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희망버스엘 탑승하지 않았다. 일찍부터 현장과 그 주변을 스케치하기 위해 울산 철탑에 도착한 것은 7월20일(토) 오전 9시 30분이었다. 이날 아침부터 날씨는 뙤약볕이었고, 철탑 아래는 몇몇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노동자들이 희망버스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 바쁜 몸놀림 중이었다. 철탑의 천의봉 노동자는 찌는 듯한 불볕더위를 피해 상반신을 벗은 채 반겨 주었다. 사진기 안으로 들어온 그의 상체는 근육질의 몸이었지만, 허리가 좋지 않다고 주변에서 귓속말로 말해주었다.

 ⓒ장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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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대차 정문으로 향했다. 거기엔 이른바 ‘몽구산성’이 거대한 골리앗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작은 분향소가 있었고, 몇몇 노동자들이 도로에 주저앉아 있었다. 바로 현대차비정규직노동조합 아산지회 박정식 사무국장의 분향소였다. 그 분향소를 지키는 노동자들을 현대자동차 관리직원들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현대자동차 정문을 출입하는 사람들의 신분증을 확인하며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평소 현대자동차 담벼락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현대자동차 측에서는 그 담벼락을 따라 사람이 접근할 수 없도록 철판담벼락을 높이 쌓고 있었다. 마치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담벼락처럼. 이미 경비병력의 강화와 함께 현대자동차 측에서는 오후에 있을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집회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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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철탑으로 향했다. 철탑에서 약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2013대학생노동해방선봉대’가 철탑에 도착했다. 이들은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도보로 철탑까지 왔으며, 철탑의 두 노동자를 향해 구호와 함성을 질렀다. 땀을 비 오듯 흘리는 젊은 학생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철탑의 두 노동자들도 학생들의 박수와 함성에 큰 소리로 “비정규직 철폐!!!”라는 구호로 응답했다. 민주노총 강성신 울산본부장은 학생들과 함께 철탑 아래서 고(故) 박정식 노동자의 분향소를 만들었다. 웃고 있는 박정식 노동자의 모습에 갑자기 먹먹함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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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다시 현대자동차 정문으로 향했다. 정문 앞에는 희망버스 참가자들과 노동자들이 숱한 만장을 들고 집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만장의 주요 내용은 ‘비정규직 철폐’와 ‘정몽구 구속’ 그리고 ‘박정식 열사 추모’와 ‘투쟁’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현대자동차 정문 맞은 편에는 ‘어버이연합’의 어르신들과 희망버스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동원되어 있었다. 경찰이 질서유지 선으로 쳐놓은 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희망버스 시민들과 그 반대편의 시민들이 분리되어 있었다. 이 깊고도 깊은 분열과 대립 그리고 갈등을 어떻게 상생과 통합의 한마당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까. 정말 궁금하고 답답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내내 강조했던 통합의 정치의 시험대가 바로 울산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양 쪽의 구호와 함성은 대립으로 치달을 기세였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 속에서 갑자기 현대자동차 정문 앞에서 예정되었던 집회가 철탑이 있는 명촌주차장으로 변경되었다. 아마도 희망버스기획단에서 충돌을 우려해 취한 조치였던 것으로 보인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현대자동차 정문 앞에서부터 뒤돌아 명촌까지 도로 행진을 하였다. 너무나 뜨거운 날씨에 명촌까지 행진하기란 쉽지 않은 고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경찰의 인도 아래 질서 있고, 평화로운 행진을 하였다. 행진 도중 터져나오는 구호는 ‘비정규직 철폐’와 ‘정몽구 구속’이었다. 이 행진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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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이 넘은 행진 끝에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명촌으로 속속 집결하였다. 명촌에는 이미 도착한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행진대열을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수많은 공권력이 집결하여 대오를 형성하고 있었다. 명촌의 현대자동차 앞에서 전국노동자결의대회가 개최되고, 참가자들은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사측과 정몽구 회장을 성토하였다. 280일이 되도록 철탑에서 농성하고 있는 두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사측을 향한 성토의 강도는 점점 높아가고 있었다.

