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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늦은 후회[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 - 32]

한평 아주머니댁에서는 요즘에도 종종 거친 말다툼 소리가 들리곤 하는데 그것은 대개 들에서 일하고 온 아주머니의 잔소리와 푸념으로부터 시작된다.

“아이고 죽겄다. 나는 죽어라 일만 하는데, 일 도와줄 생각은 안 하고 밥만 따박따박 받아먹고 말이여. 집이서 테레비만 죽자고 보면 밥이 나와 죽이 나와….”
“조용히 해라. 가만히 안 둔다.”
“귀는 뚫려서 싫은 소리는 안 듣고 싶은가보네.”
“콱! 니는 내가 나가 죽어야 속이 편하제? 그래, 내가 나가 죽을란다.”
“맘대로 해. 죽으면 내가 눈 하나 깜짝 할 줄 알아? 죽어!”

늘상 이런 식으로 두 분 사이 쟁쟁한 울부짖음이 온 마을을 뒤덮는다. 물론 그 싸움은 한낮의 소나기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막을 내리지만 며칠 뒤에 또다시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 되곤 한다. 어쩔 수 없이 두 분이 다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같은 여자로서 아주머니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된다. 겉으로 토해내지 않을 뿐이지 내 마음 속에도 아주머니의 잔소리와 푸념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 올해는 조롱박이 대풍이다. ⓒ정청라

사실 농사일이 한창 바쁠 때는 신랑이 집안일이나 아이들에게 무심한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요새 들어 농사일이 전보다 한가해지자 신랑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됐다. 밥 먹고 설거지라도 해 주었으면, 다울이랑 신나게 놀아주고 다랑이도 자주 안아주었으면, 집 주위 풀도 말끔히 베고, 밀린 일도 거들어 주었으면…. 내 놓고 말은 안 했지만 나는 이런 것들을 신랑이 당연히 해 주기를 기대했다. 특히 시집 식구들이 여름휴가를 오기 전에 집안 구석구석 대청소를 해야 했기에 내 마음은 바빴고, 그럴수록 신랑에게 기대는 마음은 더 커졌다.

하지만 웬걸. 나는 애 어르다가 일하다가 하며 쉴 틈 없이 움직이는데 이 사람은 혼자 책 보고 쉬느라 여념이 없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보던 책도 그 자리, 먹던 컵도 제자리, 일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일을 만들어 주면서 말이다. 보다 못한 내가 집 정리 좀 도와달라고 하면 안 해도 된다고만 하고, 애 좀 안아달라고 하면 자기가 안으면 울어서 못 안겠다고 하니 그럴 때마다 내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크게 내색은 안 했지만 원망이 턱까지 차올라 신랑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려고 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어느 날 끓어오르던 냄비가 뻥 하고 폭발하는 사건이 터졌다. 아이들 자고 있는 동안 나는 집 뒤뜰에 무성한 풀을 베고 있었는데, 잠에서 깬 아이들이 엄마 없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난 것이다. 책을 보며 쉬고 있는 신랑이 알아서 조치를 취하겠지 하고 계속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들 울음소리는 그칠 줄 모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랑이 나를 부르러 왔다. 아이들이 엄마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달래려고 크게 애를 써보지도 않고 나부터 찾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나고 마음에 서슬 퍼런 날이 섰다.

할 수 없이 하던 일을 팽개치고 달려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고 있는 다랑이를 안아들었다. 다울이는 신랑이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다랑이만 데리고 나와 안방으로 왔는데, 다울이 울음소리가 그치질 않는 것이다. 잠이 덜 깬 다울이가 자꾸 심통을 부리니까 신랑도 덩달아 심통이 난 모양이었다.

“아빠, 나 오줌 마려워.”
“너 혼자서 싸.”
“싫어. 아빠가 해줘.”
“너 혼자서 해.”

그렇게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다울이가 크게 울음을 터뜨렸고, 내 분노는 극에 달했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신랑을 향해 소리를 꽥 질렀다. 내 목소리는 신경질과 짜증이 잔뜩 섞인 쇳소리 같은 것이었다. 한평 아주머니네 집에서 새어나오던 울부짖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리 말이다.

결국 그 소리로 신랑과 나 사이엔 높은 철조망이 드리워졌다. 다울이가 철조망 사이를 오가며 평화의 사절단 노릇을 했지만 신랑의 기분은 쉽게 누그러지지 않았다. 나 또한 신랑에게 이야기 좀 하자고 다가가 내 잘못을 사과하고 내 마음을 이해시켜 보려고 했지만 신랑 얼굴에 깔린 어둠이 나를 밀어냈다. 아무래도 내 분노가 신랑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모양이었다.

신랑의 잔뜩 굳어 있는 얼굴 표정을 보니 그제야 정신이 번쩍 났다. 그동안 내가 내 기분 내 감정에만 사로잡혀 화살을 신랑에게만 돌리고 있었다는 것을, 한순간의 화를 이기지 못해서 내가 나에게 돌을 던졌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때부터는 밉기만 했던 신랑이 너무나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안타깝기만 했다. 그렇지만 어쩌랴. 물은 이미 쏟아졌고 신랑은 벌써 상처받은 것을….

결국 신랑이 마음을 누그러뜨리기까지는 이틀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그러는 동안 나는 깊이 반성했다. 다시는 네가 나인 것을 잊지 않아야지. 이 다짐이 굳게 뿌리 내리게 되기를 바란다.
 

정청라
귀농 7년차, 결혼 5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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