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 2013년작

▲ <비포 미드나잇>,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 2013년작
사람들은 왜 이 영화를 볼까.

일명 ‘비포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 <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 2013)>이 꾸준히 관객을 모으고 있다. 솔직히 개봉 직후 보고 나서 텁텁하고 목이 칼칼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이게 어떻게 한 세대의 ‘로맨스 시리즈’ 세 번째 스토리란 말인가. 그러나 곧 인정했다. 어째서 이건 ‘로맨스’일 수밖에 없는지.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리뷰를 뒤늦게 쓰고 있다. 남의 사랑 이야기를 20여 년간 지켜본 최소한의 예의랄까. 이제는 실제인지 연기인지도 분간 안 되는 주인공들. 잠시 애잔했다. 하지만 문득 ‘이게 뭐야’ 하던 투덜거림은 ‘뭐, 로맨스가 별 건가’로 선회했다.

정말이지 사람들은 로맨스를 좋아하는가 보다. 남의 사랑 이야기라도 열광하며 관람한다. 심지어 (당사자도 아닌데) 개입하고 ‘늘리기’까지 원한다! 18년째 에단 호크는 ‘제시’로, 줄리 델피는 ‘셀린느’로, 이야기꾼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까지 불려나온 배경이리라. 사람들은 로맨스의 달콤함만을 보고 싶어 하는 게 아니었다. 달달한 첫맛뿐 아니라 아프고 쓰라린 뒷맛까지도 전부 사랑하는 거였다.

우리가 대화를 멈추지 않을 때만 유지되는 ‘마법’

어리석어 보지 않고서야 어찌 삶의 한 조각이나마 깨달을 수 있으랴. 무모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열정일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신데렐라의 뒷이야기가 필시 아름답게만 흘러가지 않을 것임을 알더라도, 사람들은 신데렐라 이야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바다의 물거품이 되는 최후를 알지만, 제 고운 목소리를 인간의 다리와 맞바꾸러 가는 인어공주의 무모한 열정을 이해한다.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그냥 듣는다. 그게 삶이니까.

 

대단한 것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그냥 사는 이야기니까 듣는다. 별스럽건 별스럽지 않건, 이야기 속에는 다른 사람들뿐 아니라 내 삶도 들어 있다. 청자이면서 화자인 내가, 관찰자이면서 행위자인 내가.

1995년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의 설렘과 환희도, 2004년 <비포 선셋(Before Sunset)>의 회한과 갈망도, 끊임없이 다투고 화해하며 아이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2013년의 상황도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난다. 이 시리즈의 요체는 쉼 없이 대화하는 데 있다. 대화를 이어가는 순간순간 속에, 사랑은 있다. 대화를 멈추는 순간 상대방도, 둘의 관계도 포기하는 것이 돼버린다.

한밤중이 머지않았다. 7년 만에 단둘이 맞는 밤이다. 피로와 원망에 찌든 ‘낮’의 이야기를 호텔 침대까지 되가져와 싸우다 끝낼 것인가? 밤에는 밤의 이야기가 있다. ‘대화’는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므로, 한밤의 이야기는 밤에 맡기자. ‘해’에서 ‘달’로 넘어가는 이 긴 사랑 이야기는 오늘밤이 고비다. 늘 그랬듯이.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