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중팔구 한국 천주교회에만 있는 것 2


십중팔구 한국 천주교회에만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바로 냉담자 통계이다. 냉담자란 말은 신자 수를 통계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한다(<가톨릭대사전> ‘냉담자’ 항목 참조). 1932년에 펴낸 <한국 교회 공동 지도서> 제44조를 보면 교구 제출용 연말 보고서에서 신자수를 집계할 때 고의적인 냉담자를 빼라고 한다. 그리고 냉담자란 악의에서 또는 교회법상의 조당으로 성사를 받지 않은 신자들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엔 이런 역사 배경이 있다. 성인 세례자가 늘어났으니 신자 수가 늘어나야 하는데 통계상 오히려 줄어드는 일이 벌어졌다. 일제 강점으로 말미암아 자유나 생계를 위해 나라 밖으로 나가거나 나라 안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는 사람이 늘었는데, 이들을 냉담자로 보고 신자 수에서 뺐기 때문이다. 그러니 교구에서는 신자 수가 오히려 줄어드는 일을 막기 위해 냉담자 기준을 제시하면서 정확한 통계를 요구한 것이다.

평균 수명 늘면 냉담자 기준도 바뀌어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냉담자 통계를 정확하게 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냉담자 통계 기준에는 몇 차례 변화가 있었다. 한국 천주교 교회통계에서 냉담자 통계가 처음 집계된 것은 1961년이었다. 교회통계표에 냉담자 집계 기준을 직접 밝힌 것은 1994년부터이다. 이게 바람직하다. 어떤 기준으로 통계를 냈는지를 알아야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때 밝힌 냉담자 기준은 이렇다.

냉담자는 3년 이상 판공성사를 받지 않은 신자이다. 냉담자 수는 주소를 아는 냉담자(주소 확인)와 주소를 모르는 냉담자(거주 미상)를 각각 기재한다(거주 미상 냉담자가 만 75세를 넘을 경우에는 사망으로 추정하여 집계하지 않는다).

이렇게 사망 추정을 통해 75세 이상의 냉담자를 신자 수에서 아예 뺀 것은 안 그랬다가는 냉담자가 모두 불사신이 되어 신자 수가 무한정 늘어나기 때문이다. 1998년에 다시 한 번 냉담자 기준을 약간 고쳐 사망으로 추정하는 나이를 75세에서 90세로 높였다. 평균수명이 늘어 75세 이상이라도 죽었다고 판단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리라. 2008년을 기준으로 한국 남성 평균수명이 75.1세, 여성 평균수명은 82.3세이다. 90세 이상이라는 기준의 근거도 명확하지 않다. 아마도 평균수명을 고려해서 넉넉하게 잡은 나이가 아닐까?

고해성사 의무만으로 냉담 여부를 가리는 이유

3년 이상 판공성사를 받지 않은 신자를 냉담자로 보는 기준도 애매하긴 마찬가지이다. 교회법에는 천주교 신자의 의무를 다음 여섯 가지로 정하고 있다. (1) 모든 주일과 의무 축일 미사 참여, (2) 적어도 일 년에 한번 고해성사, (3)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영성체, (4) 금식재와 금육재 준수, (5) 교회 혼인법 준수, (6) 교회 유지비(교무금) 부담. 이 가운데 오로지 고해성사 의무만을 기준으로 냉담 여부를 가리는 건 무슨 이유인가? 나름대로 그 이유를 추측해본다.

(1)은 신자 개인별로 미사 참여율을 조사하는 게 불가능하니 냉담자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3)은 어차피 고해성사를 보면 영성체를 할 테니 (2)만 파악되면 저절로 파악 가능하다.
(4)는 개인 차원으로 실천하는 거라 사실상 파악이 불가능하다.
(5)는 혼인법을 지키지 않으면 혼인 조당에 걸려 모든 성사권이 제한되니 (2)만 파악되면 저절로 파악 가능하다.
(6)은 그 어느 것보다 정확하게 파악 가능하다. 하지만 교무금은 세대별로 내는 것이므로 그 세대 안에 누군가 의무를 지키고 있다는 걸 파악할 수 있을 뿐, 그 세대 안에 냉담자가 있을 수 있다.

6가지 의무를 다 잘 지킨다고 해서 참된 예수 제자의 삶을 산다고 할 수 없지만, 개인별로 준수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하고 의미 있는 의무는 고해성사 의무이다. 신자 수가 적을 때는 저절로 사제가 알았고, 신자 수가 늘어나면서는 성사표 분배와 회수라는 방법으로 파악할 수 있었으므로. 그래서 고해성사를 기준으로 냉담자를 파악하였다.

그런데 왜 3년 이상인가?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고해성사를 보라고 했다면, 1년 동안 판공성사를 보지 않은 신자는 모두 냉담자로 분류하는 게 정확한 게 아닌가? 그러자니 성사표를 내지 않는 보통 때에 고해성사를 본 사람들이 문제이다. 아마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년 동안 판공성사를 안 본 사람을 냉담자로 분류하였을 것이다. 그래도 왜 2년이나 4년, 아니면 5년이 아니라 3년을 기준으로 삼았는지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널리 통용되는 정서인 ‘삼세번’ 때문인가?

관리보다 돌봄의 사목을 펼쳐야

2003년부터 양업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교구의 성사표에는 바코드가 찍혀 나온다. 성사표 등록의 편의를 위한 것이리라. 바코드는 악마의 징표라고 주장하는 개신교집단이 이 성사표를 본다면, 천주교가 악마의 종교라는 증거를 잡았다고 게거품을 물 게 분명하다. 냉담자 개념이 통계를 위해 생긴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신자들을 사목이 아니라 관리대상으로 보고 있다. 바코드 성사표는 악마의 징표는 아닐지라도 관리 마인드의 상징인 것은 분명하다.

명확한 기준이 없어 태생이 엉터리인 냉담자 통계이지만 계속 늘고 있다는 것은 여러 이유로 성당에 나오지 못하는 신자들이 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을 찾아가서 형편을 살피고 그 처지에 맞게 신앙생활을 하도록 도와줄 것인가, 아니면 성당중심의 관리체계를 고집하면서 그 체계를 따라올 수 없는 사람들을 계속 냉담자로 낙인찍을 것인가?

아주 길고 긴 경제 위기 또는 침체가 예고되고 있다. 먹고살기 위해 성당을 찾을 여력을 갖지 못하는 신자들이 점점 더 늘 것이다. 이른바 냉담자이든 아니든 신자들을 찾아가 각자 겪는 어려움에 맞게 돌봄의 사목을 펼치는 노력이 점점 더 필요해지고 있다. 그리고 실현성 없지만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관리 마인드에서 벗어나겠다는 결단의 징표로 냉담자 통계 내는 것을 그만두면 어떨까?

 

박영대/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