전국노동자결의대회를 마치고 철탑에서 열릴 문화제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소화기 분말이 거리를 뒤덮었다. 나는 처음에는 최루탄인 줄 알았으나 현대자동차 사측에서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발사한 소화기 분말이었다. 순간 명촌주차장 앞의 거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참석한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아이들을 보호하느라 소리를 질렀고, 노약자들은 소화기 분말을 피하느라 대피하는 등 큰 소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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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진기를 들고 소화기 분말이 발사되고 있는 현장으로 접근했다. 현장에는 방패와 헬멧으로 무장한 현대자동차 사측의 사람들이 방패처럼 서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곤봉과 죽봉 등이 들려 있었다. 그 과정에서 헬멧을 쓴 현대자동차 사측의 직원들은 소화전의 물대포와 소화기 분말을 무차별적으로 발사하였다. 나는 사진작가이며,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객원기자임을 밝힐 틈도 없이 집중적으로 공격을 당해야만 했다. 특히 현대자동차 사측에서는 사진기를 향해 집중적으로 타격을 가해 왔다. 그야말로 하얀 암흑 속에서 나의 몸과 사진기는 매캐한 분말로 뒤덮였고, 물대포를 수차례나 맞은 사진기는 뿌연 수증기로 정확한 초점을 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 상황에서 대학생노동해방선봉대 청년 학생들이 나의 촬영을 위해 인간 방패가 되어 온 몸으로 물대포를 막아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상당한 데미지를 입은 사진기는 제대로 초점을 잡지 못하였고, 나는 감으로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렌즈를 교체하고 다시 촬영을 시도했지만, 이들의 야만적 폭력은 멈추질 않았다. 특히 헬멧을 쓴 이들은 정조준해서 물병과 돌 등을 던졌고, 내가 보는 앞에서 어떤 시민은 물병을 머리에 그대로 맞기도 하였다.

나는 그 상황에서 흰 헬멧을 쓰고 물병을 던진 이에게 강력히 항의하였지만, 곧바로 물대포와 소화기 분말을 뒤집어 써야 했다. 최루탄 가스는 질리도록 맞아보았지만, 소화기 분말을 뒤집어쓴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나는 젖은 몸과 젖은 사진기 때문에 현장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두 시간 동안의 긴박한 충돌과 폭력이 난무하는 속에 공권력이 개입하고, 상황이 진정되면서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부상과 연행 소식이 들려왔다. 특히 부상자들 중에는 예리한 그 무엇인가에 의해 살점이 뜯겨나가는 부상을 당했다는 놀라운 소식도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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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상황이 정리되고 집회는 문화제로 진행되었다. 문화제는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밀양765kV건설반대대책위 주민들과 청도345kV건설반대대책위 할매들도 참석하였다. 청도 할매들은 시간 관계로 일찍 청도로 떠났으나 밀양 주민들은 합창으로 참석자들의 뜨거운 함성과 박수를 받았다. 밀양 여수마을의 김영자 님은 “경찰이 버스를 막아 이곳까지 걸어오는 데 20여 분이 걸렸다. 마치 전쟁터 같았다.”라면서 울먹였다.

이 밖에도 문화제에는 강정마을에서 온 강동균 마을회장과 평택 철탑에서 농성을 하였던 쌍용차 한상균 해고노동자를 비롯해 전국에서 투쟁하는 이들이 함께 했다. 그리고 멀리 일본 오사카의 유니온 노동자들도 희망비행기를 타고 철탑 농성에까지 와서 “노동자들의 투쟁과 마음에는 국경이 없다.”라고 연대의 말을 전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연대와 희망의 문화제의 마지막은 철탑에서 농성 중인 최병승 노동자의 발언으로 갈무리되었다.

