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강성준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

예수는 제자들과 앉은 식탁에 죄인들을 불러 함께 밥을 나눠먹었다. 모두에게 손가락질 받는 사람도 그 앞에서는 똑같은 인간으로 대우받았다. 죄인들과 어울린다고 예수를 비난했던 이들도 언젠가 예수의 뜻을 깨달았을 때, 혹은 그 자신도 죄를 지었을 때 마음 한편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을 거다. 저런 사람도 인간으로 대접을 받았으니 나도 인간으로 대접받을 수 있겠구나.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의 인권이 보장받을 수 있을 때, 나머지 사람들의 인권도 보장받을 수 있다.

강성준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는 “감옥의 현실은 그 사회의 인권 지표가 된다”면서 “범죄가 일어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피의자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일수록 피해자의 인권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천주교인권위는 감옥에 수용된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인권 가이드라인이 될 <수용자를 위한 감옥법령집>을 출간했다.

▲ 강성준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 ⓒ한수진 기자

책은 수용자들의 처우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 훈령, 예규 등 46건의 법령을 담았다. 또한 법령을 바탕으로 감옥 수용자가 실제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는 방법과 감옥 관련 인권사회단체와 변호사 연락처 등 실용적인 정보도 상세히 다뤘다. 백과사전 크기의 묵직함은 차단된 공간에 갇힌 감옥 수용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내용을 충실히 담으려한 노력의 무게다.

천주교인권위 사무실로 감옥 수용자들이 편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중 다수는 자신이 겪는 감옥 내 처우 문제와 관련한 법령을 복사해 보내달라는 거였다. 감옥 밖에서는 인터넷으로 쉽게 법령 정보를 확인할 수 있지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수용자들은 외부의 도움 없이는 공개된 정보를 확인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편지가 올 때마다 법령을 찾아 보내는 것보다 한 번 법령집을 만들면 수용자들이 법령에 접근하기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 <수용자를 위한 감옥법령집>, 천주교인권위원회 지음, 경계, 2013
강성준 활동가는 ‘한 번’이라고 표현했지만, 법령집을 세상에 내놓는 일은 쉽지 않았다. 팔아서 돈이 될 수 있는 책이 아니기에 재정 마련도 걱정이었다. 다행히 ‘천주교인권위원회 박데레사 · 김베드로 기금’을 사용하기로 결정돼 출판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다. 천주교인권위 사무국 활동가들과 자원 활동가들의 손을 거친 원고는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감수를 거쳐 1년 만에 책의 모습을 갖췄다.

만드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 비교적 수월할 소책자 대신 많은 공을 들여 법령집을 만든 이유에 대해 그는 “전체 법령을 모아 수용자들이 접할 수 있게 만들면, 지금은 인권문제라고 여겨지지 않는 부분도 점차 인권문제의 범주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이유 하나는, “아직 ‘운동’이라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감옥인권운동’이 지속되고 현장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려면 감옥 밖의 인권단체들보다 당사자인 수용자들이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 채식주의자 수용자의 진정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교도소에서 채식식단을 제공하도록 권고한 일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 수용자의 문제제기가 없었다면 밖에서는 인식하기 어려운 문제다.

“감옥 문제를 가장 잘 아는 건 감옥에 사는 수용자들이니까 그들이 법령을 갖고 있어야죠. 수용자들이 자신의 처우에 대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데 이 책이 활용되길 바랍니다. 나중에 좀 더 가벼운 해설서를 만든다면, 그때의 저자는 수용자들이 되겠죠.”

수용자들은 ‘죄인’이라는 이유로 기본적인 인권마저 침해당하는 상황을 겪기 일쑤다. 특히 의료문제의 경우, 감옥 안에서 작은 병을 앓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큰 병우로 악화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한다.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거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은 수용자에게 보복의 수단으로 독방에 가두는 등 징벌을 가하는 일도 심심찮게 증언되고 있다. 그렇다면 법무부나 현장의 교도관들은 이 책의 출판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을까. 강성준 활동가는 “절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법령은 법무부 산하 시설이 꼭 지켜야 하는, 스스로 만든 규칙입니다. 규칙의 당사자인 교도관과 수용자들이 모두 다 알아야 규칙으로서 의미가 있어요. 오히려 수용자들이 수용규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도관들이 업무와 정신적인 피로를 덜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한국 사회의 인권지표로서 감옥의 인권 상황이 향상되려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강성준 활동가는 수용자의 선거권 박탈, 서신검열, 불공정한 징벌 집행, 정보 접근 차단 등을 해결해야할 과제로 꼽았다. <수용자를 위한 감옥법령집>이 해야 할 역할이기도 하다.

책은 지난주부터 일반 서점과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강성준 활동가는 “교도소 도서관에서 이 책을 구입한다면 수용자들이 각자 비용을 들이지 않고서도 편하게 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법무부에서 그런 결정을 쉽게 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전국의 교도소에 수감된 양심수 26명에게 이 책을 선물로 보냈다. 주위에 수용자가 있다면, 혹은 가장 보잘것없는 누군가의 인권과 나의 인권이 걱정된다면, 이번엔 당신 차례다. 교도소의 도서관은 기꺼이 이 착한 선물을 환영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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