃고 떠드는 자리가 되어야 하는데, 내 마음이 거칠다 보니까 그렇게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참, 내 자신이 어떨 때는 싫고, 또 이렇게라도 생각하는 내 자신이 뿌듯하기도 하고. 아예 그런 거를 못 느끼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내 꿈은 또 하나, 농사꾼이 되는 일인데, 책방 일을 이제 16년을 하고 있는데, 국가보안법이니 또 요즘 새로 만든다는 국가정보원법이니 뭐 그런 가진 자들이 만들려는 법하고 떠나서, 내 먹을거리 스스로 구하는 텃밭을 일구면서 살고 싶은데.”

그러면 ‘불온’이란 또 무엇일까요. 한자말을 뜯으면 ‘온당하지 않음(不穩)’인데, ‘온당(穩當)’이란 “판단이나 행동 따위가 사리에 어긋나지 아니하고 알맞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국방부 불온도서’란, “국방부가 보기에 생각이나 움직임이 올바르지 않은 책”이라는 소리인데, ‘올바르지 않음’이란 또 어떤 모습일지요. 국방부한테 올바르지 않은 모습이란, 이 나라 권력자한테 올바르지 않은 모습이란, 이 나라 경찰들한테 올바르지 않은 모습이란, 이 나라 기득권한테 올바르지 않은 모습이란 무엇일는지요. 

“이 책방도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열었는데, 내 마음밭과 다르게 수험서와 교재로 책방을 지키니까 마음이 아픈 거지요. 그런데 그나마 얼마 안 파는 인문사회과학 책들을 이 나라에서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잣대로 그것마저 팔지 못하게 하려고 하고, 나를 잡아가두려고 애쓰고, 그러니까 참 슬픈 거지요. 그러니까 오히려 더 잘 지켜야겠다고, 책방이 더 소중하거나, 나라에 유용을 주는구나, 잘못된 것을 뒤집을 힘이 여기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런 책을 더 열심히 팔아야지, 하면서 이번에 국방부 불온서적을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니까, 그런 일들이 '풀무질'을 지키게 하는 다짐이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지요. 그런 힘들이, 내가 살면서 나름대로 지켰던 다짐들, 지금까지 깨지 않았던 복권을 사지 않고 노름을 하지 않고, 그리고 한동안은 또 고기를 먹지 않기도 했었고, 이제는 또 술을 안 먹으려고 했었고. …… 많이 배운 사람들이 그걸 슬기롭게 써서 잘 더럽히지 않고 목숨 있는 것들을 제 목숨대로 살도록 애쓰는 데에 쓰지를 않고, 자기 목숨 지키고 자기 이름 높이고 자기 힘 키우려고 하고 자기가 아는 사람들만 배부르게 하는 일에 나서니까, 힘없고 못 배운 사람들은 갈수록 굶주리고, 목숨까지 잃게 되는 일이 더 심해지고 있잖아요. 나는 내 아이가 좀 안 배웠으면 좋겠어요. 마음껏 뛰놀고 마음껏 자연과 함께 숨쉬면서 마음껏 기뻐하고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정말 아이가 배우고 싶을 때, 그때는 스스로의 힘으로 배웠으면 좋겠어요.”


ㄹ. 국가보안법은 우리 마음속에 먼저 있다

초등학교로 치면 5학년인 아이를 키우는 '풀무질' 일꾼 은종복 님은, 당신 아이가 더 배우지 않기를 바랍니다. 학교라는 곳, 그리고 대안학교라는 곳에서 아이들한테 가르쳐 주는 온갖 지식쪼가리가 아이한테 삶으로 녹아나는 슬기로 거듭나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땀방울이 배이지 못한 지식부스러기일 뿐이며, 아이 스스로 자기 꿈을 찾고 캐고 부대끼고 이루는 데에 걸림돌이 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게, 가진 자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옥죄려고 만들었을 뿐더러, 그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삶 속에 녹록히 스며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 권력을 지키려고 사람들이 법을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는 자기가 갖고 있는 욕망이라는 또다른 권력을 지키려고 항상 품고 있다는 거지요. 갈수록 아이들을 옥죄는 교육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맞서서 나서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기에서 끼어들어 가지고 내 아이도 어떻게 하면 뭐 외국어를 잘하는 학교 그런 사립학교 같은 교육 틀에서 뭔가 해 보려고 애쓰잖아요.” ..

