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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를 위해, 삶을 걸 가치가 있는 싸움이에요”[인터뷰] 강동균 강정마을회장

강동균 마을회장을 만나기 위해 마을회관을 찾았을 때, 그는 마을 방송을 하고 있었다.

“지난 7월 29일부터 일주일간 진행된 2013년 강정생명평화대행진과 인간 띠 잇기 행사를 주민 여러분의 성원 속에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한 주민 여러분을 모시고 마당극 한마당을 펼치고자 하오니, 바쁘시더라도 오늘 저녁 7시 30분 의례회관에 오셔서 다 함께 즐기시고 다시 한 번 주민 화합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해군기지 결사반대!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주민 여러분 힘내십시오.”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 그는 몇 번씩이나 물을 들이켰다. 내일모레 환갑인 그는 30도를 훌쩍 넘는 폭염 속에서 일주일간 매일 20㎞를 걸은 터였다. 그것도 행진단 맨 앞에서 커다란 깃발까지 들고. 지치는 게 당연했다.

   
▲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이 인간띠 잇기 행사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마을을 무참히 부숴버린 국책사업,
갈라진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힘드시죠?”
“이 정도야 뭐, 하루 자고 나면 괜찮습니다. 내일부터 또 시작이죠.”

무더위 속 일주일 행진이 거뜬하다는 강동균 회장. 그도 그럴 것이, 2007년 주민투표에서 마을회장으로 선출된 후 지금까지 그는 150여 회의 여의도 국회 방문으로 시작해 삭발, 단식 농성, 한겨울 노숙 투쟁에 이르기까지 안 해본 것이 없다. 해군기지 반대 싸움을 하면서 그는 생업이던 7천 평 가량의 감귤 농사를 포기했다. 겨우 남긴 천 평의 금귤 농사도 모두 아내의 몫이다.

강정마을은 가구 수 300에 주민 2천 명이 사는 비교적 큰 마을이다. 읍면 소재지를 빼면 제주에서 열손가락 안에 든다고 했다. 마을에는 여전히 집집마다 노란색 해군기지 반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간간히 태극기를 걸어놓은 집도 있다. 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이들이다.

비율로 따지면 찬성하는 이들은 20%. 갈라진 마을은 아직 상처를 회복하지 못했다. 강동균 회장은 “엊그제까지 함께 코가 비뚤어지게 술 마시던 친구였는데, 해군기지 문제로 이제는 100미터 앞에서 걸어오다 저를 보면 고개를 돌리거나 다른 길로 가버린다”고 말했다.

제주도 마을은 대부분 집성촌이다. 사촌 뿐 아니라 12촌까지 함께 모여 벌초를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도 보통이다. 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도 돈독하다. 밤 12시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 상 새벽에 이웃들에게 떡을 돌려도 누구 하나 짜증내지 않고 잠을 깨 그 떡을 나눠먹는다.

강정마을도 마찬가지였다. 주민들에게는 감귤 농사를 짓고 물질(주로 해녀들이 바닷속에 들어가서 해산물을 따는 일)과 낚시를 하며 친척끼리 이웃끼리 오순도순 지내는 게 삶의 전부였다. 그랬던 마을에 어느날 갑자기 해군기지가 들어선다고 했다. 주민들 모르는 새에 회의가 끝나 있었다. 마을에는 갈등과 분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화순, 위미에서 해녀들의 반대에 부딪혔던 해군 측은 어떻게 해야 강정에 들어갈 것인지 노하우가 생긴 거예요. 먼저 강정 해녀들을 공략했죠.”

해녀들은 보상을 받고 윤태정 전 마을회장과 함께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했다. 강 회장은 “해녀 분들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물질이 아주 고되거든요. 자식들 교육도 더 시키고 집이라도 한 채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이런 마음을 군 당국이 교묘하게 이용한 거죠. 해녀들도 피해자예요. 2001년에 강정천에 골프장 들어온다고 했을 때 그분들이 반대해서 못했거든요. 바다가 오염되니까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심한 해군기지가 들어오는데 해녀들이 그걸 찬성한 거예요. 말이 안 되잖아요.”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한 후, 해녀들은 마을에서 살아가기가 어려워졌다. “당신들 때문에”라는 마을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해군이 케이슨을 수중 분해하며 생긴 시멘트로 해산물이 죽어 수확물이 줄었기 때문이다. 공사가 진척될수록, 해녀들의 작업장은 줄어들고 수확물도 점점 사라질 것이다.

