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7년째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 2013년 여름의 이야기

“해군기지 들어오면, 인구도 늘고 제주도 경제도 좋아지는 거 아닙니까. 공사도 많이 진척됐고. 이제 다 끝난 이야긴데 왜들 저러는지 모르겠네.”

제주공항에서 강정마을로 들어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왜들 저러는지 모르겠네’에는 ‘지겨우니 그만 떠들어라’라는 비난과 ‘억울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는 체념이 섞여 있었다. 강정마을과 그 곳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말이었다.

해군기지사업단은 7월 말까지 이룬 해상공사 공정률이 1공구 44.85%, 2공구 35.21%, 평균 40.9%라고 밝혔다. 폭파된 구럼비 바위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고, 높은 펜스 안에서는 2015년 완공을 목표로 24시간 쉼 없이 공사가 계속된다. 해군기지건설을 반대하며 7년을 싸워온 이들의 외침은 이제 아무 의미 없는 버티기일까.

▲ 철조망 너머로 케이슨(방파제 축조용 구조물)과 케이슨을 싣고 오는 반잠수식 바지선인 플로팅도크가 보인다 ⓒ문양효숙 기자

해군기지는 들어오고야 말 것, 죽어서 갈 곳이 사라졌다.

공사가 강행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주민들의 생각은 다양하다. 먼저 “해군기지는 어떻게든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주민들이 있다. 지킴이들이 식사를 하는 삼거리 식당에서 만난 한 주민은 “해군기지가 백지화 된다면야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렇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고향 떠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떠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군기지가 건설되기 전, 자식들에게 “죽으면 화장해서 구럼비 바위에 뿌려 달라”했다는 그는 “이제 죽은 뒤 갈 곳이 없어졌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2011년 7월부터 강정마을 주민으로 살아온 김성환 신부(예수회)는 “작년 대통령 선거 결과와 올해 해군기지 예산이 통과되면서 주민들의 기운이 꺾인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기지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안 그래도 업무방해, 집시법위반,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인한 고소고발과 벌금폭탄에 시달려 온 터였다. 게다가 마음으로는 반대해도 드러내놓고 활동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자식이 공무원인 경우도 있지만, 무엇보다 공권력에 대한 공포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4.3사건으로부터 이어져 온 공포다. 김성환 신부는 “지금 매일 공사를 막는 건 미사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정욱 신부(예수회)는 “새로운 동력이 필요한 때인 듯 하다”고 말했다.

“평생 농사 지으신 분들이다. 평화나 동북아시아 안보 체제 등은 먼 이야기고, 조용히 살던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국가에 대한 반발이 컸다. 그런데 반발만으로 이 긴 싸움을 계속 끌고 가기는 어렵지 않나. 주민분들 스스로 다음 단계로의 의식 전환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공소에서 만난 한 지킴이는 “친한 삼촌이 ‘강정은 안된다’고 말할 때 속상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럴 때마다 “‘강정 뿐 아니라 제주도 어디에도 해군기지는 안 되는 거다. 바닷가에 해군기지 하나 떡하니 들어서면 그걸로 끝날 것 같냐, 어떤 일이 있어도 같이 막아내야지. 여기 떠나서 어디로 가겠는가. 바다는 다 연결된 건데’라고 말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강정 공소 정선녀 회장은 “강우일 주교님이 ‘스스로 일어날 수 없도록 만든 거대한 힘에 우리가 맞서야 한다’고 하셨던 말씀을 기억한다”면서, “행진하는데 한 마을 주민이 ‘작년 대선 끝나고 주저앉았는데, 천주교에서 미사를 하니 계속 간다’고 하더라. 가끔 100배도 혼자 할 때가 있고 동네 사람들이 안 올 수도 있지만 이제는 강정마을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 공사장 정문 앞에서 매일 아침 7시 100배를 올리는 이들.ⓒ문양효숙 기자

강정마을, 지형상 해군기지 건설이 불가능한 곳

여전히 “해군기지는 절대 들어올 수 없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강정 바다는 ‘해군기지가 들어올 수 없는 지형 조건’이라는 것이다. 작년 여름 두 개의 태풍을 현장에서 목격한 김성환 신부는 “어마어마했다”면서 “개인적으로 태풍이 우리 싸움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고 말했다. 작년 8월에 몰아닥친 태풍 불라벤은 한 개에 8천 톤이나 되는 케이슨(방파제의 뼈대가 되는 콘크리트로 만든 상자형의 구조물) 7개를 날려버렸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도 작년 국정감사에서 “돌출지역인 강정은 해군기지로 최적지는 아니다”라고 말한바 있다. 정선녀 회장은 “강정에 해군기지가 불가능하다는 건 시간이 지나면 안다”고 말했다.

