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의 삶과 노래]세상 안에서 세상과 다르게

 

 

정말로 살기가 어려운가 보다. 모두가 돈으로 돈을 벌려다 함께 망해 가는가 하면, 갖은 방법으로 속여 남의 돈을 훔쳐가려는 사람들 때문에 더욱 살맛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기쁨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기적 같은 일이지만,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이란 기적의 연속일 수도 있다.

며칠 전 내 동생이 겪은 일이다. 한낮에 낯선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의료보험조합입니다. 고객께서 지금까지 보험료를 과다하게 납부하셨기에 환급해 드리려고 합니다. 675,000원인데요. 가까운 곳에 거래하시는 은행이 있다면 그곳으로 넣어드리겠습니다. 어디 은행이지요?”
“아~ 네. OO은행인데요.”
“우선 휴대폰 번호를 좀 알려주실래요? 그리고 거래하시는 은행으로 가셔서 자동기기 앞에 서 계시면 잠시 후에 저희 과장님께서 전화를 하셔서 환급받을 수 있도록 안내를 해 드릴 겁니다.”
잔뜩 신경을 써서 또렷한 발음으로 야무지게 휴대전화번호를 대주고서, 늦어서 환급받지 못하는 일은 없도록 서둘러 가까운 거래은행 자동기기 앞에 서 있었더니, 정확히 5분 후에 과장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기계에 카드를 넣으시고 제가 말씀드리는 대로 하시면 환급됩니다.”
“통장으로 넣어 주시면 안 되나요?”
“통장은 안 되는데요. 시스템이 카드만 되게 되어 있어서요.”
“아니예요. 여기 기계에 보면 카드 넣는 곳 옆에 통장 넣는 곳도 있어요. 저는 카드는 없거든요. 그냥 통장으로 넣어주셔도 잘 들어와요.”
신용카드가 없어서 그 흔한 보이스피싱도 못 당한 여자의 얘기는 여기까지이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웃다보니 가슴에서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물이 솟아난다.

 



나도 한 번 비슷한 일을 겪었다. 방송과 신문에서,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서 들을 때마다 가족들에게 주의를 당부했지만, 정작 내가 겪어보니 웃어넘길 일만은 아니다. 청탁받은 원고를 쓰느라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금융감독원입니다. 선생님의 OO카드로 강남 OO백화점에서 전자제품 대금으로 198만원이 결재되었습니다.”
“저는 그런 카드가 없는데요. 제가 쓰는 카드는 교통카드로 쓰고 있는 것 하나뿐이예요.”
그렇다면 개인정보가 누출되어 명의가 도용된 것 같다면서 횡설수설 하다가 뚝 끊었다. 보이스피싱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잠시나마 속았던 것이 불쾌했지만 그뿐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우연하게 지인들의 지갑에서 너무나 많은 개수의 카드를 볼 때마다 놀랍기만 했었는데, 만약에 내가 그렇게 많은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도 그날의 피싱에 걸려들었을 것이기에. 그리 많은 카드를 관리할 능력은 물론 경제력도 안 되는 형편을 다행으로 여겨야 되나보다.

 



며칠 전 대림특강을 위해 대전에 갔을 때, 그곳 지인들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모두가 어렵다는 요즘의 경제상황에 걸맞게 다들 부동산과 펀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주가가 500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에 비추어 주식에 투자한 많은 사람들의 돈이 반 토막이 아니라 반의 반 토막이 될 거라고도 했고, 강남의 아파트 가격은 최고가 대비 30%까지 떨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일차적인 손해에서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주가도 아파트 가격도 계속 오르막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갖은 방법으로 대출을 받아 주식과 아파트를 샀고,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대출이자를 들먹이며 그런 일들을 부추겨왔다고 한다. 이제 주식과 부동산은 거품을 토해내며 주저앉았는데도 은행에 내야할 원금과 대출이자는 조금도 내리지 않으니, 형편없이 폭락한 가격으로도 팔리지 않는 아파트를 끌어안은 채 이제는 상대적으로 높은 은행이자만 갚고 있는 셈이다. 그런 와중에 값이 내리기 전에 평가된 부동산 가격으로 매겨진 보유세는 또 다른 고통이 되고 있다. 주식에 투자한 돈 8억이 3억이 되어 억울해서 못 견뎌 한다는 주변 친구 얘기를 듣고, 누군가 자조를 섞어 이렇게 말했다.
“값나가는 집이나 땅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들으면 욕먹을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나도 보유세 한 번 내보고 싶다. 종부세와 종토세도 좀 맞아보고 싶어.”