   
▲ 강동균 마을회장은 제주 해군기지 반대에 대해 “후손을 위해, 삶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싸움”이라고 말한다. ⓒ문양효숙 기자

국정원, 해군, 경찰, 행정당국이 한통속으로
마을 갈등 일으킬 방법 의논해

해군 측은 해녀들뿐 아니라 마을 주민들을 개별 접촉하고 설득했다. 2008년 국정원, 해군, 검찰, 경찰이 모두 모인 관계기관 대책회의에서 당시 제주도 환경부지사 유덕상은 “분열은 좋은 상황이다. 공세적 법집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 측 담당자는 “도에서 조그만 것이라도 공세적으로 고소 · 고발해야 경찰도 조치가 가능하다. 인신구속이 있어야 (반대) 수위가 낮아진다”고 말했고, 국정원 측 담당자는 “외부세력에 대해 찬성 주민측이 문제제기하면 국정원과 경찰이 측면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기관 회의는 유실된 회의록이 기자의 손에 들어오면서 언론에 공개됐다.

강동균 회장은 “사실 평화는 7년간 싸우면서 배운 것이고, 근본적으로 주민들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국책사업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이로 인한 마을 공동체의 파괴에 분노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강정마을은 오랜 시간 강정마을만의  방식으로 살아왔다. 주민회의 자치규약도 매우 튼튼하고, 지금은 비록 전부 와해됐지만 동창회, 갑장회(동갑 모임), 여행 모임 등의 친목단체가 200개나 됐다. 어떤 이는 그것이 “기댈 곳이라고는 마을 이웃밖에 없는 섬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라고도 말했다.

강동균 회장 스스로 “폐쇄적인 마을”이라고 말할 만큼 외지인이 뿌리내리고 산다는 건 쉽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 곳에 2~3년 전부터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킴이’들은 우연히 강정마을에 와서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활동을 함께 하다가 ‘주민’이 됐다. 처음엔 낯설어하고 거부감을 표현하던 주민들도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그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강동균 회장은 해군기지 반대 싸움이 시작된 후 5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거의 없다. 뒷집에 사는 그의 노모는 새벽 한두 시경까지 아들이 집에 들어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잠자리에 든다. 누군들 그런 삶이 거뜬할까. 그렇지만 그는 “정말 힘들지 않았다”고 말한다.

“7년 동안 싸우면서 저는 정말 안 힘들었어요. 농사를 못 짓게 돼도 괜찮았어요. 왜냐면 이게 맞거든.”

신념이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지치지 않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신념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힘 덕분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는 주민들이 지지해주고 가족들도 응원해주니까요. 가끔 많이 힘들 땐 주변 사람들이랑 술도 한 잔 하고. 함께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위로 받지요. 노래랑 춤도 힘이 돼요. ‘강정마약댄스’ 같은 춤도 추고 나면 신나고. 너무 분노하고 악에 바치면 몇 년 못 가요. 오래해야 하는 싸움인데.”

   
▲ 강정생명평화대행진에서 강동균 마을회장이 올리버 스톤 감독과 함께 걷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지금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후세가 똑같은 고통 당할 것”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그는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하면서 더 넓은 마을을 만났다. 바로 무더운 여름 강정생명평화대행진에 참여하는 사람, 만 원 이만 원 후원금을 보내거나 집에서 기른 오이와 참외를 보내는 사람, “힘내세요” 하고 응원하는 목소리들이다. 그는 마을 경계 너머의 강정 주민들을 만났다. 희망은, 여전히 사람한테 있었다.

스스로 “체력이 좋아 이 정도는 괜찮다”고 말하는 그에게 “그 좋아하신다는 술을 왜 49일째 안 드시는 거냐?”고 물었다.

“스트레스 받아서 이빨이 다 나갔어요. 이빨 치료하는 중에 술은 완전 쥐약이거든요.”

건강한 그의 이빨을 망가뜨린 7년의 싸움, 그에게 조심스럽게 강정마을의 미래를 물었다.

“제일 좋은 건 해군기지 건설이 백지화되고 이 마을이 역사적으로 남는 거죠. 평화를 지켰던 사람들의 공간으로 기억되고, 사람이 살아가는 마을이 될 수 있기를 바라요. 하지만 만에 하나 결국 해군기지가 생긴다 해도 이 싸움은 계속 갈 거예요. 다음 세대를 위해서요. 대한민국은 완전히 권력과 자본을 위한 국가잖아요. 지금 이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아들딸들이 나 같은 괴로움을 당할 거예요. 꼭 이기고 싶다기보다 후손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갔으면 해서요. 이건 진짜 후손들을 위해 삶을 걸고 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물이 많아 물 강(江), 물가 정(汀)자를 써 ‘강정’이라 불리는 마을, 그 중에서도 빼어난 아름다움 때문에 ‘제일 강정’이라 불리는 마을. 450년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이 마을 하나보다 군사기지가 더 중요한가 묻게 된다. 결국 군사기지도 사람이 사는 마을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강동균 마을회장은 “깨지지 않는 계란 하나가 되겠다”고 말했다.

“사실 정부는 거대한 바위고 우리는 작은 계란 하나잖아요. 하지만 절대 깨지지 않는 계란이 되고 싶어요.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아요.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의, 그리고 함께하는 주민들의 소명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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