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마태오 15,21-28

그때에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마태오 15,21-28)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면서 가장 절망적인 순간은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때일 것입니다.

열정적으로 드리는 끊임없는 기도는 공허한 메아리로 남고,
선하게 살려는 아름다운 몸짓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일상에서 일어납니다.

이즈음 심각한 물음이 가슴을 짓누릅니다.

과연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일까
아니 하느님께서 과연 계시는 것일까
그렇다면 과연 하느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

하느님께서는 나를 버리시지 않으셨지만,
하느님께서 나를 버리셨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 느낌을 통해서 새롭게 하느님을 만납니다.

이제는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한낱 허상이었던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의 믿음은 부질없는 것이었고
나약한 인간 본성의 어리석음이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미련 없이 등을 돌립니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 비로소
나의 소유물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주무르는 노예가 아닌
정녕 내 삶의 주님이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뜻을 가슴에 새깁니다.
그럼으로써 하느님과 나는
이제 세상 어느 것도 갈라놓을 수 없는 하나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면서 가장 절망적인 순간은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때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은
하느님과 온전히 하나 될 수 있는 결정적인 때입니다.
순수한 겸손으로 하느님과 마주 할 수 있는 때입니다.

그래서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절망은 없다’라고.

 

상지종 신부 (베르나르도)
의정부교구 성소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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