권력자든 기득권자이든 경찰이든 정보원이든, 이들이 아무리 국가보안법이나 또다른 법으로 우리를 옥죄려고 나선다고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과 몸에 국가보안법을 키우지 않는다면 아무런 말썽이 없고 걱정이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더 많은 돈과 더 큰 집과 더 빠른 자가용이 아니라, 더 넉넉히 이웃과 나누는 삶이나 더 푸지게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삶이나 더 애틋하게 이웃하고 기쁨아픔 함께하는 삶으로 나아간다면, 권력자가 국가보안법을 수십 수백 가지를 만들어 놓고 있어도 마음쓸 일이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법 없이 살 수 있다면, 우리 스스로 돈 없이 살 수 있다면, 우리 스스로 대학교 졸업장 없이 살 수 있다면, 우리 스스로 자동차 안 굴리고 살 수 있다면.

“지금 내가 성균관대 앞에서 책방을 16년 동안 하고 있는데, 그 동안 성대 학생 지켜보면 참 마음이 아파요. 대학이라는 곳이 스스로 몸과 마음을 밝게 닦는 곳이 아니라, 자기가 바라지도 않은 일터에 단지 돈을 벌려고 거쳐 가는 하나의 직업소개소가 되고 있어요. 어느 과하고든 상관없이 돈만 많이 주면 그곳으로 간다고, 스스로 가지고 있었던 슬기나 자기가 펼 수 있었던 일 이런 것들이 대학에 옴으로 해서 다 산산이 없어지고, 부서지는 거지요. 그런 대학은 없는 게 나아요. 그런 교육은 없애야죠. 그런데 그런 게 이제는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 유치원까지 내려왔어요. 아니, 태어나면서 처음 가진 슬기와 기쁨을 죽이는 배움터를 만들고 있다는 거지요. 그게 바로 이명박 식 일등주의라는 거죠.

어떤 사람은 공부를 잘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공차기를 잘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집을 잘 만들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말을 잘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아무 일도 안 하면서 다른 사람 얘기를 잘 들어줄 수 있고, 다 달라요. 그런데 왜 모든 아이들을 사각에 가두어 공부만 하게 하나, 수학공식과 영어단어만 외우게 하나, 그건 바로 지금 가지고 있는 사람들, 바로 국가보안법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의 노예로 만드는 거지요. 노예교육자로 키우는 거지요. 그걸 모르는 겁니다. 돈 몇 푼 받고 그들한테 뒤치닥거리 하는 거잖아요 . 그리고 우리 나라는, 우리보다 더 큰 나라 미국에 뒤치닥거리를 하고요. 그러면서 남북에서 올곧게 살려는 사람은 더 아프고. 문제는 국가보안법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 속에 묻어 있는 더러운 노예근성을 버리지 않고는 국가보안법을 깰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드네요.” 

책방 '풀무질' 일꾼은 <우리들의 하느님>이나 <죽을 먹어도>와 같은 권정생 님 책 이야기를 자주 꺼냅니다. 학생과 손님 모두한테 권정생 님 이 두 가지 책을 선뜻 소개하고 짤막하게 쓴 느낌글도 나누어 줍니다. 세상이 보기에는 시골구석에서 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쭈그렁 늙은뱅이일 뿐인 권정생 님이지만, 은종복 님이 보기에는 그 시골구석 작은 방자락에서도 세상을 꿰뚫을 뿐 아니라,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느끼면서 기꺼이 피를 쏟아 글을 써서 우리한테 나누어 주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배움은 아이가 어떤 일을 하게끔 이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노동자가 되건 농사꾼이 되건 환경미화원이 되건 신문배달원이 되건 노숙자가 되건, 어떤 일을 하든 즐겁고 기쁘게 하면, 스스로 생각하기에 뜻이 있는 일이다, 그게 살아가는 데에 기쁨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일이 돈이 안 되고 힘이 안 되고 하니까 홀대하고 업신여기고 하는데, 그거는 그 일을 하는 사람들 뜻이 곧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런 일을 홀대하는 세상을 뒤집어엎어야 하는 거지요. 그래서 권정생처럼 낮지만 마음 따뜻하게 사는 사람들이 우러러볼 수 있는 세상이 와야 되는 거지요. 그것은 바로 정권을 유지하는 국가보안법도 함께해야 되지만, 진짜 마음밭에 있는 자기 자신을 돈에 눈멀고 이름을 높이려 하고, 힘을 가지려고 하는 그런 마음, 그런 마음속에 있는 국가보안법도 함께 없애야 하는 거지요