최병승 씨는 “지난 10년이 넘는 동안 현대차는 몇 만 명의 불법파견과 세 명의 하청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았고, 200여 명의 해고자가 지금도 죽음의 벽 앞에서 외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불법과 공권력 투입을 운운하고 있다.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 이 미친 세상을 버티려면 우리가 먼저 자책해서는 안 된다. 우리 동지를 죽인 것은 우리가 아니라 사람을 착취하고 불법을 자행한 정몽구다.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또다시 포기하면 정몽구는 우리 동지들의 목숨을 내 놓으라고 할 것이다. 동지들과 같이 싸우고 살아내자. 정몽구에 맞서 싸우자. 열사가 원한 꿈과 희망을 쟁취하자. 나의 정규직 전환이 아닌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을 쟁취하자. 동지들, 죽지 말고 살아서 승리하자. 힘차게 투쟁하겠다”라고 하였다. 함께 농성 중인 천의봉 노동자는 바로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아 끝내 인사를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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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주변을 청소하면서 1박2일의 희망버스 일정을 갈무리하였다. 이들은 토닥토닥 밥차에서 준비한 김밥을 나눠먹고, 희망버스 기획단에서 준비한 기자회견장에 모두 모여 자유발언을 시작하였다. 녹색당 이현주 공동운영위원장을 시작으로 자유발언은 이어졌다. 대부분의 자유발언자들은 현대자동차 사측을 규탄하고, 대법원 판결에 따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면서 하루빨리 철탑 위의 두 노동자들이 땅을 밟을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자유발언이 진행되는 동안 지난밤에 연행된 모든 시민들이 석방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이 기자회견 장에는 MBC와 KBS 그리고 기타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함께 했다.

1박2일 간의 모든 일정이 갈무리되면서 희망버스를 타고 왔던 시민들은 다시 희망버스를 타고 삶의 현장으로 되돌아갔다. 지난밤에 몸이 좋지 않았던 철탑의 천의봉 노동자도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환송했다. 그렇게 1박2일 간의 희망버스가 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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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날 오후부터 들려오는 언론의 뉴스는 일방적 폭력소식으로 도배되었다. 폭력과 음주난동으로 희망버스가 절망버스로 변질되었다는 뉴스가 반복되었다. 메이저 방송에서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죽봉을 휘두르는 모습만 부각되었고, 사측의 폭력은 일체의 언급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언론은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문제와 대법원의 판결 등에 대한 배경설명은 없이 일방적인 폭력세력으로 몰아붙이며 왜곡 보도를 서슴치 않고 있었다. 특히 검경은 폭력을 휘두른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끝까지 색출해서 엄단하겠다고 공표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희망버스기획단은 7월23일 오후 민주노총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희망버스 인권침해감시 보고서를 발표하고 보수언론과 검경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희망버스기획단은 기자회견을 통해 “사측의 용역폭력은 헬멧과 곤봉, 소화기, 방패 등을 통해 이미 법의 범위를 벗어난 폭력장비를 사용해 무장한 상태였으며,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펜스 앞으로 다가가자 무차별적으로 소화기 가루를 살포하고, 소화전의 물을 살수했다”라며 “쇠파이프와 죽봉으로 무장하고, 일부 죽봉 끝에는 칼날 같은 날카로운 물체가 확인됐다“라고 전했다. 죽봉 끝의 날카로운 물체는 나의 사진 파일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인권침해 감시단의 활동가들은 “사측에 의해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집회가 차단돼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전혀 보장받지 못했다”라며 “용역이라는 사병을 상시 고용하고 대처하는 사이 노동자가 일하는 공장은 공권력의 통제를 벗어나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고, 불법파견이 존재하는 치외법권 지대였다”고 진단했다.

한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는 7월19일 제주 중앙 주교좌성당에서 봉헌된 시국미사에서 “서울 대한문 앞에서도, 밀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집시법 위반으로 체포되고 연행된다”라며 “이는 법의 정신을 파괴하는 법의 훼손이며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강주교는 “집시법은 본래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이 잘 지켜지도록 하기 위해 만든 하위 법령이다. 그런데 이 하위 법령인 집시법을 이용해서 가장 중요한 헌법적 가치인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행사하는 사람들을 감옥에 잡아넣는다는 것은 법 체계를 뒤집어엎는, 법의 정신을 파괴하는 법의 훼손이며 왜곡이다.”라며 공권력의 법해석 남용을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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