“군인들은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사람들 아닌가. 공사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곳은 태풍이 한번 불면 끝이다. 마을회의에 가면 어르신들은 ‘3-4년만 기다려 줍서’라고 한다.”

그는 “안 되는 장소에 안 되는 사업을 했다”며 “결국 국민혈세만 짜내다가 딱 4대강 사업 같은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문정현 신부가 공사장 정문 앞에서 미사를 마친 후 '강정아'를 부르고 있다.ⓒ문양효숙 기자

기지가 들어온 후 마을에서의 삶을 고민해야

이와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현재를 인정하면서 마을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강정의 문제에 뜻을 모은 작가들은 “군사기지로 인해 오랜 전통을 가진 마을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문화와 예술로 무력에 대응하겠다”며 강정마을 전체를 하나의 평화 책마을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평화책마을 프로젝트의 한 담당자는 “해군기지가 들어서든 아니든 거기서 계속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강정을 포기하지 않는 다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분열되고 상처 입은 마을을 보듬을 수 있는 보다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성환 신부는 “마을 주민들간의 화해와 용서는 중요하고 가톨릭 정신에도 맞지만, 그것을 말하는 방법과 시기는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작년에 종교 지도자들이 행사를 열고 ‘찬성자도 끌어안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을 언급하며, “그런 이야기가 보다 현장에 기반을 둘 수 있다면 좋겠다. 마을에서 살면서 지혜롭게 해야 의미가 있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 경찰들이 공사차량을 시키기 위해 강제로 김성환 신부(예수회)를 들어올리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해군기지가 들어서건, 들어서지 못하건, 우리의 싸움은 계속된다.

하지만 강정마을의 사제들과 지킴이들은 “해군기지가 들어서든, 들어서지 않든 이 싸움은 계속된다”고 입을 모았다.

김정욱 신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했어도 해군기지가 들어올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막으면 성공이고 막지 못하면 실패’라는 의미로 이곳에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인간 띠 잇기 행사가 있던 날, 한 마을 주민은 경찰들의 체증을 피하기 위해 보자기로 얼굴을 꽁꽁 싸매고 포구로 걸어가면서 “이걸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나중에 우리 애들한테 당당한 사람이고 싶어서 간다”고 말했다.

지난 7월 1일 해상에서 긴급 체포된 예수회 박도현 수사를 면회하러 갔다. “바깥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달라”고 하자, 뿌연 유리창 건너편의 박 수사는 차분한 음성으로,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감옥 안에 갇혀 있는 것만으로 이미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감옥 안이든, 밖이든 그건 나한테 중요한 게 아니다. 이야기하고 싶은 건 단 하나, 해군기지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사제들이 제주해군기지의 공사현장의 차량 출입문을 막고 앉아 있다. ⓒ문양효숙 기자

강정, 잊어서는 안 되는 오래된 마을 이야기

태양이 작렬하던 8월의 어느 날, 새벽부터 어김없이 해군기지 공사장을 향하는 이들이 있다. 공사장 정문 앞에서 백배를 하는 공소회장과 수도자들이 있고, 흰둥이 두 마리를 산책시키고 공사장 정문 앞에 물벼 몇 포기를 키우는 ‘오미자’라 부르는 다섯 명의 젊은 지킴이들이 있다. 강정천 옆 풍림 리조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농사를 지어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면서, 아무도 칭찬해 주지도, 인정해 주지도 않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들이 마을 곳곳에서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그들의 검게 탄 얼굴이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려준다. “군사기지가 아니라 이런 것이 삶이다”라고.

오전 11시, 어김없이 공사장 정문 앞에서 미사가 봉헌됐다. 김성환 신부와 김정욱 신부 등 수도자 5명이 공사장 출입문을 막고, 문정현 신부는 정문 앞을 지킨다. 이들은 미사가 끝난 후 다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강정 마약 댄스 4종’를 추는가 하면, 의자에 앉은 채로 경찰들에 의해 ‘공중부양’된다. “경찰이 왜 불법공사를 돕는가! 당장 그만두라!”는 문정현 신부의 우렁찬 호통소리가 들리고, 수도자들이 경찰에 의해 고착된 틈을 타 거대한 레미콘 차량이 굉음을 내며 공사장으로 들어간다.

일상인 듯 하면서도 낯선 이 풍경은 2013년 여름, 짙푸른 바다와 어머니의 품처럼 편안하고 부드러웠던 구럼비 바위가 있는 제주도 한 바닷가 마을의 이야기다.  외면해서도, 망각해서도 안 되는 한 작은 마을 강정과 그곳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다.

▲ 사제들이 제주 해군 기지 공사현장의 차량 출입문 앞에 앉아 있다. ⓒ문양효숙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