많은 사람들이 주식과 부동산 투자를 할 때, 그럴 수 없는 형편인데도 넌지시 부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구청으로부터 붕괴위험경고를 받은 산꼭대기 낡은 집을 팔고 이사를 해야 했을 때, ‘나중을 위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강남에 아파트를 사야한다. 강남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라고 입 달린 사람은 모두 그렇게 권유했었다. 그러나 평생을 시골과 산동네에서 살아오신 홀 아버님과 산자락을 엄마 품처럼 여기고 자란 세 아이들에게 고향을 간직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다시 근처에 있는 헌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그런 아빠에게도 세 아이들은 경고를 했다.
“아빠. 우리는 이사를 안 갈 테니까 가고 싶으면 어른들끼리만 가. 낡았다고 해서 우리 집을 버리고 갈 수는 없어. 그런데도 만약에 우리가 갈 수 밖에 없게 된다면 그 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우리는 책임을 질 수 없으니 그리 알어.”
어렵사리 이사를 한 후, 6년 째 살아오면서 아이들은 그 일을 잊고 말았다. 지난 번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어서 산과 학교를 비롯한 동네가 그대로인 탓이다. 그걸 다행으로 여기면서도 가끔씩 힘들 때는 다른 생각을 해본적도 있었다. 이를테면 같은 기간에 값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올랐다는 곳에 아파트를 샀더라면 지금쯤 덜 힘들게 살고 있을까?

 

 

그러나 이제 모든 일들은 지나갔고,  약삭빠른 사람들이 많은 것을 챙겨 빠져나간 그 자리에 고통을 끌어안은 채 이웃들이 신음하고 있다. 이웃들의 고통이 내게도 아픔이 되지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는 예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보고 싶다. 또한 내가 헛된 것을 탐하지 않고 내핍과 가난을 살게 인도해주신 고마운 그분 곁에 더 자주 머무르고 싶다. 그분께 의지하면서,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세상 안에서 세상과 다르게 살고 싶다. 가끔씩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물을 가슴에 안고 가난한 노래를 부르고 싶다.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둥지를 틀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새처럼 당신의 하늘을 날게 해 주십시오

가진 것 없어도 맑고 밝은 웃음으로

기쁨의 깃을 치며 오늘을 살도록 해 주십시오.


가난을 위한 가난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선택한 가난이기에

모든 것 버리고도 가진 것 나누어도 넉넉할 수 있음이니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나는 철새의 당당함으로

텅 빈 하늘을 나는 고독과 자유를 맛보게 해 주십시오.


오직 사랑 하나로 눈물 속에서도

기쁨이 넘쳐날 약속의 삶에 햇살로 넘치는 축복

내 삶의 하늘에 떠다니는 흰 구름의 평화여

날마다 새가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나에게

더 이상 무게가 주는 슬픔은 없습니다.

(이해인 시/김정식 곡 「가난한 새의 기도」전문) 

 

사진 고태환

 

김정식/가수 겸 작곡가로 생활성가의 개척자이며, 파리국립음악원에서 그레고리안과 지휘법을 공부하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위한 자선음악회와 환경보전과 인권회복을 위한 사회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와 예술가요 및 연주곡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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