…… 그런데 권력자들이 자기를 지키려고 국가보안법을 만들었지만, 그 법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고 목숨을 잃게 되었지만, 그 아픔이 헛되지 않은 거지요. 그 뿌리가 민주주의를 꽃피우려고 애썼고, 더 낮지만 올곧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살아날 힘이 되었던 거지요. 마치, 우리 책방 이름이 ‘풀무질’인데, 대장간에서 망치가 담금질을 세게 하면 할수록, 바람을 넣는 풀무가 세면 셀수록 망치가 담금질이 되듯이, 국가보안법이 올곧은 사람을 치면 칠수록 이 사람들은 더 세지면서, 바람에 눕는 풀처럼 다시 일어서는 거지요. 그래서 나는 그 아픔과 기쁨을 느끼면서 자라나는 거고, 내 아이는 그렇게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배우겠지요.”

권정생 님은 ‘자가용을 버려야 이라크 파병을 안 하게 된다’고 낮은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은종복 님은 ‘돈 되는 일을 버려야 국가보안법을 쓰레기로 삼아 내다 버릴 수 있다’고 낮은 목소리로 외칩니다. 두 목소리는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두 목소리가 바라보는 자리는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국가보안법을, 먼저 우리 마음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또 우리 마음속에 둥지를 틀고 있는 이라크 파병을 내다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ㅁ. 참삶을 찾아야 국가보안법 허울을 벗을 수 있다

독재자 박정희 씨가 숨을 거두었다고 해서 독재정치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독재정권이 물러났다고 해서 독재정치가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우리 사회가 훨씬 나빠지지 않습니다. 이명박 씨 아닌 다른 이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우리 사회 구석구석 스며 있는 국가보안법 도깨비는 걷히지 않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이 법대로 걷어차야겠습니다만, 우리 스스로 참삶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 동안에는 법조항으로 국가보안법을 씻어냈다고 해도 우리 세상은 그리 달라지지 않을 터이기에 그렇습니다.

벌써 예순 해씩이나 우리 삶터를 옥죄고 있는 국가보안법 때문에 하루도 마음 느긋할 날이 없는 '풀무질' 일꾼 은종복 님은, 하루도 마음 느긋할 날이 없음에도 웃는 얼굴로 마지막 한 마디를 더 들려줍니다. 

“우리는 아이를 아이가 자라면서 바로 어른들이 배운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어른들이 자라면서 아이들은 또 배우는 거지요. 그래서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는 것은 나 같은 이런 작은 인문사회과학 책방 하는 사람한테는 칼날이 되지만, 이런 칼날은 아이가 아빠가 이렇게 살며 올곧게 지켜려고 하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아이는 자기 마음밭에 또다른 생명의 칼이 될 수 있는 거지요

…… 책방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책방 일꾼이 된 거는 참 잘한 것이고 뜻깊은 일이라고 느껴요. 책방이 더러운 정권에 국가보안법에 의해서 흔들리고 내가 감옥에 갇히는 일까지 생겼지만, 그럴수록 더 사랑스러운 거예요. 일반 책방에서는 그냥 돈을 주면 아무 책이나 사고파는 소비자와 판매자의 역할밖에 못하지만, 내가 꾸리는 이런 작은 책방은 책 사러 온 사람들과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쓴 글도 나누어 주면서, 또 그런 책을 팔면서 세상을 맑고 밝게 하고, 스스로 마음밭을 평화롭게 하는 씨앗을 나누니까, 참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명륜골에 사는 사람들은 이 '풀무질'이 있다는 것만 해도 참 기쁨이고 자랑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성균관대학교에서 나한테 상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정작 상을 주면 안 받겠지요. 하하. 그런데 상을 줄 리도 없을 테고. 하지만 나는 늘 상을 받으면서 살아요. 이 책방을 지킬려고 하는 사람들, 시집을 한 권 사고 인문학 책을 한 권 사고 하면서 멀리서 이 책방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기쁘고, 나는 이 기쁨을 모아서 적은 돈이지만 내 뜻과 함께하는 생태인권평화 나눔에 모임에 그 뜻을 이어가고 있고, 내 목숨도 부지하고 있고요.”

최종규/ 틈틈이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헌책방 발자취를 글과 사진으로 남기고 있으며, 그동안 <모든 책은 헌책이다>와 <헌책방에서 보낸 1년>을 펴냈고, 지금은 <우리 말 바로쓰기 사전> 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터넷방 '함께살기 (hbooks.cyworld.com)'를 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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