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예수] 마태오 복음 해설 - 36

“여러분이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서도 여러분을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남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아버지께서도 여러분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마태오 6,14-15)

기도에 대한 가르침은 용서에 대한 당부와 경고로 마무리된다. 당부보다는 경고에 더 중점을 두는 오늘 구절은 예수가 한 말로 여겨진다. 기도 형식이 아닌 구절이라 예수의 기도와 분리되었다. 조건법 문장이지만 내용은 지혜문학 성격으로 예수의 기도 다섯째 구절과 연결되어 설명된다. 용서 의무는 우선 제자공동체를, 그리고 차차 다른 사람들을 향하고 있다. paraptomata는 마르코 11,25에서, 마태오에서 여기에만 나타나고, 루가에서는 보이지 않는 다. 하느님에 대한 잘못을 나타내는 단어인데 마태오에서는 인간 사이의 잘못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하느님에 대한 잘못이나 인간 사이의 잘못이 같은 비중으로 여겨진다는 뜻이 아닐까.

물론 인간에 대한 용서가 하느님의 용서를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 사이의 용서는 하느님에게 용서를 청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인간 사이의 용서가 하느님의 용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마태오는 여러 번 강조한다. 예배를 드리러 제단으로 가기 전 먼저 형제자매와 화해하라는 마태오 5,23을 기억하자. “여러분이 진심으로 형제자매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여러분에게 이처럼 하실 것이다.”(마태오 18,35) 기도는 이미 행동의 일부요 전제임을 마태오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기도뿐 아니라 생각도 이미 실천의 일부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기도하지 않을 리 없다.

우선 하느님과의 화해를 인간은 의식할지 모르나 하느님은 인간 사이의 용서에 더 예민하시다. 인간 사이의 문제에 인간은 더 신경 쓰라는 하느님의 당부다. 용서도 그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죄인인 내가 하느님 앞에 어떻게 의롭게 설 수 있을까’하는 루터 식 고뇌를 예수도 하느님도 하지 않았다. 루터의 고뇌는 근대에 개인의 주체의식을 선도한 주제였지만 신앙의 개인주의를 유도하고 공동체의식을 약화시킨 빌미를 제공하였다.

 ⓒ박홍기

인간 사이 모든 잘못은 진리와 사랑에 대한 어느 정도의 침해를 가져온다. 그 잘못은 진리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타격을 포함한다. 형제자매를 용서하는 사람에게만 하느님의 용서는 다가온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사임선언문에서 자신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청하고 있다. 예수는 처형당하는 그 순간에도 자기를 죽인 사람들을 용서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마태오 23,34) 세상을 무(無)에서 창조하기 위해 하느님은 말씀 하나로 충분하였다. 그러나 인간 사이의 용서를 가르치기 위해 하느님은 예수의 죽음이라는 신학 드라마를 써야 했다. 그 정도로 용서는 하느님에게도 만만치 않은 주제다.

마태오는 용서를 바탕으로 신앙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다. 제단으로 가기 전 형제자매와 화해하라는 마태오 5,23을 기억하자. 소속 공동체에서 교리교사였던 그는 탄탄한 공동성서 실력과 깊은 사색을 바탕으로 인류에게 마태오복음을 선물했다. 마태오처럼 뛰어난 교리교사를 둔 그 공동체는 정말 행복했겠다.

조국에서 추방되어 낯선 땅을 떠돌며 가난과 박해로 시달리던 마태오 공동체 시절에 용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주제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오늘 구절이다. 빵 문제, 조국의 독립 문제보다 용서는 그들에게 더 다급하고 간절한 현안이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기쁨이나 하느님나라에 대한 기다림보다 인간 사이의 용서만큼 마태오 공동체의 관심을 더 받은 주제는 없던 듯하다. 가난한 식민지 시절에도, 동족 사이에, 그리고 신앙의 형제자매 사이에서도 미움은 생길 수 있고 또 생겨난다. 갖가지 미움으로 분열된 한국사회는 마태오 공동체의 모습과 멀지 않다. 용서에 대한 고뇌는 누구에게나 진지하게 요청된다. 용서를 청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용서하는 사람도 아름답다. 

 
 

김근수 (요셉)
연세대 철학과, 독일 마인츠대학교 가톨릭신학과 졸업. 로메로 대주교의 땅 엘살바도르의 UCA 대학교에서 혼 소브리노에게 해방신학을 배웠다. 성서신학의 연구성과와 가난한 사람들의 시각을 바탕으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마르코 복음 해설서 <슬픈 예수 : 세상의 고통을 없애는 저항의 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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