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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묘지에 다녀와서

지난 달 하순 나는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에서 열린 ‘임진평화제’라는 특이한 행사에 다녀왔다. 흐린 하늘이 잔뜩 물기를 머금고 있던 그날 오전, 6.25 전쟁으로 희생된 적군 유해 1,000여 기가 안장된 북‧중군묘지에서 각계 인사 200여명이 모여 60여 년 전 영문도 모른 채 스러져 간 넋들을 위로하고 화해와 통일의 미래를 기원하는 의식을 가졌다. 나는 주최 측의 요청에 의해 행사를 여는 첫 순서로 구상 시인의 시 ‘적군묘지 앞에서’를 낭송했는데, 이어 그 시로 작곡한 노래와 연주가 울려 퍼질 즈음 그때까지 무겁게 고여 있던 하늘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주최 측 관계자들과 몇몇 내빈들의 말씀이 있고 나서 가수 설운도씨가 작사, 작곡한 <귀향>이란 노래를 여성 성악가가 가수 김태곤 씨의 애절한 해금(김태곤 씨가 현대식으로 개량한 일명 김태곤 해금) 반주에 맞춰 불렀다. 그리고 청중들의 뜨거운 호응에 답하느라 설운도씨가 다시 한 번 그 노래를 불렀는데, 노래를 부르는 도중 비가 본격적으로 퍼붓기 시작해 행사가 끝날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우리말에 심금을 울린다는 표현이 있다. 심금(心琴)이란 글자 그대로 ‘마음 거문고’를 뜻한다. 그날 북한군과 중공군 묘기들이 사이좋게 어깨를 겯고 있는 그곳에서 나는 산자와 망자의 마음 거문고가 더불어 울려 하늘도 울게 하는 진풍경을 보았다. 아무리 장마철이지만 일종의 위령제인 그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만 내리고 그친 비는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 6.25 전쟁으로 희생된 적군 유해 1,000여 기가 안장된 북‧중군묘지. ⓒ구자명

설운도씨의 노래 <귀향>은 “일어나 어서 고향으로 가자. 어머님이 날 기다리신다”로 시작하여 “아들아 내 아들아.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오랜 세월 엄마 품이 얼마나 그리웠겠니”로 마무리 되는데, 곡도 애절하지만 노랫말 자체가 너무도 애절했다. 김태곤 씨가 직접 만들었다는 악기 태금으로 한 반주 또한 본인이 의도한 대로 마치 전쟁터에서 돌아온 아들을 맞아 ‘어머니가 부엌문을 여는’ 듯 한 묘한 음향효과를 내서 생생한 감동을 주었다. 나는 지금도 세상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 전쟁에 동원되어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미 심정이 되어 가슴이 북받쳐 올랐다.

“어머니, 추워요! 배고파요!” 이것은 이 행사의 발단이 된 불교계 인사들의 108일 위령기도에 동참했던 한 지인이 직접 들었다고 전해준 말이다. 그 지인은 중국어에 능통한 사람인데 기도 중에 들리는 소리들이 있어 가만히 귀 기울여 보니 그런 뜻의 중국말이었다고 한다. 가톨릭 신자인 내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도 될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날 행사에서 내가 느낀 것도 이역만리 전쟁터에서 허구한 날 춥고 배고팠을 그 무명의 병사들이 살아서나 죽어서나 얼마나 어머니 품이 그리웠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날 행사 후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그 가엾은 병사들이 부르짖었을 가슴 속 절규가 귓전에서 맴돌았다. “어머니, 돌아가고 싶어요! 어머니 품으로! 그리운 집으로!” 그러면서 한편 나 자신을 포함해 많은 인간들이 원초적으로 그러한 그리움과 갈원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가 이해할 수도 없고, 감당하기도 힘든 크고 작은 전쟁터들의 집합체가 아닌가? 그리하여 언제 전쟁이 끝날지 기약 없는 가운데 고향으로, 어버이 품으로 돌아갈 날을 애닯게 소원하며 살아가는 게 우리네 삶 아닐까?

수년 전에도 해외 여행지에서 이와 유사한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다. 자연이나 인간의 얼굴이 놀라울 만치 여럿이라 가는 곳마다 숨 고르기에 바빴던 나라, 터키에서였다. 특히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 수피즘의 메카인 콘야에서의 밤은 내게 있어 그 여행의 정점이었다. 낮에 아득한 평원을 이상스레 서글픈 두근거림을 안고 달려온 끝에 당도한 도시, 콘야. 다소 침울한 인상의 그 고도에서 첫 발을 들여 놓은 곳이 메블라나 사원인데, 그 수피 사원의 실내를 가득 채운 아라비아 문자들과의 만남은 차라리 충격이었다.

신의 온갖 이름들을 혼신의 힘으로 적어 내려간 인간의 처절한 의지(依支)의 의지(意志)라니! 그 역동하는 신공(神功)의 로고에 압도당해 나도 모르게 내 넋의 한 쪽을 내준 상태에서 얼떨결에 맞닥뜨린 세마 춤. 비록 관광객을 위한 쇼에 불과한 것이라지만, 그 구도의 승무를 추는 이들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음악은 나로 하여금 짧은 순간이나마 여러 생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을 하게 만들만큼 강력한 에너지 파장을 지닌 것이었다.

전통 플룻의 첫 음이 울리고부터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던 눈물. 영혼의 본향을 찾아 장도에 오른 지 오래건만 헤매고 헤매어도 그곳이 가까워지기는커녕 점점 더 아득하게만 여겨지는 우리, 그 존재의 나그네들이 가엾고 안타까워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콘야의 밤, 그것은 본향 회귀에의 향수로 가슴 벅찬 밤이었고, 잠시나마 ‘나’와 ‘너’가 ‘우리’ 안에서 구분이 없어졌던 시간이었다.

이처럼, 인간의 자기연민은 때로 타인을 포함하는 ‘우리’를 향한 연민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것은 의식이 ‘자기’에서 ‘우리’로 확장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적군묘지 앞에서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라고 읊조린 시인의 추도사가 정전 60주년을 맞은 지금 호소력을 갖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구자명 (임마꿀라타)
심리학을 전공했으나 소설 쓰기가 주업이고 이따금 부업으로 번역도 한다. 최근에는 동료 문인들과 함께 ‘문학적으로 자기 삶 돌아보기’를 위한 미니 자서전 쓰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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