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신학]

 

연말이 다가오긴 왔나보다. 외출할 때면 전철을 타곤 하는 나는 12월 들어 전철을 갈아타거나 역을 빠져나가려고 구세군을 지나치면서, 딸랑거리는 종소리에 어딘가에서 춥고 배고파 웅크리고 있을 가난한 이웃을 생각하게 된다. 작년 겨울 주말이면 어김없이 중풍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신 어머니를 찾아가던 병원의 전철역을 떠올리며, 길고도 힘들게만 느껴졌던 세월을 되새기기도 한다. 허겁지겁 내 앞가림하기에도 정신없는 마음을 그 쨍하는 종소리가 가라앉혀 주면서, 더 어려운 세상에 붙들려 있는 이들이 있음을 속수무책 기억하게 된다.

이렇게 오늘날 가난한 이들에게 작은 마음이라도 나누게 하는 것이 구세군의 종소리라면 흑사병과 십자군 전쟁,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이 온통 유럽을 휩쓸고 있던 12-14세기에 가난한 이들에게 스스럼없는 사랑의 열정으로 다가간 이들은 베긴회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자기 확신과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 노력하면서, 당시 부와 권력다툼에 치달리던 교황권 및 제도교회에서 멀찍이 물러나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단순했던 삶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였다.

결혼 아니면 엄격한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 말고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던 교회 가르침에서 벗어나, 어떤 주보성인도 인정하지 않고 어떤 성인의 규정도 따르지 않은 채, 내적인 지혜에 의존하고 성령과 직접 통교하면서 여성 평신도 공동체의 삶을 펼쳐나갔다.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상처 난 몸을 깊이 관상했으며, 그리스도와 깊은 일치를 추구하면서도 은둔생활보다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보살피는 데 헌신했다.

14세기 세워진 암스테르담의 베긴회 건물
베긴회 여성 신비가 중에서 마거릿 포레(Marguerite Porete)는 관상과 활동 사이의 모든 장벽을 신비적 기도 체험을 통해 제거하고, 사랑을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으로 삼아 인간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는 길을 저술하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마거릿은 이단자로 낙인찍혀 종교재판에 소환되었으며 18개월이나 감옥에 갇혀 지내다가 결국은 유죄판결을 받고 파리의 그레베 광장에서 화형을 당했다. 이런 불행한 최후를 맞았지만, 마거릿 포레가 자신과 하느님의 일치를 아름다운 언어로 노래한 다음 구절은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그녀는 바다에서 흘러나가는 물과 같이 되어 아이네, 세느강처럼 자신의 이름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이 물이나 강물이 다시 바다로 돌아오면 그동안 자신의 임무를 이루느라 많은 나라에 흘러들어 갔을 때 자신이 취했던 방향이나 이름 모두를 잊게 된다. 이제 이들은 바다에서 쉼을 얻고, 그리하여 모든 수고에서 벗어난다.

이처럼 사랑을 통한 하느님과의 합일을 밝힌 마거릿과 동시대를 살면서 그녀와 깊은 영성을 나눈 독일 신비사상의 대가 마이스터 에카르트도 이단으로 몰려 반박문을 들고 교황을 찾아가는 길에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이것은 그가 속한 도미니코회의 선배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한동안 이단 시비에 몰렸으면서도, 결국은 이성의 신앙 추구를 옹호한 교회에서 성인으로 추앙받은 것과 대조된다. 교회는 사랑의 교회보다는 이성의 교회를 선택한 것일까? 마거릿은 사랑의 교회를 더 으뜸인 聖교회로 보고, 이성의 교회는 그보다 덜 중요한 교회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유정원/ 가톨릭여성신학회 회원,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신학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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